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17 20:51
수정 : 2012.07.18 08:16
미 상원, 국제 송금기록 조사
제재기간에도 거액 계좌 유지
관리 소홀로 돈세탁 방지 실패
미 법무부, 사법처리 검토나서
유럽 최대 은행 에이치에스비시(HSBC)그룹이 미국의 제재규정을 어기고 북한·이란 등 제재 대상 국가들과 2007년까지 거래한 것으로 미 상원 조사에서 드러났다. 또 이 은행이 지난 7년간 멕시코 마약조직의 돈세탁 통로 구실을 한 사실도 밝혀졌다.
16일 미국 상원 국토안보위원회 조사 소위가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에이치에스비시는 북한을 비롯해 이란, 수단, 미얀마 등 제재 대상에 오른 개인 또는 기관 및 기업과 거래했다고 <로이터> 등이 이날 전했다. 이 보고서는 미 상원 조사위원회가 2001~2010년 에이치에스비시의 국제 송금 기록 등을 1년 동안 광범위하게 조사해 발표한 것이다.
2005년 8월 에이치에스비시의 국제 법인영업부문 대표인 마크 스미스가 에이치에스비시 계열사에 회람한 서신에는 “북한 계좌 3건이 있고 이들 계좌의 폐쇄를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해당 은행들로부터 답을 얻지 못했다”고 적혀 있다. 다른 에이치에스비시 내부 문서는 또 2007년 5월자로 에이치에스비시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 지사들에서 북한 고객들에게 미 달러화 계좌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멕시코 지사인 에이치비엠엑스(HBMX)에 자산 4만6000달러(약 5300만원)를 넘는 북한 고객 계좌 9건이 있고, 이 중 7개는 미 달러화와 멕시코 페소화 자산을 합치면 계좌 자산이 230만달러(약 26억원)가 넘는다고 확인했다.
은행은 뒤늦게 북한과 모든 업무 관계를 해지했다고 내부 문건에 기록했으나, 에이치에스비시는 미국지사에 2010년 4월까지도 북한의 조선무역은행(Foreign Trade Bank of DPRK) 명의로 된 달러 계좌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다만, 2007년 이후에는 이 계좌에서 달러화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에이치에스비시 미국지사는 또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들의 자금 모집을 도운 것으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와 방글라데시 은행들과 거래한 사실도 드러났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또한 이 은행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지난 7년간 수십억달러 규모의 멕시코 마약조직 자금의 돈세탁 통로로 이용되기도 했다. 멕시코 마약조직이 돈세탁을 하는 방식은 이렇다. 우선 미국에서 마약을 팔고 받은 달러를 뭉터기로 멕시코로 몰래 갖고 들어온다. 그리고 멕시코의 에이치에스비시 지사의 계좌로 이 달러를 입금한다. 에이치에스비시 멕시코 지사는 달러화가 어느 정도 쌓이면 무장차량에 싣고 그 달러화를 다시 미국에 싣고 와 은행에 입금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2007~2008년에만 70억달러가 세탁된 것으로 미 상원은 분석했다. 하지만 에이치에스비시 관계자들은 이 과정의 문제점을 거의 인식하지 못했고, 일부는 “미국에서 일하는 멕시코 정원사들이 송금해온 돈 아니냐”고 조사단에 되묻기도 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에이치에스비시 고위관계자들은 17일 상원 청문회에 선다. 미 법무부는 이 문제에 대한 사법처리를 검토하기 시작했고, 많으면 10억달러 이상의 벌금도 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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