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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23 17:38 수정 : 2011.11.23 17:38

정부 부처 중에서 가장 외교적 처사를 해야 할 외교통상부가 이명박 정부 내내 비외교적 처사로 일관하고 있다. 4대강 홍보에 타이 정계의 논란 대상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초청해, 활용하고 있다.

본국에서 기소를 피해 해외로 도망간 탁신 친나왓 전 타이 총리가 최근 한국을 방문해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탁신은 지난 22일 경기도 여주 이포보를 방문해 이충재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으로부터 이포보 건설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23일에는 한국수자원공사 물관리센터와 충남 연기군의 세종보, 합강정 등을 방문했다. 오후에는 신라호텔에서 4대강 견학 소감을 발표하는 기자회견까지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타이에서도 4대강 같은 사업을 했다면, 최근 방콕 침수 등과 같은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탁신이 한국 정부 공무원의 공식 접대를 받으며, 외교사절처럼 행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현 총리가 당선되는 데 탁신 전 총리의 지지 세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논란이 있지만 그의 사면 논의가 진행중인 상황”이라며 “지금의 법적 지위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의 행보가 전혀 말도 안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외교부 당국자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탁신은 정치적 논란이 있지만, 타이에서는 엄연히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 혐의로 수사 당국의 체포를 피해 해외로 도망간 ‘범법자’이다. 국제법상으로 따지면, 외국 정부가 그를 타이에 송환해줘야 할 ‘범인 인도 대상’이다. 특히 탁신은 타이에서는 ‘뜨거운 감자’이다. 90년대 이후 탁신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의 갈등과 유혈충돌로 타이는 정권이 바뀌는 몇차례의 정변을 겪었다. 타이는 지난 6월 총선에서 그의 누이인 잉락 친나왓이 이끄는 프어타이당이 압승하기는 했으나, 최근 방콕 침수 등으로 인기가 급락한 상태이다.

언제라도 다시 반대 세력들이 집권할 수 있는 상황이다. 군부와 왕정 및 도시 중상류층 등 타이의 전통적인 주류 사회에서는 탁신에 대한 거부감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그의 누이가 총리이고, 친탁신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탁신에 대한 사면을 공개적으로 거론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 탁신을 한국 정부는, 특히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감안하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외교부는 외교사절처럼 대접하며, 그것도 한국 국내에서 논란이 많은 4대강 사업 홍보에 이용하고 있다. 더욱이 타이와 한국은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었다. 그는 이 조약에 따른 인도 대상이다. 장차 타이에 정권이 바뀌어 한국 정부의 탁신 대접을 문제삼는다면, 정부와 외교부는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궁금하다. 탁신이 은밀히 방한해 개인적인 행보를 한다고 해도, 정부와 외교부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외교부의 이런 비외교적 처사는 이명박 정부 들어 한두번이 아니다. 이미 유명환 전 장관의 딸 특채 스캔들로 외교부의 수준을 드러내기는 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7월 유명환 전 장관이끄는 외교팀은 장관 취임 이후 첫 다자외교 무대였던 지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는 의장성명을 바꿔 달라고 애걸하는 망신을 벌였다. ‘금강산 피격사건’과 관련한 문구를 의장성명에 넣는 데 골몰하다가, “10·4 남북 정상선언에 기초한 남북 대화”라는 문구도 들어가자, 기겁을 하고 벌인 일이다. 남북 문제를 국제외교 무대에 무리하게 가져갔다가 당한 망신이다. 비난이 빗발치자 그는 “완전히 실패한 것(외교)이라는 지적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배짱을 내밀었다.

광우병 파동을 일으킨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뒤 첫 방중 도중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한-미-일 군사동맹 비난 파문, 이 대통령 방일 직후 일본 사회교과서에서 독도의 일본 영토 표기 소식, 미국 쪽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방한 연기 일방적 발표 등 이명박 정부 이후 손가락으로 꼽기도 힘들게 외교적 실책이 벌어졌다.


유 전 장관의 외교부는 특히 2009년 3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비확산 문제가 부각되니 피에스아이 참여 문제를 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밝혀,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를 놓고 그 후 한 달 동안 계속된 혼란의 문을 열었다. 외교부는 국방부보다도 더 강경하게 피에스아이 참여를 밀어붙이다가, 결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유보시켰다. 이 와중에서 그와 외교부는 피에스아이 참여는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 없다고 논리를 바꿔, 도대체 왜 피에스아이 문제를 꺼냈는지 알 수 없게 하는 황당한 상황을 연출했다.

유 전 장관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2009년 4월 국회 상임위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안 처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천정배 의원이 오자 “여기 왜 들어왔어, 미친놈” “저게 …”라고 말했다. 비준 동의안 상정을 놓고 의원들의 소란이 계속되자 “이거 기본적으로 없애버려야 해”라고 국회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마이크가 켜져있는 것을 모르고, 둘이서 주고받은 말이 그대로 공개된 것이다. 이 발언이 문제되자 그는 다음날 외교부 기자실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하다가 “그날 에프티에이(FTA)가 상임위까지는 통과되는 걸로 내가 박진이한테 물어보니까 3당 간사 사이에서는 합의가 됐다고 그랬거든요 … 그런데 계속 주변에 강기갑이가 서 있단 말이에요 ….” 라고 의원들을 호칭없이 막말로 불러 또 물의를 일으켰다. 결국 그는 기자들로부터 ‘강기갑 의원’이라고 주의를 환기받고서야, ‘의원님’이라고 말하며, “우리끼리 뭐 …”라고 얼버무렸다. 동행한 외교부 관리는 “여기 녹음 안 하지”라고 묻는 촌극도 벌였다.

함량이 미달한 유 전 장관은 결국 자신의 딸을 외교부에 은밀히 특채시킨 사건으로 낙마했지만, 그가 떠난 외교부는 지금도 여전히 비외교적 처사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외교부 전체의 수준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명박 정부의 잘못인지, 아니면 외교부 자체의 수준 문제인지, 아니면 둘이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것인지 곰곰히 따져봐야 할 때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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