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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18 21:45 수정 : 2011.10.19 08:27

60년대 미 최초 반전시위를 주도했던 토드 기틀린. 사진 서수민 통신원

월가시위 아직까진
제대로 된 사회운동 아닌
어정쩡한 모습

토드 기틀린(68·사진)은 미국의 대표적인 신좌파 지식인으로, 1963~1964년 미국 학생운동 최대 조직이었던 민주사회학생연합(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의 의장을 역임하며 미국 최초의 대규모 반전 시위를 조직했다. 하버드대와 버클리대를 나온 기틀린은 <전 세계가 보고 있다>와 <무한 미디어> 등 미디어 관련 저서 10여편을 집필했으며, 현재 뉴욕 컬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과 사회학과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인터뷰는 17일 저녁(현지시각) 뉴욕 컬럼비아대 교수 연구실에서 한시간 반동안 진행됐다.

- 시위가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광범위하게 퍼진 이유가 무엇인가.

“아주 특별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첫번째 중요한 차별점은 시위의 핵심 정신이 다수의 평범한 미국 사람들의 생각과 같은 맥락에 있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 역사의 주요 시민 운동들은 다수가 아닌 소수자들의 직접행동으로 촉발되었다. 베트남 반전운동을 시작했을때 고작 여론의 11%만이 우리를 지지했고, 흑인 민권운동이나 여성운동이나 동성애자 운동도 소수의 선도적 행동으로, 대중의 지지없이 시작됐다. 미국인들은 급진적인 직접 행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번 시위는 아직까지는 대놓고 반대하는 세력이 없다. 적이 없다는 것은 새로운 상황이다. 주코티 공원에는 핵심 참여자부터 호기심에 구경나온 사람까지 다양한 이들이 있지만, 서로 싸우는 사람도 없고, 대놓고 누구를 배척하지도 않는 포옹의 정신이 있다. 오늘 공개된 퀴니팩 대학 여론조사에서는 뉴욕 시민들의 67%가 이번 시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두번째로 중요한 지점은 이번 시위가 3년전 오바마 당선과 떼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오바마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세번째로 중요한 점은 중동 민주화 시위의 상징적인 힘이다. 아랍의 봄이 시위에 직접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아랍의 민주화 시위에서 영감을 받았고, 변화의 희망을 되찾았다”고 참여자 여럿이 말하고 있고, 이런 역사적 영감은 사회 운동에서 중요하다. ”

-서구의 민주주의가 주변부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여겨졌는데 아랍의 봄 시위가 선진국에도 영향을 줬다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물론 타흐리르 광장에 목숨을 걸고 가는 시민들과 월가에 편안하게 시위를 하러 가는 미국인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또한 중동에서는 노동조합 등 여러 사회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실업률 역시 미국에 견줄 수 없을만큼 높았다. ”

- 이번 시위의 특징으로 △지도자 없는 수평적 의사결정, △자발성 △느슨함 등을 꼽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특징은 더 많은 사람들을 시위에 동참하게 할 수 있는 반면에, 조직의 밀집성과 체계성을 통한 시위 효과의 극대화라는 측면에선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이런 시위의 특징들을 무엇이라고 보고, 또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지도자 없는 수평적 의사결정과 자발성, 느슨함은 새로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지난 수십년간 미국 좌파 사회운동에서 전통이 되고 있다. 미국 진보 사회운동은 1960년대부터 이미 강력한 지도자나 굳건한 조직 없이 진화해 왔다. 사회학자 윌리엄 프리들랜드(William Friedland)는 1960년대를 관통하는 핵심 이데올로기는 무정부주의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사회운동을 주동했던 대학생들은, 개개인 자신들이 똑똑하고 유능하다고 생각했기 지도자나 조직에 별로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운동에 참여했다.그리고 반전운동을 통해 식사를 준비하고, 유인물을 만들며 실무 능력을 축적했다. ”


-앞으로도 지도자 없이 시위가 계속될 것인가.

“어느 사회운동이나 전략과 전술 능력, 결단력 등 사회운동에 필요한 특질을 가진 이들이 있기 마련이고, 시련을 거치며 유능한 이들이 지도자로 부상할 것이다. 지도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운동의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이번 월가 시위에서도 지도 세력이 생겨나겠지만, 공식적으로는 지도자 없음을 계속 표방할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뚜렷한 지도세력 없이 한달동안 시위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당신이 만난 시위의 핵심 참여자들은 어떤 이들인가.

“직접 만난 이들 중 상당수는 1999년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에 참여했거나, 그 시위에서 영감을 받은 이들이다. 9.11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혹은 시애틀에서 무차별적인 기물 파괴 등으로 여론이 악화되지 않았더라면 시애틀 시위가 유의미한 대안 사회 운동으로 발전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이번 월가 시위대의 구호를 보면 경제적으로는 빈부 격차 해소와 분배의 불평등, 정치적으로는 대의 민주주의와 정당 정치에 대한 불만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위대의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보는가.

“이번 운동이 엄청난 설득력을 갖고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논리에 기반한 설명이 아니라 상징력 때문이었다. “우리는 99%”라는 구호는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다. 1%가 40%에 가까운 부를 갖고 있다는 점, “우리”가 단순한 다수가 아니라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라는 점을 손쉽게 알려준다. 또한 이번 시위에서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없다는 점은 여러 생각을 가진 이들이 생각의 차이를 넘어 시위에 열정적으로 합류할수 있게끔 만들어줬다. 예를 들어 지난 15일 타임스 스퀘어 시위에서는 “연방을 끝내자” (End the Fed)라는 구호가 등장했는데, 이는 연방준비은행을 없애자는 것 뿐만 아니라 중앙 정부 자체를 없애자는 것으로도 들릴 수 있는 구호로, 상당수 좌파들이 동의할 수 없는 구호다. ”

- 이들은 처음에는 리버티 플라자 공원(주코티 공원)에만 있다가, 지난 주말 타임스퀘어로 진출했고, 오는 21일에는 센트럴파크로도 진출한다. 이들이 시위, 행진 외에 또다른 형태로 진화하리라 보나?

“사회운동의 철칙은 ‘성장하지 않으면 소멸한다’는 것이다.공간적인 확장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번 시위는 사람들에게 잠재된, 공공 장소에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열망을 보여줬다. 리버티 플라자는 대화하고 싶어하고 어깨를 부딛히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가시적인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이 공원은 너무 비좁다. ‘월가를 점령하고, 타임스 스퀘어를 점령하고, 세상을 점령하자’라는 구호는 괜히 나온게 아니다.

이번 시위를 진행하는 이들은 끊임없는 진화의 가능성을 느끼고 있고, 리버티 플라자의 협소함을 알고 있기에 타임스 스퀘어와 센트럴 파크 같이 더 넓은 광장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 같다. 고로 당면한 경제적 갈등 뿐만 아니라 뉴욕시 특유의 공공 공간 해방 운동이라는 맥락 역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근 톰킨스 광장 공원과 워싱턴광장 공원 역시 공공장소 점령운동과 히피, 동성애 인권 운동 등 사회 운동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초기 리버티 플라자를 점령한 젊은이들은 상당히 심각하고, 급진적이며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현 상황이 매우 절박한 만큼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은 직장을 잡지 못해서, 혹은 지구 온난화가 심각하기에 평범하고 안온한 삶을 살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오래 전에 버린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리버티 플라자에서 쉽게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구체적인 어떤 목표를 이루려고 나온게 아니다. ”

- 이번 시위는 과거 68혁명, 미국의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 등과 많이 비교된다. 그 연장선으로 봐야 하나.

“과거 사회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관계가 단선적이지는 않다. 1960년대에는 현재와 유사한 시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공통점이라면 공동체주의와 무정부주의적 반체제 정신, 소수의 ‘나쁜’ 이들에 반대한 운동이라는 점이 있겠다. 미국 좌파 운동가들에게 “1960년대가 당신에게 어떤 것을 남겼냐”고 말하면 좋게 말하는 이들 못지 않게 “지겹고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 이들은 ‘혁명’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때 말하는 혁명이란 정치적 의미의 혁명과 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들이 말하는 혁명이란 무엇이며, 이것도 혁명이라 볼 수 있나?

“그들이 말하는 혁명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는 어렵지만, 현재 미국에서 말하는 혁명이라는 개념에는 19세기말 20세기초 미국을 뒤흔든 노동계 총파업의 경험이 가장 근접한다고 보여진다. 1990년대 초 버클리대 대학원생 가운데 문화혁명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흐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들이 주창한‘일시적 자치 구역’(temporary autonomous zone) 개념은, 정치적인 혁명이 구조적으로 배제된 상황에서, 작은 영역에서 일시적이라도 혁명적 자율성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들은 개방과 공존, 참여를 주창하는 느슨한 축제인 버닝맨 페스티벌(Burning man festival) 등에서 희망을 찼았다. 내가 만난 월가 시위 열성 참여자들 가운데에서도 보다 급진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았다.”

- 향후 시위는 어떤 방향으로 진화야 한다고 보는가.

“실제로 쟁취할 수 있는 단기, 중장기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며, 더 많은 이들이 시위에 동참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연을 확장하는 것은 핵심이다. 아직까지 월가 시위는 제대로 된 사회운동이 아닌, 계기(moment)와 사회운동 (movement) 사이의 어정쩡한 모습에 머물러 있다.사회운동이라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관점을 갖고 조직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열성적인 사람과 가끔씩 놀러오는 사람, 비판적인 지지가 모두가 필요하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단체들이 함께 하며 ‘이것이 우리의 운동’이라는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 1960년대 반전운동 당시에 엄청나게 다양한 단체들이 각자의 역할을 했다. 전쟁을 반대하는 종교인, 기업인, 여성 등 다양한 단체가 존재했고, 각자 역할을 분담했다. 현 상황에서도 이들이 “우리도 99%”라고 조직하고 목소리를 내면 엄청난 파급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이 사회운동이 무엇인지, 조직을 어떻게 하는지 공부하고 훈련해야 한다. 사회운동에 필요한 특질들은 자연스레 생기지 않는다. 배워야 한다. 또 외곽에서의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주코티 공원을 점령한 시위대가 추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계속 지키는 것이 운동의 사기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

- 현실 정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정치에서는 1994년 선거 당시 뉴트 깅그리치를 위시한 공화당 우파들이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을 주창하며 전국적 정치 세력으로 부상했던 것처럼, 민주당 좌파들이 이번 기회에 “미국인을 위한 경제 정책 다섯가지”같은 구체적이고 쉬운 정치 플랫폼을 만들어 선거에서 이기기를 기대한다. 민주당 내 좌파가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바보다.오바마가 시위대에 손을 내민다고 그들이 손을 잡겠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번 시위는 오바마에게 큰 정치적 기회이다.

정책적으로는 부유층 누진세와 토빈세 등의 세제 개혁과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금융회사들의 경영진의 성과급 제한 등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서민들의 개인 부채 탕감이나 모기지론 상황 부담 경감 등의 정책에 대해서도 대국민적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역할을 분리한 글래스-스티걸법안의 부활을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언론 학자로서 미국 언론의 보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초기 언론 보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주류 언론들이 시위대를 무책임하고 조직도 안 되어 있으며 사회 부적응자로 묘사하는 등의 보도 양태는 어느 사회 운동에서나 존재하는 경향이었다. 그러나 10월 5일 경찰의 폭력진압이 알려지고, 노조와 학생 등 외곽 세력의 지원이 이어지며 언론사들의 논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 등 주류 언론들이 무시하고, 비웃던 태도에서 배우려는 자세로 바뀌고 있다. 1960~70년대 반전 민권운동 당시 무시에서 왜곡, 축소보도를 거쳐 제대로 된 언론 보도를 접하는데 수년이 걸린 반면, 이번 운동에서는 단지 몇주만에 언론의 논조가 바뀌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트위터와 대안 매체, 그리고 시위에 대해 심층 보도를 하는 <데모크라시 나우>와 <프리스피치> 등 진보 언론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뉴욕/글·사진 서수민 통신원 seosoo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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