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19 20:01
수정 : 2012.08.19 20:01
슈퍼 털어 빈민 돕는 기행
“경제위기 부른 죗값 치러야”
저소득층에게 나눠줄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지지자들과 함께 슈퍼마켓을 약탈하는 등의 기행으로 ‘로빈 후드 시장’라는 별명이 붙은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59) 스페인 마리날레다시 시장이 “안달루시아 지방의 은행을 점령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지난 17일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안달루시아 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은행과 슈퍼마켓을 점령하겠다”며 “이 (경제)위기를 부른 도둑놈들(탐욕스런 은행과 기업가들)은 그들이 한 짓에 대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지난주부터 지지자 500명과 함께 안달루시아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호다르를 출발해 수도 마드리드까지 3주일간의 ‘긴축 반대 행진’을 시작했다.
스페인은 유로존 재정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높은 실업률과 정부 보조 중단으로 국민들이 크게 고통 받고 있는 상태다. 특히 인구가 가장 많은 안달루시아 지방의 실업률은 30%에 이른다.
고르디요는 33년째 스페인 남부 인구 2600명의 소도시 마리날레다의 시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지역정당인 좌파연합(IU)의 지방의원이기도 하다. 그는 이달 초 노동조합원들이 카르푸 등 슈퍼마켓을 터는 것을 확성기로 독려하며 진두지휘했고, 약탈한 식료품과 생필품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푸드뱅크에 기부됐다. 이 사건으로 7명이 체포됐지만 선출직으로 면책특권을 갖고 있는 그는 붙잡히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 가느냐 마느냐는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만약 간다면 영광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유로화는 일부 사람들의 배만 불리고 나머지를 모두 가난하게 만드는 사기”이라며 “우리는 정치적 변화를 촉구한다”며 현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 철폐를 강력히 요구했다.
스페인 집권당인 국민당(PP)은 그의 이런 행위가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고 있고, 좌파연합 또한 당혹스러워하는 상황이지만 스페인 국민들 사이에서는 “진짜 로빈 후드가 나타났다”며 지지하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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