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25 08:46
수정 : 2012.06.25 08:46
이집트 대선 무르시 당선
군, 권한이양 밝혔지만 최고군사위에 막강 권한
두 세력 갈등땐 혼란…해산된 의회 재총선 ‘고비’
누구를 위한 혁명이었나.
24일(현지시각) 결국 무함마드 무르시(61·자유정의당)의 승리로 판정된 이집트 대선 결과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를 법한 의문이다. 어찌됐든 2011년 봄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타흐리르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이 꿈꾸던 결론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 개혁 세력은 구심점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고, 결국 이집트의 대권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카이로의 정치공학자 오마르 애시아워는 “민주주의로 가는 시작점치고는 재앙에 가깝다”고 <뉴욕 타임스>에 이번 선거 결과를 평가했다. 앞으로도 집권 이슬람 세력과 군부 세력 간의 치열한 권력싸움이 예상된다는 뜻이다.
무바라크의 30년 철권통치 이후 처음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외양적으로는 ‘민주주의 축제’에 가까웠지만 내용 면에서는 과거로의 회귀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5월 대선 1차 투표에서 무슬림형제단의 후보였던 무르시와 무바라크 시절의 마지막 총리 아흐마드 샤피끄가 결선투표 후보로 결정나면서 이미 이런 파국은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르시가 이끌 이집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오리무중이다. 이미 군부 실세들로 구성된 ‘최고군사위원회’는 무슬림형제단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던 의회를 해산했고, 입법권, 예산권, 신헌법 초안을 만드는 위원 임명권 등을 자신들이 가진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의 군에 대한 감시·통제는 배제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군부가 거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셈이다. 맘두흐 샤힌 소장 등 군부 최고실력자들은 “군은 권력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을 넘겨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집트인은 많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힘이 최고군사위원회로 넘어간 상태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매우 제한된다. 대통령은 장관을 임명하고, 법을 비준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하는 정도의 권한밖에 없다. 무르시가 취임도 하기 전에 ‘식물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최고군사위원회는 신헌법 초안을 만드는 위원회를 구성한 뒤 다시 의회선거를 재실시하고, 의회가 구성된 뒤 모든 권한을 대통령에게 넘길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원래는 이번주 안에 헌법위원회가 구성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으나 선거 결과의 공포가 늦어지고 공포 뒤에도 극심한 혼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예측대로 향후 일정이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집트 정국이 총선상황에 들어서면서 다시 혼란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이집트 국민들의 움직임도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 힘들다. 당장 나세르에 모였던 수천명의 샤피끄의 지지자들은 선거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항거할 뜻을 밝히고 있다. 이들의 집단행동이 계속될 경우 유혈사태가 벌어지면서 국내 정세 전체가 혼란에 빠진 지난해 봄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
무르시 당선으로 당분간 이집트의 권력은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많은 민주주의 활동가들이 우려하던 상황이기도 하다. 무르시가 강력한 이슬람주의 정책을 강행한다면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몰려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예상외로 향후 정국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에이피>(AP) 통신 등은 선거 결과 발표가 계속 늦어졌던 것은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이 권력을 분점하기 위한 뒷거래를 했기 때문이라는 의심도 이집트 시민들 사이에서는 팽배하다고 전했다. 타흐리르 광장의 민주화 시위를 이끌었던 민주개혁 세력도 각각 ‘이슬람주의 대두’, ‘군부정권으로의 회귀’ 등을 우려해 뿔뿔이 흩어져 각 세력과 손을 잡은 상태라 대규모 시위를 이끌 만한 구심점이 없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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