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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28 15:53 수정 : 2011.11.28 16:44

■ 한겨레 오피니언 사이트 훅 바로가기

By 박원영

광고회사에서 일하다가 하필이면 IMF 시기에 영화를 공부하겠다며 뉴욕에 왔다. 이후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단편 영화와 다큐멘터리와 광고, 방송물을 제작하고 강의 활동을 했다. 현재 뉴욕의 프로덕션 겸 기획사 <프로젝트 A> 대표

예전에 유학생 후배가 한 말이 재밌었다. 대학시절 주로 좌석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대치동 집과 신촌 학교 사이 30개가 넘는 정류장에 적어도 한 번씩은 다 내려 봤다는 것이다. 장이 심하게 부실했던 후배는 조금 기름진 아침식사를 하고 등교하거나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도중 급하게 화장실에 갈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후배가 뉴욕에 와 보니 거리에서 화장실을 찾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상가 건물 어느 곳이나 들어가도 층층마다 화장실이 열려있고 어느 전철역이나 깨끗한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는 한국에 비하면 뉴욕은 ‘급하게 화장실을 자주 가야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옥과 마찬가지다. 장이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인 나도 후배의 말에 격한 공감을 표시하며 함께 울분을 토했다. (서로의 뉴욕 화장실 고생담은 1시간 넘게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뉴욕에는 공중화장실 자체가 별로 없다. 전철역에도 화장실이 있는 경우가 드물고 그나마 있는 역도 대부분 굳게 문이 닫혀있다. 상가 건물들은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능한 폐쇄적인 구조다. (하긴 몰래 들어가 봤자 외부에 화장실이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까페와 패밀리 레스토랑, 패스트 푸드 매장들도 ‘손님만 사용’이 원칙이다. 그나마 대형 서점들이 가장 편하게 가깝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급속히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대형 의류 매장들은 매정하게도 거의 화장실이 없다.

이런 사막 같은 곳에서 오아시스의 역할을 하는 매장이 스타벅스다. 공식적으로 뉴욕시의 유료 공중화장실이 3개인 반면 스타벅스의 수는 190개가 넘으니까 실질적으로 뉴욕의 공중화장실 역할을 톡톡히 한다. 최근 스타벅스 매장들이 차례로 화장실을 폐쇄하는 것을 뉴욕타임스가 크게 보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스타벅스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신문을 인용하자면 “직원들에게 가장 짜증나는 일은 단체 관광객이 몰려들어올 때나 까다로운 취향의 손님 주문을 맞출 때가 아니라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이기 때문.

한 직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단순히 똥과 오줌이 아니다. 나는 매일같이 인간의 몸속에서 배출되는 모든 종류의 배설물을 치운다. 어떤 때는 이게 과연 인간의 몸에서 나온 것인가 싶은 것도 있다.”

전철역 화장실을 잠가두는 뉴욕의 야박한 화장실 인심이 어디서 나왔는지 짐작이 가는 증언이다. 솔직히 너무들 더럽게 쓰고 너무 오래 쓰고 너무 별짓들을 화장실에서 다한다.

우선은 뉴욕에 홈리스(노숙자)가 너무 많다. 영화 <몬스터>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크리스티나 리치와 첫 데이트전 화장실에서 꽃단장 하던 걸 기억하시는지? <해피니스>에서 윌 스미스가 아들을 껴안고 화장실에서 추운 하룻밤을 보내며,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귀를 막아버리던 장면이 떠오르시는지? 영화의 배경은 뉴욕이 아니었지만 뉴욕에서 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이곳 사람들의 비뚤어진 자기권리의식도 늘 화장실에 긴 줄이 늘어선 주요 이유가 아닌가 한다. 도대체가 남의 급한 사정은 아랑곳없어 보인다. 이 공간을 사용하는 시간은 온전히 나의 권리라는 식이어서 서두르거나 ‘대충 끊는’ 법이 없다. 물소리가 난 후에도 한참동안 씻을 거 따 씻고 말릴 거 다 말리고 뻔뻔한 얼굴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살의를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국에 비해 훨씬 심한 미국인들의 비만도 혹시 한 원인은 아닐까? 당뇨와 심장병 등 각종 질환이 분명히 있을 것 같은 뚱뚱한 중년이 들어가면 아닌 사람들보다 두 배는 더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다반사다. 특히 옷에서 악취가 나고 손에 여러 개의 비닐 봉다리를 들고 있는 유사 홈리스 비만자가 앞에 서 있으면 빨리 다른 곳을 찾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기본이 30분이다.

젊은 애들이 화장실을 ‘다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문제다. 화장실에서는 용변만 볼 것이지… ‘스타벅스가십’이라는 사이트에 올라온 직원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 “한 평의 사적인 공간만 생기면 꼭 그 짓을 해야 하는 것인가요?” 이런 글도 있다. “도대체 왜 화장실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건가요?”

뉴요커들 흉만 봤지만 언제나 바글대는 관광객들도 분명 책임이 있을 것이다. 남의 나라 화장실 깨끗하게 쓸 줄 모르는 무례한 외국인들 정말 많다.

한마디로 당신이 뉴욕에 와서, 예를 들면 5애비뉴 53가 부근에서 다급한 상황을 맞았다면 주위를 둘러봤을 때 눈앞이 캄캄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친절한 뉴요커가 인근 ‘빌 더 베어’라는 인형 매장을 이용하라고 알려주지 않는다면 말이다.(관광객이 그것을 어찌 알 것인가?) 혹은 한 블록 거리인 현대미술관(MoMA)으로 달려가 25달러 입장료를 사는 것도 한 방법은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뉴욕대학 인근에서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다행히 워싱턴스퀘어 공원에 공중화장실이 있다. 그런데 기쁜 마음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혼미백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문도 없는 개방형 좌변기에 이미 홈리스 두 명이 바지를 벗고 앉아 느긋하게 일을 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뉴욕 문화의 중심지인 그리니치 빌리지의 관문인 이 공원의 화장실이 예전 중국의 화장실과 비슷한 구조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수 있겠지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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