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9.23 20:24
수정 : 2012.09.23 20:24
최초 프로축구리그 개막 큰 인기
방송오디션에서 선수 18명 선발
공개처형장 사용되던 축구장서
한줄기 소나기 같은 위안 얻어
“얼굴에 미소를 띈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이렇게 축구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순간 제가 바라는 모든 것이 이뤄졌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프로축구리그 개막전에 출전한 카불 샤힌 아스마이팀의 무즈타바 파이즈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축구장 밖은 자살폭탄테러가 곧잘 일어나는 불안한 상황이지만, 그 안에서는 뜨거운 땀과 눈물이 가득찬 한편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아프간의 정규 리그인 ‘로샨 아프간 프리미어리그’가 아프간에서 엄청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영국 <비비시>(BBC) 등이 22일 보도했다. 8개팀으로 이뤄진 이 리그의 개막전은 지난 18일 열렸고, 10월 중순까지 열전을 펼친다.
축구 리그 열풍은 아프간의 대형 상업방송인 <톨로>가 ‘마이단이 사브즈’(그린필드)라는 제목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더욱 거세졌다. 우리나라의 ‘슈퍼스타 케이’처럼 축구선수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나와 진흙탕을 뒹구는 등의 여러가지 시험을 거친 뒤 프로팀에 입단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이다. 이 방송은 아프간 사람들의 눈길을 텔레비전에 묶었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모두 18명의 선수가 소속팀을 찾게 된 뒤 프로리그가 정식으로 개막하자 폭발적인 반응이 뒤따랐다.
원래부터 아프간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했다. 하지만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후 계속된 혼란은 국민들에게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아프간이 국제 축구무대에 다시 등장한 것은 2002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였다. 그 이후에도 혼란은 그치지 않았고, 축구장은 종종 탈레반의 공개처형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축구팬들에게는 이번 리그가 매일같이 들리는 자살폭탄과 폭력사태에 관한 뉴스에서 눈을 돌릴 수 있는 한줄기 소나기같은 위안이다. 개막전을 보러 온 카불의 대학생인 잠시드 아지즈는 “여기에 앉아서 우리나라의 축구 리그를 볼 수 있는 것은 정말로 큰 행운”이라며 “이 게임은 나에게는 마치 엘클라시코(스페인 프로축구 최고의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간의 경기)를 보는 것 같다”고 감격에 차서 말했다.
아직 아프간 축구리그의 현실은 열악하다. 현재 8개팀의 축구선수 중 정식 계약을 한 선수는 한명도 없다. 모두 기본 경비만 지원받을 뿐이다. 아프간 축구협회장인 케라무딘 카림은 “우리는 그들에게 경기당 500아프가니스(1만1000원)을 지급하고 있다”며 “물론 매우 적은 돈이지만 그들이 계속 경기를 열심히 한다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리그의 우승팀에게는 1만5000달러(1670만원)가 지급되며,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는 국가대표팀에 뽑힐 수도 있다. 현재 해외리그에서 띄고 있는 아프간 선수는 한명도 없지만 국제대회에서 눈에 띈다면 수백만달러 연봉을 받는 성공신화를 쓸 수도 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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