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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낮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홍보관에서 고객들이 삼성 모바일 제품을 만져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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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애플 소송 후폭풍
“혁신 장려 아닌 혁신 막으려는 무기로 사용돼” 지적미 연방법원 판사도 “경쟁자 징벌 도구로 특허 이용”
한쪽선 “소송 피하려 새 디자인·기술 혁신 노력할것” “특허제도는 원래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재는 다른 목표를 위해 너무 자주 부당하게 사용된다.” 스마트폰 블랙베리를 생산하는 캐나다 회사 리서치인모션의 최고법률책임자(CLO) 스티븐 지퍼슈타인은 이달 초 발표한 성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 판사인 제임스 웨어가 한달 전 배심원들이 내린 특허침해 배상 결정을 “증거가 없다”며 기각한 뒤의 일이다. 배심원들은 리서치인모션이 미국 뉴저지의 소프트웨어회사 엠포메이션에 1억4720만달러를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었다.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삼성-애플의 특허권 소송 결과도 이 사례와 마찬가지로 특허제도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허권 분쟁이 남발되면서 법정비용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혁신은 도리어 방해받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가장 많이 지적된 것은 비전문가인 배심원들에게 복잡한 기술특허에 대한 결정 권한을 주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에이피>(AP) 통신은 법정에 비틀스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24살 청년부터 자전거 가게 매니저, 해군 퇴역자 등으로 이뤄진 배심원단이 스마트폰과 태블릿 디자인의 미래를 결정지었다고 지적했다. 배심원에게 전달된 것은 109쪽에 이르는 배심원 지침과 20쪽에 이르는 평결 양식이었는데, 캘리포니아 해스팅스 로스쿨 지적재산권 교수 로빈 펠트만은 “내 (로스쿨) 학생들도 그 문건들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며 “이번 재판은 특허제도가 완전히 통제불능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특허제도가 혁신적인 경쟁자들의 등장을 막으려는 무기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시카고 연방법원 판사인 리처드 포스너는 최근 특허제도에 대해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기보다는 침해자에게 징벌을 내리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로스엔젤레스타임스>는 이번 소송에서 유죄를 받은 곳은 다름아닌 미국의 특허청이라고 꼬집으면서, “과연 매끈한 곡선 테두리를 가진 직사각형의 폰들은 애플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게 선반에서 사라져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특허청이 특허거리가 되지 않을 것들까지 무작정 받아주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 신문은 또 옛날에 제록스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베낀) 애플을 제소했다면 현재의 애플은 없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현재 20년간 보호해주고 있는 소프트웨어 지적재산권을 5년으로 줄이자는 ‘혁신을 방어하자’란 이름의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전자프론티어재단의 줄리에 사무엘스 변호사는 “애플과 삼성의 소송은 현재 특허제도가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를 드러내주는 대리전”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소송 결과가 스마트폰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등은 애플의 승리로 다른 스마트폰 업체들이 애플의 특허소송을 피하기 위해 다른 디자인과 다른 작동방식을 가진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이는 결국 새로운 혁신을 불러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당분간은 신제품 출시가 미뤄지고 일부 제품의 판매가 중단되면서 소비자들의 손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기업이 제품을 가지고 전쟁을 했다면 소비자들이 이익을 얻었겠지만, 특허전쟁은 변호사들의 주머니만 불릴 것”이라며 “앞으로 특허를 무기로 한 더 많은 진흙탕 싸움식 소송을 촉발할 것”을 우려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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