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03 19:23
수정 : 2012.07.05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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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글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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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홍보위해 의사에 각종 로비
거짓실험 싣도록 의료지에 뒷돈
부작용 감추는 등 탈법행위 덜미
“이 약을 먹으면 행복해지고, 날씬해지고, 정력마저 강해집니다.”
옛날 시골장터 약장수에게서나 듣던 이 말은 세계 굴지의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하 글락소)이 2000년 신약인 웰부트린을 의사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글락소는 단지 항우울제 약효를 인정받았을 뿐인 이 약을 좀 처방해달라며 의사들에게 공짜 마사지, 미국 콜로라도 스키여행, 심지어 마돈나 콘서트 표까지 아낌없이 뿌렸다.
사기에서 리베이트까지 다국적 제약회사의 민낯이 드러났다.
<에이피>(AP) 통신 등은 2일(현지시각) 글락소가 미국 정부와 30억달러(3조4125억원)의 배상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10억달러는 범죄행위에 대한 벌금이고, 20억달러는 이와 관련한 민사소송에 합의하기 위한 공탁금 성격의 돈이다. 제약회사가 낸 배상금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영국에 본사를 둔 글락소는 의약품, 백신, 건강관리용품 등 모두 1400여종의 제품을 생산하는 초거대 글로벌 제약사다. 지난해 기준 매출 430억달러로 세계 3대 제약사 중 하나로 꼽힌다. 일반인들에게는 위장치료제인 잔탁, 잇몸치약인 파로돈탁스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날 미국 연방검찰의 발표엔 이 회사가 약을 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질렀던 각종 탈법행위가 낱낱이 담겨 있었다.
글락소는 1998년부터 6년 동안 우울증 치료제인 팍실을 18살 미만의 환자에게 팔기 위해 판촉활동을 벌였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이 약을 미성년자에게 팔도록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의사가 적당한 약이라고 판단할 경우 처방할 수 있게 돼 있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한 것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적했다. 글락소는 한 의학전문지에 팍실이 미성년자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실험 결과가 실리도록 뒷돈을 댔고, 이 실험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의학 종사자 사이에서 일자 유령작가(고스트 라이터)를 고용해 이 실험이 옳다는 기사를 작성해 다른 잡지에 싣기도 했다.
당뇨병약인 아반디아에 대해서는 심장병 위험을 높이는 부작용이 없다는 왜곡된 보고서를 2001~2007년 계속 식품의약청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 약은 결국 2010년부터 판매가 금지됐다. 글락소는 두명의 판매사원이 이런 문제점을 내부고발하자 이들을 해고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탈법행위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거의 대부분의 제약회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미국 정부는 최근 몇년 동안 제약회사의 불법행위에 대해 계속 조사를 벌여왔다. 2009년에는 세계 최대 제약사인 화이자가 23억달러의 벌금을 냈고, 미국 제약회사인 일라이릴리앤컴퍼니 또한 14억달러의 벌금에 합의했다.
연방검사인 제임스 콜은 이날 “우리는 더이상 의료 사기에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이라며 제약회사들이 환자의 건강보다 수익을 우선시하는 관행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비판도 동시에 나온다. 뉴욕 검사 엘리엇 스피처는 <뉴욕 타임스>에 “문제가 되는 결정을 내린 경영자들을 개별적으로 처벌하기 전에는 이런 악순환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락소의 최고경영자 앤드루 위티는 이날 성명에서 “과거에 저질러졌던 실수들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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