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21 20:51
수정 : 2011.11.21 20:51
‘불량률 1% 미만 허가’ 제안…한국·이스라엘 ‘동조’
전문가 “집속탄금지협약 발효 1년만에 무력화 우려”
미국이 ‘폭탄 속의 폭탄’이라 불리는 집속탄 사용을 금지하는 협약을 크게 완화시킨 새 협약을 추진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아에프페>(AFP) 통신 등은 미국이 지난 14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100여개국 대표가 참여해 열리고 있는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 4차 회의에서 새로운 협약안을 내놓았다고 보도했다. 1980년 이후 생산된, 불량률 1% 미만의 집속탄은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8월 발효된 집속탄금지협약(CCM)을 크게 후퇴시킨 내용이다. 집속탄의 사용을 전면 중단하고 재고를 폐기하는 것은 물론, 이미 사용된 불발탄을 회수할 것까지 규정한 집속탄금지협약에는 100여개의 국가가 서명했고 40여개국이 비준 절차를 마쳤다. 하지만 집속탄의 주요 생산·운용국인 미국, 이스라엘, 중국, 한국 등은 참여하지 않아 반쪽 협약에 가까웠는데, 미국은 이마저도 휴짓조각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집속탄금지협약에 반대했던 미국, 한국, 이스라엘, 인도 외에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도 새 협약에 동조하는 움직임이라고 전했다.
집속탄은 항공기로 투하하며, 공중에서 폭발해 내부에 있는 수많은 자탄을 넓은 장소에 뿌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미 공군이 걸프전 당시 사용했던 대표적인 집속탄인 ‘CBU87B’은 1개의 폭탄에 202개의 작은 폭탄이 들어있으며, 축구장 크기 정도의 범위 안에 있는 인명을 한번에 살상할 수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미처 폭발하지 않은 자탄이다. 크기가 벽돌 크기 수준으로 작은데다 색깔이 화려해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갖고 놀다가 폭발하는 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집속탄 반대단체인 집속탄금지연합(CMC)이 올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집속탄이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희생자가 2만~5만4000명에 이른다. 대다수는 분쟁이 끝난 뒤 불발탄의 폭발로 피해를 입었다. 지난 9월에도 캄보디아 프놈펜의 13살난 소년이 불발탄을 갖고 놀다가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고 <월드 소셜리스트 웹사이트>가 전했다. 생산업체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폭하도록 설계해 후속 피해를 막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또한 피해를 원천봉쇄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불량률 1%’라는 기준도 논란인데, 이스라엘이 2006년 레바논에서 사용한 집속탄 ‘M85’의 자체시험 불량률은 이 기준을 충족했지만 실제 전장에는 불발탄이 10% 이상 남았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집속탄·지뢰 모니터>의 편집장인 스티브 구스는 “어떤 방식으로든 집속탄 사용을 허용하는 협약이 실행된다면 많은 국가들은 이 무기를 사용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될 것”이라며 “이는 발효 1년밖에 안된 집속탄금지협약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라고 <아에프페> 통신에 말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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