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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13 19:04 수정 : 2012.09.13 22:51

리비아·이집트·튀니지 이어
예멘서도 반미시위…1명 숨져
카이로선 투석전 13명 부상
하마스의 가자지구서도 시위
‘과격 이슬람주의’ 흐를 우려

리비아 정부 사죄·즉각 협조
“1979년 상황과 다르다” 분석도

“미국이 자유로워지도록 돕고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주기까지 한 도시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부 장관은 11일(현지시각) 리비아 벵가지에서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 등 미국 외교관 4명이 시위대의 공격을 받아 숨진 사건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며 비탄에 잠긴 채 이렇게 되물었다. 이번 사태를 접한 미국인들 대다수가 떠올렸을 질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슬림의 무지>(Innocence of Muslims)라는 조악한 동영상이 불붙인 이슬람 세계의 분노는 확산일로다.

13일 예멘 수도 사나에선 반미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에 한때 난입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시위대 1명이 숨졌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도 이틀 만인 이날 다시 시위대가 투석전을 벌이며 대사관 공격에 나서 경찰의 시위대 해산 과정에서 최소 13명이 다쳤다. 튀니지에서도 대사관 앞에 시위대가 몰려들어 성조기를 불태웠고, 수단·모로코·이란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에서도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반미 시위 사태가 가장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리비아, 이집트, 튀니지는 모두 지난해 ‘아랍의 봄’ 혁명 이후 오랜 독재정권이 끝나고 민주정으로의 이행 과정에 있는 국가다. 그중에서도 이집트와 튀니지는 친미 독재정권이 붕괴하며 이슬람세력이 집권에 성공했다. 예멘도 완전한 혁명은 아니나 친미 독재자인 알리 압둘라 살레가 33년 만에 권좌에서 물러났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 사태가 ‘아랍의 봄’ 혁명을 겪은 나라들이 과격 이슬람주의로 흐르고 있는 데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에서는 애돌프 덥스 아프가니스탄 주재 미국대사가 납치돼 피살됐던 해이자,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이 학생 시위대에 점령당해 52명의 인질이 1년 넘게 억류되는 등 중동 전역에서 반미 시위가 불길처럼 일어났던 1979년 이래 ‘새로운 반미주의’가 아랍세계에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일단 무슬림들의 금요예배가 열리는 14일은 이번 반미 시위의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이 성공해 이슬람 세계의 구심점이 됐던 1979년과 지금의 상황은 상당히 다른 것 또한 사실이다. 리비아 정부는 “폭력사태를 규탄하고 미국에 사죄한다”고 밝히고 미국과의 수사협조에 즉각 나섰으며,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은 이슬람 혐오 동영상을 비난하는 동시에 “리비아 영사관 공격을 규탄한다”고 밝히며 국민들에게 자제를 당부했다. 실제 리비아 벵가지에선 미국영사관 공격을 비난하는 자발적인 시위도 벌어졌다. 또 ‘아랍의 봄’ 혁명에는 서구 민주주의의 영향을 받은 시민세력의 성장이 상당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들 지역 전체가 반미주의로 흐를 것이라는 우려는 무슬림과 대립을 상정하던 ‘문명의 충돌’론 같은 서구 중심의 시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반미 시위의 원인은 오히려 미국의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이번 사건의 직접적 계기는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마호메트)를 조롱한 영상물이지만 “미국이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저질렀던 ‘나쁜 짓’이라는 원죄가 배경에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무인기 공격의 잦은 민간인 오폭으로 반감이 높은 예멘의 사례처럼,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랍세계에서 벌여온 미국의 대테러 정책 또한 반미감정을 재생산하는 원인 중 하나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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