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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네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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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신문과의 신년 와이드 인터뷰에서
대안은 “많은 사람이 다양한 영역의 관리에 직접 참가하는 민주주의”
브라질 ‘토지 없는 농민운동’ 등 남미의 90년대 이후 운동 주목할 만
세계의 움직임은 멀티튜드…월가점령 시위는 대표적 사례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의 국가부채 위기, 한-미 자유무역협정(에프티에이) 체결과 반대운동, 미국 월가 점령 시위, 중동의 봄, 브라질의 유휴지 점거 운동 사이에는 무슨 연관관계가 있을까? 얼핏 별개로 인식하기 쉬운 이런 세계적인 현상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 것일까?
이를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탈리아 좌파 정치학자인 안토니오 네그리(78)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 만하다. 2000년 제자인 마이클 하트 미 듀크대 교수와 함께 지은 <제국>을 통해 국제통화기금, 세계무역기구, 국제적인 법률사무소 등이 네트워크처럼 연결돼 형성된 글로벌한 질서와 권력을 ‘제국’이라고 규정한 네그리는 2004년 출간된 <멀티튜드>에서 제국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멀티트듀(다양한 개인의 집합·한국에서는 <다중>으로 번역소개됨)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원인을 진단하고 새로운 운동의 태동 가능성을 예언한 것이다.
네그리는 4일 일본 <아사히신문>과 한 신년 와이드 인터뷰에서 “지금이야말로 광대한 영역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있는 시기”라고 단정하고 “20만 명, 30만 명 규모로 ‘자신들’을 조직하고 스스로 스스로를 직접 통치하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우선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해 ‘노’라고 말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노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최초로 해야 할 윤리적 행동”이라고 말했다.
네그리는 저서 <멀티튜드>에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과 방법’을 언급하면서 ‘전원에 의한 전원의 통치’를 주장했다. 지구촌에 사는 70억 명이 70억 명을 통치한다는 개념은 과연 현실 가능한 것인가?
이에 대해 그는 “현재 민주주의의 행동방식을 근본부터 개혁할 수 있는지가 문제”라고 그런 의문을 일축했다.
“노동, 생산, 금융, 그리고 부의 재분배를 다수의 사람들이 참가해서 함께 콘트롤(관리, 통제)해가는 체제를 만들어가는 것”이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체제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정부라는 통치체제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정도가 부족하다”고 진단하고 “현재 각국의 정부가 위기에 빠진 것도 이제는 정부가 사회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게 돼버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민 전원이 하나의 정권을 선출해서 그 정권이 정치적인 방향을 표명하고 모두가 그것에 따라가는 종래의 정치가 충분히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현재의 민주주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대의제와 3권분립 등 18세기에 태어난 민주주의 체제가 부패해버린 듯이 보인다. 부정부패가 아니다. 기능할 수 없게 된 것을 말한다. 전반적인 재조정이 불가결하다.”
그는 유럽연합이라는 제국의 위기의 근원에 대해서도 “국가가 글로벌한 시장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며 “따라서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와 돈의 흐름이 변해버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대의 노동은 지적이고 인식적인 것이 되었다. 당신은 집에서 컴퓨터를 갖고 있다. 나를 찍는 카메라맨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독자적으로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요구받고 있는 것은 두뇌 그 자체이거나 인적인 조직력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지금 노동시장이며, 기업은 노동자를 파악할 수 없게 됐다. 한편 금융은 노동자가 생산한 부를 독점해서 그것을 화폐와 증권, 혹은 주머니 안의 크레디트 카드로 바꿔버렸다. 그것이 부채를 양산하고 있다.”
그는 “전후 유럽은 복지가 진척되고 인권을 존중하는 고도의 시민사회여서 세계의 발전과 과학기술에 자발적인 형태로 대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파업권이나 복지후생이 삭감되고 노동시간이 늘어나고 비정규 고용 등 불안정한 노동형태가 진행되고 빈곤이 확산되는 등 100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대안 시스템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나는 예언가도 교주도 아니기 때문에 답하기 어렵다”면서도 “다양한 영역의 콘트롤(관리, 통제)에 다수의 사람들이 직접 참가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점령(어큐파이) 운동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이미 세계 각지에서 시작하고 있다. 뉴욕의 월가점령운동,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의 운동, 혹은 북아프리카의 아랍의 봄 등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다. 누군가 설계했다면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한 ‘새로운 민주주의’라는 것은 세계에서 생긴 경험의 축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남미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새로운 사회운동을 주목했다. 브라질의 ‘토지 없는 농민운동’(MST)은 가난한 농민들이 유휴지를 점거해서 매입을 정부에 요구하는 등 토지소유의 개혁을 진척시킨 대규모 운동이라고 소개한 그는 “(브라질)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그들 농민과 열린 관계를 만들어 지역의 잠재적 힘을 이끌어 냈다”고 지적했다.
브리질 정부가 운동을 탄압하지 않고 개방시킴으로써 새로운 모델과 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대공황 뒤 미국의 루스벨트가 노동자의 권리보호를 진척시킨 것처럼.
그는 지금 세계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을 ‘멀티튜드’라고 부르고 있다. 월가점령 시위를 멀티튜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기도 했다.
“그들은 단순한 대중이나 군중이 아니다. 독자성을 가진 자율적인 개인의 집합이다. 그것이 하나로 된 것이다. 독자성이 중요하다. 불안정할지도 모르지만 가능성도 유연성이 풍부한 존재이다. 월가점령은 그런 의미에서도 멀티튜드를 대표하는 운동이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시작했다. 생각과 의사를 전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라고 나는 보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네그리는 “‘분노한 사람들’이 데모와 집회가 아니라 캠프를 차리고 생활 방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공동토의하고 있는 것”을 구체적 사례로 들었다. 그는 병원의 운영 방식에서도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을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단순히 치료와 연구의 장으로서만이 아니라 환자와의 인간관계, 애정, 사회와의 연결관계 등 좀더 인간적인 관계를 조직하려면 어떻게 할지 생활전반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을 정치로 환치하면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델을 생각할 수 있다.”
이탈리아 파두바 대학교수 재직중 1978년 이탈리아 극좌테러 조직 ‘붉은 여단’에 의한 알도 모로 전 총리 암살테러 사건의 수괴로 지목돼 체포·투옥된 그는 결백을 주장하며 1983년 프랑스에 망명해서 파리 제8대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프랑스에서 ‘새로운 마르크스’라는 명성을 쌓았다. 1997년 자발적으로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1999년 가택연금된 뒤 2003년에야 자유의 몸이 됐다.
그는 저서 <제국>과 <멀티튜드> 등을 통해 글로벌 세계체제를 분석 진단하고 제국에 대항하는 모델로서 ‘다양한 개인의 집단’에 의한 새로운 운동방식을 제시해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국가와 정부의 체제를 부인하는 그의 주장은 주요 국가에서 과격한 것으로 인식돼 2008년 일본 입국이 거부되기도 했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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