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매거진 <나·들> 창간호
‘유전자변형 농산물’ 업체와 미 대선후보의 끈끈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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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배럿 Wayne Barrett <네이션> 인스티튜트 펠로
밋 롬니는 2006년 이후 미국 대통령이 되기 위한 선거운동을 해왔다. 그러나 사업가로서 롬니의 부정적 면모는 놀랍게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롬니와 몬산토의 관계야말로 사업가로서 그의 부정적인 경력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예가 될 것이다.
몬산토가 어떤 기업인가? 지난 9월 중순부터 벌어지고 있는 ‘몬산토를 점령하라’ 운동의 대상인 기업이다. 유전자변형(GMO) 농산물 생산을 주도하는 몬산토에 항의하는 운동인 것이다. 몬산토의 어두운 역사는 1980∼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폴리염화비페닐(환경호르몬 물질), 고엽제, 우유 생산량 증가를 위한 소 성장호르몬제, 인공감미료 뉴트러스위트, 자궁 내 피임기구, 유전자변형 씨앗, 제초제 등이 모두 몬산토 스캔들의 주역이다. 몬산토는 롬니가 다니던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의 가장 큰 고객이었다. 롬니는 환경문제의 영역을 바꿔 몬산토를 화학에서 유전공학의 거물로 변신하는 데 도움을 줬다.
롬니와 몬산토의 관계는 중요하다. 롬니가 자랑스러워하는 사업 경험의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만은 아니다. 몬산토라는 기업이 추구하는 목적이 전 지구적 근심거리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만약 롬니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면, 환경보호론자들이 ‘어둠의 괴물’이라 부르는 몬산토의 오랜 친구가 최고위층에 오르는 것이다.
롬니와 몬산토의 로맨스는 1977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간다. 하버드대학 로스쿨과 경영대학원을 마친 롬니는 보스턴에 있는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에 입사했다. 1973년 창립한 베인앤드컴퍼니가 그 해 맞은 첫 번째 고객이 몬산토다. 베인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랠프 윌라드는 2007년 일간지 <보스턴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롬니는 화학산업의 기술적인 면에 대해 철저하게 배웠다. 마치 경영대학원이 아닌 공대를 나온 사람 같았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몬산토의 사장단은 윌라드를 거치지 않고 롬니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당시 몬산토의 최고경영자(CEO) 존 W. 한레이는 30살의 롬니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기억했다. 한레이는 롬니와 가까워졌고, 그와 베인앤드컴퍼니 사장 빌 베인은 베인캐피털이라는 벤처회사를 차려 경영을 맡김으로써 롬니를 붙잡아뒀다. 한레이는 심지어 베인캐피털에 초기 투자금으로 100만 달러를 내놓기도 했다. 한레이는 베인 쪽 인사가 아닌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롬니가 베인앤드컴퍼니와 베인캐피털 두 회사를 오가며 경력을 쌓는 데 도움을 줬다. 그것이 바로 롬니가 그토록 자랑해마지 않는 2년간의 사업 경험이다. 빌 베인과 롬니는 1985년까지 몬산토의 한레이 후임인 리처드 마호니가 그들과 관계를 끊기 전까지 몬산토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베인앤드캐피털의 최대 고객은 몬산토
롬니가 몬산토와 일을 시작하기 1년 전인 1976년, 의회는 몬산토가 독점으로 제조하는 액체화학물질인 폴리염화비페닐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몬산토는 수 년간 법정 공방에 시달렸고, 베인사도 곤욕을 치렀다.
게다가 몬산토는 베트남 전쟁 중 사용된 고엽제 관련 소송으로 이미 포화 상태였다. 다이옥신이 함유된 고엽제 사용으로 1천만 명에 달하는 베트남인과 미국인이 피해를 입었다. 1984년 5만2천명의 참전군인에 대한 보상 문제를 해결하는데 1억8천만 달러(약 2천억 원)에 달하는 합의금이 들었다. 예일대의 한 환경보호주의 학자는 이를 두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화학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베인앤드컴퍼니와 함께 일하는 동안 몬산토의 폐기물 담당 이사를 지낸 얼 비버 박사는 베인이 분명 ‘폴리염화비페닐과 다이옥신 사건’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사건들이 몬산토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들었고, 회사는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베인은 몬산토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사업에 중점을 두라고 권유했다. 비버는 ‘생물학에 기초를 둔 생명과학 제품’을 필두로 유전자변형 곡물과 큰 이익을 남기는 제초제 ‘라운드업’ 등이 당시에 나왔다고 기억해냈다. 베인은 이런 제품을 밀고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버는 롬니가 당시 주요 기획자였으며 다른 사람들이 수집한 자료를 검토해 대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그는 롬니가 주로 ‘높은 분들’을 상대했다고 밝혔다.
비버는 몬산토와 베인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오로지 ‘이번 분기, 다음 분기 또는 내년의 재정상태’였다고 한다. 비버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신문의 주식란에 나오는 것과는 다른 요소들을 고려한다”며 말을 마무리했다.
몬산토가 만든 최초의 생명공학 제품은 소 성장호르몬이다. 이 제품 역시 몬산토의 골칫거리가 된다. 젖소들에게서 장애가 발생한 것이다. 겁에 질린 부모들은 이 제품이 아이들 건강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미국 이외의 선진국에서 반대에 부딪혔고, 미국 기업인 스타벅스에서 월마트에 이르기까지 판매를 금지하기 시작했다. 몬산토는 소 성장호르몬을 1981년에 개발했다고 밝혔다. 베인과 함께 한 기간의 중반쯤이다. 하지만 1993년까지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2008년에 이르러서야 몬산토는 호르몬제 생산에서 손을 뗐다. 아마 기술 개발에 투자한 비용보다 훨씬 못 미친 가격에 넘겼을 것이다.
유전자변형 농산물로 고수익
몬산토가 만든 제초제 ‘라운드업’에 저항력을 갖춘 유전자변형 옥수수·콩·가축 사료 작물인 알팔파와 씨앗이 이제는 몬산토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국제적 논쟁에 휘말리고 있는 몬산토는 최근 브라질 법정에서 최소 20억 달러(약 2조2천억 원)짜리 소송에서 패했다. 500만 명의 콩 재배 농부들이 몬산토를 고소했다. 브라질 농부들이 제기한 문제는 미국 농부들의 불만과 같다. 농부가 다음 파종을 위해 추수한 씨앗을 남겨놓는 것은 관행이다. 하지만, 몬산토는 농부들에게 씨앗을 남기지 않기로 약정하는 계약을 강요한다. 이듬해에도 씨앗을 다시 팔기 위해서다. 몬산토는 씨앗을 남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씨앗 경찰부대’도 고용한다.
몬산토는 씨앗의 안전성을 주장하고 나섰고, FDA도 몬산토의 주장을 지지했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유전자변형 옥수수가 신체 장기 손상·비만·당뇨·알레르기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2010년 유전자변형 씨앗이 약속한 만큼의 수확을 내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유전자변형 종자의 90%를 공급하는 몬산토의 수익이 곤두박질쳤다. 몬산토는 이미 유전자 변형 감자·토마토·밀·쌀·아마·약초 등의 종자 생산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소비자의 저항 때문이다. 페루에서는 최근 유전자변형 제품 사용을 10년간 금지시켰다. 헝가리는 몬산토 옥수수밭을 없앴다. 식품안전센터에 따르면 유전자변형 제품에 대한 수입 금지나 제한, 적극적 감시제도를 도입한 나라가 90개국이라고 한다.
몬산토가 생명과학으로 중심을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이다. 그 해에 몬산토는 캘리포니아대 생물학자 하워드 슈나이더만을 연구책임자로 영입하고 유전자변형 호르몬과 종자 개발에 매년 수억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몬산토의 홈페이지를 보면, 1981년까지(베인앤드컴퍼니가 몬산토의 전략 수립에 깊숙이 관여하던 시절) 생명과학은 “몬산토의 전략적 연구 분야의 핵심”이었다고 쓰여 있다.
몬산토 출신들 대거 기용
지난 3월 대통령 예비선거 기간에 롬니는 11명의 농업 자문 위원을 지명했는데 몬산토 출신으로 가득하다.
워싱턴의 로비스트 랜디 러셀. 그의 회사는 1980년대 창립 이래 줄곧 몬산토와 거래하고 있으며 1998년 이후 로비 수수료로 240만 달러를 챙겼다.
네브래스카주의 상원의원인 마이크 조한스는 롬니 자문단의 공동의장으로 지명됐다. 그는 몬산토와 관련된 지원금 9500 달러를 받았다. 조한스는 네브래스카주 주지사로 6년, 상원의원으로 3년 동안 일했다. 그 사이 조지 부시 정부의 농무부 장관을 지냈다. 2002~2003년, 그는 두 개의 주지사 모임의 수장을 맡았다. 롬니도 두 모임 중 하나에 참여했다. 조한스는 외국을 다니며 유전자조작 식품의 시장 확대를 추진했고 유럽연합(EU)의 유전자변형 의무표시제를 강하게 비난했다. 레이건 정부 때 만들어진 이 제도는 유전자변형 제품이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표시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한스가 2005년 농무부 장관이던 시절, 몬산토의 알팔파는 최소한의 의무표시 없이 농무부의 승인을 받았다. 결정은 연방법원에서 뒤집어졌다. 조한스 팀은 몬산토의 사탕무도 똑같이 승인을 받게 해줬다.
롬니 진영의 또 한 사람인 존 블록, 그는 러셀의 멘토다. 블록이 레이건 정부의 농무부 장관으로 있을 때 러셀을 차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현재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는데 몬산토가 그 프로그램의 후원사다. 블록은 라디오에서 몬산토 반대자들을 ‘환경에 미친 정신병자’로 폄하한다. 그는 미국의 신선작물연합의 대표이자 전국돼지고기생산위원회의 전 회장이기도 하다. 두 조직 모두 러셀의 고객이며 몬산토의 협력사이자 롬니 지지그룹에 속해 있다.
롬니 진영의 또 다른 인사는 몬산토가 자금을 댄 크롭라이프 대표 제이 브룸이다. 크롭라이프는 유전자변형 제품 무역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제초제 생산자 모임이다.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크롭라이프의 이사진은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에 유기농 정원을 꾸민다는 소식을 듣자 말 그대로 ‘몸서리치며’, 대통령 부인이 화학적 농업을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편지를 썼다. 하지만 몬산토는 오바마에 대해서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였다. 오바마가 몬산토의 오랜 동지인 전 아이오와주 주지사 톰 빌색을 농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이후부터 특히 더 조심스럽다. 빌색은 몬산토의 알팔파가 법원이 강제하는 환경영향평가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가 곧 백지화했다. 몬산토의 로비스트 크로포드와 가까운 빌색은 편법으로 사탕무에 대한 규제도 풀었다.
오바마 정부 농무장관도 몬산토 사람
프랭크 레이닝은 몬산토의 사장으로, 한레이가 1973년 지명했다. 레이닝은 “몬산토는 베인앤드컴퍼니에게 최초의, 가장 큰 컨설팅 고객”이며, “베인과 몬산토의 관계는 베인이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베인앤드컴퍼니의 창업자 중 한 명인 패트릭 그라함은 몬산토가 초기 고객인 것을 인정하며 매년 수백만 달러의 수수료를 보내왔다고 했다. 레이닝과 전 몬산토·베인의 사장단 11명은 인터뷰를 통해 베인은 몬산토를 구조조정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달라붙었으며, 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일일히‘확인’했다고 한다.
베인캐피털의 컨설팅 결과 몬산토의 인력감축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몬산토는 1979년 최고 6만4천명에 달하던 사원을 현재 2만 명으로 줄였다. 그 원인 중 일부는 베인과 한레이 그리고 몇몇이 40억 달러 상당의 사업을 포기하도록 한 데 있다. 몬산토 홍보실은 <네이션>이 보낸 질문에 대부분 답하지 않았다. 현재 근무 중인 한 간부에 따르면 베인은 사업 다각화와 합병·경영합리화·감원·비용감축 등을 담당했다고 한다.
롬니를 베인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하는 그라함은 롬니가 “결과물을 만드는 데 중요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에 따르면 롬니는 몬산토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라함은 그와 베인사가 어떻게 몬산토와 일했는지 설명하면서 “우리는 종자·제초제·이 밖의 기본적 화학약품 사업을 담당했으며 몬산토의 오른팔이었다. 우리는 이사회에 직접 보고했다. 다들 우리의 친구이자 동업자다. 우린 몬산토의 뿌리까지 다 안다”고 밝혔다.
그라함은 베인앤드컴퍼니가 몬산토와 함께 일하며 이뤄낸 가장 중요한 사업이 ‘완전히 새로운 가치의 제품’, 즉 유전자변형 제품과 제초제를 개발해 ‘대박’을 친 것이라고 말했다. 그라함은 베인이 일궈낸 사업을 자랑하며 “미국 농업 경제를 완전히 바꿨다”고 말했다. 그 결과 몬산토는 ‘세계 최대의 농업 관련 사업’을 이끌게 되었다. 그는 유전자조작 종자·제초제·관련 제품 모든 것은 “한레이의 비전”이었다며 “우리는 그가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 분석했다”고 전했다.
그라함의 분석에 비춰보면, 베인앤드컴퍼니, 즉 롬니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몬산토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재계 거물이 생산하는 유전자변형 제품은 전세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네이션>은 몬산토의 대변인 켈리 파워스에게 베인앤드컴퍼니와 롬니가 몬산토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물었다. 파워스는 지금의 몬산토는 그때와는 다른 회사라고 말했다. 아마 ‘과거의 몬산토’가 2000년 들어 두 번의 합병을 거쳐 2002년에 새단장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몬산토 역시 과거와 같은 제품군을 같은 설비로 생산하고 있으며 과거의 사장단도 남아 있다. 과거의 문제도 여전하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조사기관인 코발렌스는 2010년 581개의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평판과 윤리지수를 발표했다. 몬산토는 ‘사망’으로 분류됐다.
ⓒ The Nation 번역 하수정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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