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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세이브더칠드런이 말리 남부 도시 시카소에서 만난 아와(40)가 두 살 된 아들 모디바를 품에 안고 있다. 아와는 지금까지 열두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중 절반인 여섯명을 영양실조와 그에 따른 합병증으로 잃고 말았다. 발견 당시 모디바도 이 지역 풍토병인 말라리아와 영양실조로 인한 발달장애 증상을 앓고 있었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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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희망나눔] 말리에서는
*사헬 : 사하라 사막 남단지대 시탄은 올해 여덟살이다. 친구들과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쳐야 할 나이지만 제대로 앉아 있을 기운조차 없어 보인다. 국제구호개발 엔지오(NGO)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보내온 사진을 보니 팔다리의 피부 곳곳이 노인들처럼 붓고 갈라져 있다. 영락없는 영양실조의 증상이다. 시탄의 어머니 발카사 다오는 “아이가 석달 전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른다”고 했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이들의 사연을 들었다. 코우사 마을, 내전에 가뭄 겹쳐8살 시탄 가족도 식량위기 고통
농가들 가축 잃거나 팔아 몰락 시탄이 태어난 곳은 내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서아프리카 말리의 남부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 시카소의 코우사 마을이다. 사하라 사막의 남단을 이루는 사헬지대에 속하는 말리는 북쪽으로는 알제리, 동쪽으로는 니제르, 서쪽으로는 모리타니, 남쪽으로는 부르키나파소, 기니, 코트디부아르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1892년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해 한때 ‘프랑스령 수단’이라 불리다가 1960년 6월 독립한 뒤 이름을 ‘말리 공화국’으로 바꿨다. 대부분의 서아프리카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내정 불안으로 여러 번의 쿠데타가 터졌고, 지금도 독립을 요구하는 북부 유목민족 투아레그족의 반란으로 내전을 겪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팩트북에 따르면 구매력지수(PPP)를 기준으로 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최빈국(209위) 수준인 1100달러다. 말리가 속한 사헬지대는 최근 들어 심화되고 있는 기후변화 탓에 주기적인 대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2005년과 2010년에 이어 올해도 기근이 이 지역을 덮쳐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자료를 보면, 사헬지역에서는 이런 위기상황이 아니더라도 해마다 64만5000명의 아이들이 손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중 3분의 1인 22만6000명은 시탄처럼 영양실조와 관련된 것이다. 시탄네 가족이 빈곤의 수렁으로 빠진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아프리카 지역을 휩쓸고 있는 식량위기의 본질이 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시탄의 아버지 카손은 농부다. 예전엔 자기 땅을 경작하는 자영농이었지만, 지난해 이 지역을 휩쓴 가뭄으로 소를 잃은 탓에 지금은 다른 사람의 땅을 소작해 가족들을 먹여살린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듯이 농기계가 보급되지 않은 가난한 농촌에서 소는 귀한 농사 밑천이다. 그는 “지난 가뭄에 소가 죽어버려 농사짓기가 매우 힘들다”며 “하루는 내 땅을 돌보고 하루는 지주의 땅을 일구며 품삯으로 음식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 땅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니 좋은 수확을 기대할 수 없고, 그렇다고 소작으로 아이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카손은 “집에 소가 있을 때는 100㎏ 포대로 5포대나 콩을 수확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나쁘다”며 “그래도 이 밭을 일궈 식구 17명을 먹여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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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헬지대서 매년 64만명 사망
무려 22만명이 영양실조 원인 부모는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하루에 한끼도 못 먹는 일상이 이어지다 보니 시탄의 몸에 이상이 찾아왔다. 그렇지만 시탄의 부모는 아이가 아픈 지 석달이 지나도록 병원에 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시탄은 세이브더칠드런의 활동가에게 발견돼 집에서 겨우 5분 거리의 지역 보건분소에 가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아이의 영양실조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며 “즉각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면 비극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손은 “치료를 받은 뒤 아이의 표정이 밝아져 한시름 놓았다”며 “아이가 아프던 지난 두달 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자료를 보면 올해 사헬 전 지역에 걸쳐 무려 1870만명이 식량위기를 겪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문제가 심각한 것은 오랜 내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말리다. 현재 말리 반군은 팀북투 등 북부지역 3개주를 장악하고 지난 4월 독립을 선언한 상태다. 이 지역을 장악한 반군의 핵심 세력은 오랫동안 독립 투쟁을 이어온 투아레그족과 알카에다의 연계조직인 ‘안사르 딘’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내전과 기아 탓에 식량을 얻으려는 말리인들이 주변국으로 밀려들면서 무려 23만2742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시탄이 사는 시카소가 말리에서 식량 사정이 그나마 가장 나은 곡창지대라는 점이다. 같은 지역에 사는 모디바(2)도 석달 전 영양실조와 말라리아가 겹쳐 짧은 생을 마감할 뻔했다. 지난 7월13일 아이를 발견한 세이브더칠드런의 지역보건요원이 어머니 아와(40)에게 빨리 지역 보건분소를 방문하라고 권했지만, 어머니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약값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보건요원이 직접 아이를 차에 태워 보건분소로 데려갔다. 모디바의 키는 또래들보다 20㎝나 작은 70㎝밖에 안 되었다. 말리에서는 모디바처럼 발달지체를 앓는 아이들이 38.5%에 달한다. 모디바의 가족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과정도 시탄네와 거의 비슷하다. 비가 오지 않아 농사를 망친 모디바의 아버지는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가축을 팔았다. 그러나 가축이 없으면 농사를 잘 지을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집은 더 가난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아이를 열둘이나 낳았지만, 그중 여섯은 죽고 말았어요. 태어난 지 다섯달이 된 모디바의 동생을 잃은 것은 올해 초였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병으로 죽었는지 모릅니다.” 모디바를 등에 업은 어머니 아와가 조용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역시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지치고 깡마른 얼굴이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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