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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0.10 21:17 수정 : 2012.10.11 09:47

디나지푸르 현지에서 6년간의 활동 끝에 건립하는 테크니컬센터 부지 정문 앞에서 한국외방선교수녀회 소속 한국 수녀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어린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2012 희망나눔] 방글라데시의 한국인 수녀 3명

가난과 기아 속에서 꽃 같은 아이들과 여성들이 사라진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수백만명의 아이와 여성 등 취약계층들이 굶주림과 차별 속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좀더 나은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한겨레>는 올해 연중기획으로 진행중인 ‘나눔 캠페인’의 하나로 고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기려 만들어진 모금·배분 전문기관 ‘바보의 나눔’과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네 차례에 걸쳐 우리의도움을 기다리는 어린이와 여성들을 찾아간다. 필요한 것은 우리의 작은 관심이다.

월세방 살며 현지인 삶속으로
빈민아동 위한 공부방 만들고
장애여성 찾아가 자활 디딤돌

방글라데시 최북단 랑푸르주에서도 동북단의 거점 도시인 디나지푸르 시내 거리에서는 4년 전부터 동양인 수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외국인이라고는 거의 찾을 수 없는 이곳에서 하얀 수녀복을 입은 동양인 수녀 모습이 도드라져 보이는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이 매일 시내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기 때문이다. 2008년 한국외방선교수녀회 소속 마리피앗(고정란) 수녀를 시작으로, 콘솔라타(김진희), 노엘(김면정), 야곱(윤은순·귀국) 수녀가 차례로 이곳으로 들어와 정착했다.

한국외방선교수녀회가 방글라데시를 해외 선교지로 선택해 마리피앗 수녀를 파견한 것은 2006년. 그는 무작정 방글라데시로 와서, 수도 다카에서 약 2년간 현지 언어 벵골어를 배우며 디나지푸르를 선교지로 결정했다. 이슬람이 국교인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낙후된 빈곤 지역 중 하나인데다, 차별받는 소수민족과 소수종교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선교사로 파견됐으나 이들이 현재 하는 활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봉사와 구호 활동이다. 무슬림 국가에서 섣부른 기독교 선교활동이 가져다줄 역풍도 고려했지만, 열악한 현지 상황에서 구호와 봉사가 궁극적으로 기독교의 사랑과 나눔을 실천할 최선 방안이라고 판단했다.

이들의 구호와 봉사활동도 대형 민간구호단체나 외국 정부 원조기관과는 다르다. 구호단체나 원조기관 차원에서 활동지가 결정되어 파견된 활동가와는 달리 이들은 스스로 디나지푸르를 자신들이 일할 곳으로 선택했다. 구호단체나 원조기관의 프로젝트식 구호활동과는 달리, 현지에 먼저 가서 현지인들과 부대끼는 생활을 하며 자신들이 해야 할 구호와 봉사 활동을 찾아 나갔다. 사업 대상지를 선정한 뒤 그 지역을 위한 구호·원조 프로젝트를 수립해 활동가들이 이를 집행하는 기존 구호 및 원조단체들의 사업 방식과는 사뭇 다르게 접근했다. 자그마한 수녀회 건물도 없이 현지 월세방에서 생활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이 수녀들의 구호봉사활동은 얼핏 보면 미미할 수도 있다. 이들이 방글라데시에 온 지 6년6개월, 디나지푸르에 정착한 지 4년이 되지만, 어쩌면 지금까지는 현지에 밀착한 구호와 봉사를 위한 준비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디나지푸르에 제일 먼저 정착한 마리피앗 수녀는 이탈리아외방선교회(PIME)가 디나지푸르에 세운 직업기술학교(NTS기술학교)에서 오전에는 컴퓨터 기본과 오토캐드 등 컴퓨터교육 교사로, 오후에는 빈민아동 중 여아를 상대로 영어 교사로 일한다. 콘솔라타 수녀는 현지 가톨릭교회가 세운 성빈센트병원의 간호사로 오전에 일한 뒤, 오후에는 이 수녀들이 만든 빈민아동 공부방 교사로 봉사한다. 노엘 수녀는 장애여성들을 위한 직업교육을 꾸리려고 가가호호 방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취약계층인 아동과 여성한테 맞추어져 있다. 특히 노엘 수녀는 취약계층인 여성장애인을 손뜨개질을 비롯한 직업교육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하루 5~6가구를 방문하고 있다. 여성의 시장 보기도 금기시하는 무슬림 문화에서 이들 여성장애인들은 바깥출입을 거의 못하는 삶을 살아왔다. 따라서 현지 구호민간단체와 협력해 여성장애인들을 파악한 뒤 이들의 집을 찾아나선 것이다.

기자가 같이 동행한 곳에서 만난 뿌뚤(15)은 어릴 때 화상으로 얼굴이 망가진 이후 학교는 물론이고 거의 바깥출입을 못하고 살아왔다. 노엘 수녀의 방문에서 뿌뚤은 자활 가능성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부모들은 뿌뚤의 화상 치료 주선을 요구했다. 또 자활교육 참가에 교통비 지원 등의 조건을 달았다.

노엘 수녀는 “장애여성들을 돕기 위한 가구 방문인데, 멀쩡한 성인 남자들이 자신들에 대한 도움을 호소하고 장애여성들의 구호에는 협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구호에서도 성차별이 있음을 암시했다. 노엘 수녀는 이에 앞서 자활교육 참여를 약속했던 장애여성 살레아(27)의 조문을 해야만 했다. 하반신 장애로 휠체어 생활을 하던 그는 적극적인 자활 의지를 보였으나,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면서 사망했다. 노엘 수녀는 쌀 10㎏을 들고 가서, 살레아의 묘지는 가보지 못한 채 부모만 위로하고 돌아와야 했다.

‘바보의 나눔’ 등 도움으로
체계적 구호봉사 지원해줄
테크니컬센터 건립 길 열려

현재 세 수녀는 각개약진하는 자신들의 활동을 조직적으로 통합할 여건 마련에 꿈이 부풀어 있다. 이들의 구호봉사활동을 전개할 테크니컬센터의 건립 청사진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테크니컬센터를 건립할 부지도 확보했고, 본국 ‘바보의 나눔’ 재단 등에서의 도움으로 공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 센터가 건립되면 공부방과 장애여성 자활교육, 청소년 학비 및 생활비 지원 등을 조직적으로 통합할 여건이 된다.

6년 동안 철저히 현지에서 부대낀 결과 이들의 구호와 봉사활동은 ‘저비용 고효율’이다. 공부방 운영도 현재는 매년 100만원 정도의 돈으로 현지 대학생 교사 2명과 함께 아동 30여명을 돌보고 있다. 테크니컬센터가 건립되면, 무엇보다도 현지인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할 수 있다. 현재 각자 진행중인 컴퓨터교육, 여성들에 대한 위생교육, 장애여성 자활교육과 공부방 사업 등에다 현지 구호민간단체들도 힘을 합쳐, 체계적인 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마리피앗 수녀는 “테크니컬센터 건립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 아니라 6년 활동이 낳은 산물”이라며 “처음부터 현지인과 부대끼는 활동으로 구호와 봉사의 기반이 생겼고, 테크니컬센터는 이를 집적한 하나의 토대”라고 말했다. 디나지푸르는 아프리카 난민 지역과는 달리 절대 기아로 생명이 당장 위협을 받는 곳이 아니라, 빈곤이 삶의 구석구석에 찌든 지역이다. 절대 기아로 생명이 위협받는 긴급구호 지역에 필요한 구호기관의 대형 프로젝트보다는 현지인의 자활과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이들 수녀는 현지에서의 긴 준비와 모색,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디나지푸르/글·사진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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