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25 18:29
수정 : 2005.07.25 18:55
“첫번째 목표 고쿠라에 짙은 구름 나가사키로 방향 바꿔 폭탄투하”
“원자폭탄을 투하하자마자 우리는 180도 방향을 틀어 달아났고 곧 섬광을 봤다. 누군가가 ‘이 전쟁은 끝났다’고 말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 8월1일치는 원폭 투하 60돌 특집 기사에서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폭격기에 탑승했던 미군 4명의 회고담을 실었다.
시어도어 밴 커크(84·히로시마 원폭 투하 B-29기 ‘이놀라 게이’ 항법사)=1944년 지휘관으로 부임한 폴 티베츠 대령이 “우리는 지금은 밝힐 수 없는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며 “이 일이 제대로 진행되면 전쟁은 상당히 일찍 끝나게 된다”고 말했다. 8월5일 저녁 10시나 11시에 우리는 소집돼 핵폭탄 투하 임무를 부여받았고 다음날 새벽 2시45분 출격했다. 히로시마 상공에서 450㎏이나 되는 폭탄이 떨어져나가자 비행기는 순식간에 치솟아 올랐다. 우리는 180도 방향을 틀어 가능한 한 최대의 속도로 현장을 벗어났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섬광뿐이었다. 누군가 “이 전쟁은 끝났다”고 말했고,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모리스 젭슨(83·이놀라 게이 무기 시험관)=나는 투하 30분 전 원폭에 연결된 초록색 테스트용 플러그를 제거하고 빨간색 폭발용 플러그를 연결했다. 그동안의 시험 결과대로라면 폭탄은 투하된 지 43초만에 폭발하게 돼 있었다. 폭탄이 투하된 후 나는 마음속으로 43초를 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초 뒤 비행기 앞부분에 타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섬광이 보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프레드릭 애슈워스(93·나가사키 원폭 투하 B-29 ‘박스카’ 발사담당자)=8월9일 오전 1시30분 명령을 받고 ‘박스카’에 집합하자 기장인 찰스 스위니 소령과 엔지니어가 비행 전 점검을 하고 있었다. 예비 탱크의 휘발유를 공급해주는 펌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나 지휘관인 티베츠 대령은 비행에 큰 지장이 없다는 이유로 출발할 것을 지시했다. 우리는 랑데부 지점에서 폭발 측정과 관측을 담당한 다른 두대의 비행기와 만나기로 돼 있었지만 관측기가 나타나지 않았다. 35분 뒤 우리는 첫번째 공격목표로 예정돼 있었던 고쿠라로 갔으나 구름이 너무 짙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두번째 목표였던 나가사키로 갔지만 그곳도 구름이 짙어 시야가 분명하지 않았다. 이때 폭격수인 커미트 비헌 대위가 목표물을 식별해 냈다고 소리쳤다. 구름사이로 난 구멍을 통해 폭탄은 투하됐다.
찰스 앨버리(84·이놀라 게이 동행기 부조종사, 박스카 탑승)=8월6일 우리의 임무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폭발과 방사능을 기록하기 위한 장비를 투하하는 것이었다. 폭탄과 측정장비가 투하되고 우리 비행기가 회전한 후 나는 내 생을 통틀어 가장 밝은 빛을 봤다. 버섯구름의 꼭대기에서는 가장 무서우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온갖 무지개 색을 볼 수 있었다. 이어서 누군가가 비행기를 두세 차례 내리친 것과 같은 충격이 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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