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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0.25 20:59 수정 : 2012.10.26 14:38

<언터처블: 1%의 우정>

사람매거진 <나·들> 11월 창간호
두 장애인의 유쾌한 대화… 경쟁사회·섹스에 대한 직설

<나·들> 창간호 둘러보기-구독신청 

펠덴키르헨 <슈피겔> 기자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이하 <1%의 우정>)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전신마비 기업인 필리페 포초 디 보르고(모로코 거주)와 독일 대형 공개방송 <내기해봅시다!>에 출연 중 추락사고로 척추마비가 된 스턴트맨 사무엘 코흐(독일 베를린 거주)가 만났다. <슈피겔>의 초청으로 독일 뮌헨의 한 호텔에 여장을 푼 이 두 남자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장애인으로 살면서 알게 된 장애인의 외로움, 불편함, 소망 등이 그들 특유의 유머에 담겨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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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하루 앞둔 날 저녁, 사무엘 코흐와 필리페 포초 디 보르고는 저녁 식사 겸 첫인사를 나눴다. 마침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준결승전(독일 대 이탈리아)의 텔레비전 중계가 한창이던 뮌헨 시내 어느 음식점. 무려 37년이라는 나이 차이와 출신 배경이 사뭇 다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이내 스스럼 없이 대화를 시작했다. 함께 웃고, 함께 얘기하고… 양쪽 모두 상대방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은 것 같았다. 가혹한 운명의 철퇴를 맞고 전혀 뜻밖의 인생을 살게 된 두 남자.

 올해로 61살인 필리페 포초 디 보르고는 자서전이 <1%의 우정>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고 이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은 숟가락을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말마따나, 프랑스의 역사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이다. 필리페 포초 디 보르고 공작 잡안과 보그 후작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나, 가문의 성채와 영지의 저택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 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에는 모엣&샹동 샴페인 회사의 지배인으로 일했다. 그다음엔 모엣&샹동 못지않게 저명한 포메리 샴페인 대표이사로 재직했으니, 가히 ‘샴페인 인생’이었다고 할 만하다.

 필리페 포초 디 보르고에게는 취미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패러글라이딩. 사무엘 코흐가 파워보킹(보킹이 제작한 스프링 죽마)에 관한 한 최고 수준임을 자처하듯, 필리페 역시 패러글라이딩 기술에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캐노피(낙하산과 비슷한 공중 활주용 채양)를 활짝 펼친 채 공중을 미끄러지는 동안, 즉석에서 담배를 말아 입에 물고 피우면서 동시에 워크맨에서 나오는 음악을 유유자적 들을 만큼.

 그러나 그는 42살이던 1993년, 그렇게 자신하던 패러글라이딩 도중 추락해 척추를 부러뜨렸다. 당시 상황을 돌이켜 본 필리페는 아마 그날 정신을 집중하지 못해 사고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했다. 스위스의 자회사를 막 폐쇄해야 할 참이었다. 함께 일해온 수많은 직원들을 해고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고 한다. 사고가 일어난 지 3년 후에는 암으로 여러 해 병상에 누워 있던 아내 베아트리체마저 세상을 떠났다. 필리페는 우울증에 빠졌다. 영화 <1%의 우정>을 통해 알려졌듯이 북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남자 간호사 압델이 없었다면, 압델이 기존 틀을 벗어난 기발한 방법으로 치료해주지 않았다면 필리페는 그때 우울증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필리페는 카디쟈와 재혼해 모로코에서 살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는 데 모로코 기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한다.

 사무엘 코흐는 올해 24살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운동광이었다. 6살 때 체조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운동이 없을 정도다. 번지 점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사고를 당했다. 2011년 12월 4일, 독일 제2 공영방송 의 프로그램 <내기해봅시다!>에 출연한 사무엘은 스프링 달린 죽마를 신고 연속해 서행해오는 차를 하나씩 넘는 묘기 중 네 번째 차량을 넘은 후 착지에 실패했다. 사무엘은 공중제비 후 그의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 지붕에 머리를 부딪히고 튕겨 나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고 말았다. 방송은 중단됐다. 미동도 없이 한참을 바닥에 엎어져 있다가 잠깐 눈을 뜨고서 “다시 걸을 수 있었으면…”이라고 중얼거린 사무엘은 이내 혼수상태로 빠져들었다.

 

 이 사고가 일어나기 며칠 전, 그에게는 탄탄한 미래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독일 하노버대학 음악연극방송학과의 입학 허가를 받은 것이다. 입학하기 어려운 학교에 허가를 받고 나자, 그때까지 수개월에 걸쳐 과 협상해오던 <내기해봅시다!> 출연이 갑자기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다. 하지만 방영일이 코앞에 닥치자 약속을 취소하는 게 썩 마음 편한 일이 아니어서 그냥 나가게 됐다고 사무엘은 책 <두 개의 삶>에 쓰고 있다. 되도록이면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는 편으로, 일을 거절하는 데 익숙지 못한 그의 성격 탓이었다.

 

 사무엘과 필리페, 두 사람은 모두 이른바 ‘테트러플리지어(Tetraplegia)’, 즉 온몸이 전부 마비된 환자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부위는 오로지 머리뿐인데, 그것조차 100% 여의치 않다. 전신불구 중 제일 심한 형태다. 사무엘은 미약하나마 오른팔을 조금 움직일 수 있지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호텔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공손함의 결투(?)가 벌어진다. 한 번에 휠체어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넓이라, 서로 상대방을 먼저 태워 보내기 위해 고집을 피운다. 막상막하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이 끝없는 대기 상태에 결정타를 마련한 사람은 사무엘이다. 그는 전기휠체어를 운전해 필리페 뒤로 돌아가서 그의 휠체어를 가볍게 밀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대단히 피곤해요, 나나 사무엘이나 할 것 없이.” 이튿날 아침, 인터뷰하기 위해 마련된 방으로 안내하던 중 휠체어에 앉은 채 필리페가 던진 첫 마디다. 사무엘도 피곤하다고 투덜거린다. 통증이 심해 밤새 편안하게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니 “빨리 시작해서 시간 낭비 없도록 하자”는 재촉이었다. 두 사람이 편안하게 서로 마주 볼 수 있도록 휠체어를 배치했다. 고개를 힘들게 옆으로 많이 돌리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하게끔. 그 옆 적당한 곳에 프랑스어 통역자가 앉았다. 필리페는 “우리 같은 사람은 몸이 얼마나 오래 지탱해줄지 전혀 알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또 그는 씨익 웃으면서 “그런 의미에서 우리 전신마비자들을 ‘예측 불허자’라고 부를 수 있을 거예요”라고 덧붙인다.

 

 슈피겔 기자 (이하 슈피겔) : 사무엘 코흐 씨, 영화 <1%의 우정>이 마음에 들던가요?

 사무엘 코흐(이하 코흐) : 아, 물론이죠. 내가 그 영화의 주제와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점이 있어서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슈피겔 : 반신불구자의 삶이 이 영화에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까?

 코흐 : 현실을 잘 반영한 장면이 여러 군데 있어요. 다만, 실제 일상에서 일이 복잡, 난감, 불쾌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슬며시 장면 전환이 되는 건 아쉽더군요. 예를 들어, 주인공 필리페가 비행기 앞에 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면이 있어요. 다음 순간 얍! 장면이 바뀌어 필리페는 어느 새 비행기 안에 앉아 있는 거예요. 탑승할 때까지 겪었을 이런저런 고충에 대해선 일언 반구도 없죠. 옷 입고 벗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얍! 장면 컷, 다음 장면에선 이미 깔끔히 옷 다 갈아 입은 모습만 나오죠. 현실에서도 그렇게 모든 게 간단하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내 경험으로 보면, 그런 거 하나만 해도 최소한 30분은 걸리거든요.

 슈피겔 : 영화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코흐 : “팔 없으면 초콜릿도 없지.” 장면이에요. 필리페의 간호사가 초콜릿을 필리페 코 앞에 들어 보이면서 이 말을 하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사실 나도 그 비슷한 말을 친구들이나 가족에게서 왕왕 들었으니까요.

 슈피겔 : 너무 잔혹하고 야비한 표현 아닌가요?

 코흐 : 난 그냥 익살스럽다 정도로 느껴요. “팔이 없으면 초콜릿도 못 얻어 먹는다.” 그게 현실이거든요. 만사를 굳이 현실보다 멋진 것처럼 미화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슈피겔 : 그 외에 공감할 만한 부분, ‘아, 이거 바로 내 얘기구나’ 하고 느낀 장면이 있습니까?

 코흐 : 밤에 자려고 누워 있던 필리페가 통증이 너무 심해지자 도저히 참지 못하고 소리 지르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게 뇌리에 남아 있어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침대 위에서 뒹구는 모습을. 아 참, 여기서 뒹군다는 건 마음속에서 딩군다는 뜻이에요, 눈에 보이는 몸은 움직일 수 없으니까. 결국 간호사가 달려와 필리페를 무조건 밖으로 데리고 나가죠. 한밤중에. 휠체어를 밀고 시내를 온통 휘젓고 다니는 거예요. 아픈 걸 잠시 잊어버리게 하려고. 너무 아파서 그렇게 뜬눈으로 밤새 뒤척이는 경험을 나도 자주 하거든요. 다행인 일은 그럴 때, 설령 그게 새벽 3시라 해도 마다 않고 나를 해변으로 데려다주는 친구들이며 간호사들이 내게 있다는 사실이죠. 꼭 영화에서처럼.

 슈피겔 : 포초 디 보르고 씨, 어떻게 사무엘 코흐 씨의 운명적 사고에 대해 알게 됐습니까?

 필리페 포초 디 보르고(이하 포초 디 보르고) :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모로코 집으로 독일 텔레비전 팀이 찾아왔어요. 사무엘의 사고에 대해 설명한 후, 사무엘에게 위로의 말을 한두 마디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슈피겔 : 그때 사무엘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군요. 이후 그와 서너 번 통화했던 것으로 압니다. 주로 무슨 얘기를 나눕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관한 최신 정보, 알아두면 좋은 요령 같은 걸 얘기합니다. 여러 분야의 지식을 교환하는 거죠. 장애자로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수훈련이 필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서로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게 필요하고 또 유익합니다.

 코흐 : 어제 필리페를 처음으로 만났는데, 느낌이 참 편안했어요. 굳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어요. 대부분 필리페가 잘 아는 일들이었으니까요. 예를 들어 환상통에 시달리면서 밤을 세운다는 게 어떤 건지 그에겐 자명한 얘기거든요. 혼자 힘으로는 숨을 쉴 수 없는 상태, 숨을 들이마신 채로 있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 같은 것도 다 알고 있어요. 필리페는 이미 그런 걸 다 체험했어요. 나는 체험한 것도 있고 앞으로 체험할 것도 있지만. 그게 친근감을 준 것 같아요. 아마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거예요.

 슈피겔 : 필리페에게서 배운 점이라면 어떤 걸 들 수 있을까요?

 코흐 : 이미 재활병원에서 “사무엘, 늘 그렇게 공손하고 친절하게만 굴다간 아무것도 안 돼”라는 주의를 많이 들었어요. 자를 건 자르고, 주변 사람들에게 차갑게 굴 줄도 알아야 한다는 얘기였죠. 결국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건데, 자기 위주로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내가 타고난 천성과 정반대되는 원칙이었어요. 그런데 어제 저녁 필리페를 처음 본 순간 ‘그는 주변 사람들을 참으로 다정하게 대하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얼핏 생각하기에 필리페 자신이야말로 무력하기 짝이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늘 남을 도울 태세가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물어봤죠. 불친절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느냐고. 아니라고 하더군요. 휠체어 생활 19년 동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고. 그러고는 상당히 실용적인 이유를 대더군요. “우리 장애자에게는 주변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 사람들에게 의존해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상냥한 게 영리한 일 아니겠는가”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삶의 원칙이 확실하게 인가를 받는 기분이었어요. ‘그렇다, 내가 믿는 대로 살아도 된다. 확신을 갖고 남을 좋은 마음으로 대하면서 살자. 그게 오히려 내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게 옳고, 또 가능하다. 여기 살아 있는 증거가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슈피겔 : 거의 20년을 전신마비자로 살아온 경험에서, 사무엘에게 더 일러주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포초 디 보르고 : 뭐, 사무엘에게 거창하게 말해줄 만한 것은 따로 없어요. 대신 취재진 여러분에게, 나아가 장애자가 아닌 모든 이들에게 꼭 한마디하고 싶습니다.

 슈피겔 : 어서 말씀하시지요.

 포초 디 보르고 : 나는 비단 우리 장애인뿐만 아니라 실은 세상 사람 모두가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시야를 넓혀서 보면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서로 의존 관계이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게 상냥하게 하고, 나아가 자기들끼리도 상냥하게 교류한다면, 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될 겁니다. 친절은 모든 이에게 이롭습니다.

 슈피겔 : 캐노피를 등에 단 채 추락해서 척추 손상을 입은 게 42세 되던 해였죠. 만약 그 사고가 사무엘이 사고를 겪은 나이(23살)에 일어났다면, 극복하기가 좀 수월했을 것 같습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사무엘처럼 젊은 사람에게는 그런 운명의 채찍을 소화해내기가 무척 어려울 거예요. 내 또래하고는 비교가 안 돼요. 나는 인생의 커다란 전반부는 이미 다 살고 난 다음에 사고를 만났어요. 샴페인 매니저로 20년 동안 활발하게 일했고, 성공적으로 기업을 운영했지요. 그렇게 살고 난 후 42살이 돼서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건, 아직 젊디젊은 23살 젊은이가 새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수월합니다. 이 점에서는 내가 사무엘보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어요. 장애인 사업에 뛰어드는 건 나이가 지긋할수록 무리가 적으니까요.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사무엘은 예상 수명이 나보다 훨씬 높아요. 장애를 맞는 나이가 어릴수록, 신체 적응 능력도 그에 반비례해서 크기 때문이지요. 사무엘은 별로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슈피겔 : 코흐 씨, 같은 의견입니까? 필리페가 훨씬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까?

 코흐 : 물론 나이에 따라 적응이나 극복 능력에 큰 차이가 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필리페와 나, 두 사람 중에 현재 누가 더 행복하고 더 불행한지를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운명의 피해란 어느 한 카테고리에 넣어 일괄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성격의 일이니까요. 문제를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개인에 따라 다르고요. 어떤 사람에게는 부모의 별거가 다른 사람들이 반신불수를 겪는 것보다 더 괴로운 체험이 될 수도 있어요.

 슈피겔 : 부모 품을 떠나 독립된 개인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순간, 돌보는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되어 다시 부모 슬하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제일 바람직하지 않은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봐야 할까요?

 코흐 : 그 당시 나는 의욕이 최고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인생을 제대로 시작해보려는 바로 그 순간, 운명이 짖궂게 제동을 걸어버린 셈이죠. 물론 그런 운명이란 게 사람 사정 봐가며 유리한 시간 골라서 일어나주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 사고는 참으로 뼈아픈 사건이었고,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나는 지난 20년 동안 행복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내가 누릴 수 있던 그 멋진 시간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아버지 크리스토프 코흐는 2m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의자에 앉아 대화를 경청하면서 사무엘이 머리를 지탱하는 상태며 얼굴 표정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한다. 틈틈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병에 빨대를 꽂아 아들이 마실 수 있도록 턱 가까이로 가져다주기도 한다. 한참 후에는 마사지로 사무엘의 어깨 근육을 풀어주기도 한다. 포초 디 보르고는 미리 밝힌 대로 지독한 커피 애호가의 면모를 아낌없이 드러내 보인다. 물론 그도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어서, 커피잔에 담긴 커피를 빨대로 조금씩 마시지만.

 

 슈피겔 : 코흐 씨에게 일어난 운명적 사건은 수백만 시청자가 생방송중계를 통해 함께 지켜봤습니다. 또한 포초 디 보르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해 독일에서만 8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관객 수가 2천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두 분은 유럽에서 제일 유명한 전신마비 환자가 됐습니다. 저주입니까, 축복입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아무래도 축복이라고 봐야겠죠. 이 유명세를 이용해 다른 휠체어 환자들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혹시 알아요? 비장애자들을 위해서도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을지. 좋은 데 쓰일 수 있다면 시스템의 어릿광대가 되는 것도 참을 수 있어요. 괜찮아요.

 코흐 : 장애인으로서 유명한 사람이 된 게 내게는 저주도 되고 축복도 되는 것 같아요. 방 안에서 혼자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 혼자서는 꼼짝달싹 못하는지라 기분이 가라앉아요.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는 상황이면 기분 나쁘고 정말 불편해요. 그런데 한술 더 떠서 카메라 플래시가 나를 향해 번쩍번쩍 터지면, 그야말로 최악이죠. 그러나 필리페 말처럼 만약 이 유명세가 뭔가 좋은 일에 공헌하거나 일종의 생산성을 띨 수 있다면, 개인으로서는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사고였지만 다른 차원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다른 곳에는 쓸모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라도요.

 슈피겔 : 포초 디 보르고 씨도 휠체어에 누운 상태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되면 사무엘처럼 불편한 느낌이 듭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전신마비 상태가 되었을 때, 난 마흔둘이었어요. 마흔이면 불혹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남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괘념하지 않아요. 하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요. 이 사회는 젊음·능력·운동성·박력 같은 가치를 너무 높이 칩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느릿느릿한 사람, 빠릿빠릿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참을성이 적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올 수 있을까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갖고 있는 재산인 미소와 유머로 관심을 끄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일단 교류가 시작되면, 비장애인들과 장애인 사이에 소통의 길이 열립니다. 우리와 접촉해보세요!

 슈피겔 : 교류가 시작되게끔 어떻게 유도하는가요?

 포초 디 보르고 : 여성이 내 쪽으로 오는 경우, 그 때마다 나를 팔로 안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남성이 오면 손을 잡아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비장애인들의 불안을 해소시키는 거죠.

 슈피겔 : 코흐 씨,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대할지 몰라 어색해한다는 걸 감지하곤 합니까?

 코흐 : 그럼요. 그럴 때 나도 필리페 비슷한 식으로 대처하려고 노력해요. “뽀뽀해주세요”라고 하거나, 뭐 그 비슷한 식으로 말하는 거죠.

 슈피겔 : 사람들이 서툴게 당신을 대하는 경우를 예로 든다면?

 코흐 : 아주 전형적인 예로 악수하자며 손을 내 코 앞으로 내미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참 동안 손을 내민 채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침내 무안함에 얼굴이 새빨개져서 손을 거둬들이죠. 내가 손을 맞잡을 수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닫고 말이에요.

 포초 디 보르고 : 파리에서 살면 가끔 일어나는 일인데, 길 가다가 휠체어에서 굴러떨어질 때가 있어요. 그럼 난 사람들에게 “나 좀 다시 휠체어에 앉혀주세요!” 하고 부탁해요. 그런데 아무도 나한테 손을 대려 하지 않아요. 결국 소방차가 와서 도와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보통이에요. 이런 건 그저 내가 ‘일’이라고 부르는 우리 일상 중 한 부분에 불과해요.

 코흐 : 나를 신체 장애뿐 아니라 정신 장애까지 있는 사람처럼 대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요.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내 쪽으로 몸을 굽히고선, 음절을 무지무지하게 뚝뚝 끊어가면서 “내- 입-에-서- 나-오-는-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요?” 하고 묻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뭐라는지 아세요? “알아듣다 말다. 그런데 너 어떻게 된 거니? 말투가 왜 그렇게 희한해?” 이러죠. 휠체어 하면 곧장 정신박약을 연상하는 경우가 있다니깐요.

 슈피겔 : 정상 보행인일 때, 어땠나요?

 포초 디 보르고 : 인생이 성공 가도였고, 그래서 늘 빠른 걸음으로 의욕에 넘쳐서 걸어 다녔죠. 그러느라고 주변 사람들을 눈여겨본 적이 없었어요. 이 세상에는 전혀 다른 박자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살았죠. 알밤을 얻어맞아 싸죠. 멈출 수 있기 위해서,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어요.

 슈피겔 : 쓰신 책들을 보면, 도처에 위트가 번득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다루는 방식이 가히 익살스럽다 할 만합니다. 전신마비 장애자에 관한 위트 중에 특별히 좋아하는 게 있다면?

 포초 디 보르고 : 어디서 전신마비자를 볼 수 있는지 아세요?

 슈피겔 : 모르겠는데요.

 포초 디 보르고 : 그를 남겨 두고 지나와버린 바로 거기에서 볼 수 있어요.

 슈피겔 : 장애자들이 만든 것만 장애자 위트라고 부르나요?

 코흐 : 꼭 그런 건 아니에요.

 포초 디 보르고 : 좋은 위트면 난 그걸 그냥 접수해요. 누가 만들었든 상관없이.

 슈피겔 :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1%의 우정>도 자기 반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호사 압델이 필리페에게 “나라면 차라리 스스로 총을 쏴 죽고 말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자 필리페가 “반신불구자에게는 그것도 어려워”라고 대꾸하죠. 자기 자신의 운명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웃어 넘길 수 있는 겁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유머는 일종의 도구예요. 나는 사람들이 나를 한구석에 처박아놓고 거들떠보지 않을까봐 늘 겁을 먹고 있어요. 도움이 필요한데 내 육체적 힘으로는 사람들을 그쪽으로 움직일 수 없으니까, 대신 사람들을 웃기는 거예요. 사람들은 한바탕 웃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나한테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까요. 장애자의 처지에서 보면, 유머로 도피한다는 건 우리가 처한 상황을 실용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양쪽 모두를 위해서 유익하죠.

 코흐 : #링엘낫츠??#라는 독일 시인이 있어요. 그는 “유머는 분노를 잠가 주는 단추”라고 했어요. 곰곰이 씹어볼 가치가 있는 말이죠. 그뿐 아니라 웃는 게 우는 것보다 훨씬 재밌잖아요? 적어도 나한테는 그래요.

 슈피겔 : 두 분 다 마비된 몸의 상태를 가혹하다 할 만큼 명료하게 묘사하는 편입니다. 코흐 씨의 책에서 “내 두 손은 축 늘어진 것이, 흡사 퇴화된 오징어 더듬이 같다”는 문장이나, 포초 디 보르고 씨의 “포초는 생식력을 잃었다. 몸뚱이는 피사의 사탑 모양으로 기울어진 채 한번은 이쪽으로, 그다음엔 또 저쪽으로 피그르피그르 무너지곤 한다”는 표현이 그 좋은 예가 되겠는데요. 도대체 자신에게 그렇게 가혹한 이유가 뭡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세상 일을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하기 때문이죠. 인생은 영화가 아니지 않습니까.

 코흐 :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게 당연해요. 사지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 팔다리는 덜렁덜렁 그저 달려만 있다든지, 흐물흐물한 탑처럼 피식 쓰러져버리곤 하는 상태가 어떤 느낌인지 남들은 알 수 없죠. 그런 게 얼마나 역겹고 잔인한지 알리려고 할 때, 우화적 표현이나 은유가 도움이 많이 됩니다.

 포초 디 보르고 : 그게 바로 사무엘과 내가 세상에 알리고 싶은 중요한 내용이에요. 운명을 분명한 말로 이름 붙일 수 있을 때, 다시 말해 운명을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사람은 자신을 역경에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지 않고는 절대 거기서 벗어날 수 없어요.

 슈피겔 : 60살 생일파티 연설에서 “오늘 나는 건강하게 살아온 42년과 장애자로 살아온 18년을 기념해 파티를 합니다. ‘견공의 1년은 사람의 7년’이라는 말도 있지만, 내 생애 후반의 18년은 한 해가 각각 이전의 7년에 비견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왜 이런 비유를 하게 되었나요?

 포초 디 보르고 : 젊고 건강했을 때는 난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았어요. 시간이 무한정 주어질 줄 알았나봐요. 그런데 장애자가 되고 나자 순간순간이 하나같이 다 귀하게 여겨 지더군요. 장애를 갖고 1년을 사는 게 비장애인으로 7년 사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기도 하고요.

 

 “저, 다리 좀 뻗어도 될까요?” 그때까지 내내 다리를 접고 휠체어에 앉아 있던 사무엘 이, 좌중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필리페가 “아, 되고 말고. 어서 그렇게 해요. 나는 벌써부터 여기 이렇게 편안하게 누워 있는걸” 하면서 그에게 발 뻗기를 권한다. 말하는 필리페의 어깨가 자꾸 움찔거린다. 신체 내부에 통증이 일어나고 있다는 표시다. 그는 낮이고 밤이고 늘 통증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늘 상냥하게 웃는 모습이다.

 

 슈피겔 : 시간이 지나면서, 혹시 관점에 변화가 생겼는지요. 두 분이 당한 사고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포초 디 보르고 :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이 사고와 아무 관계가 없어요. 신이 원해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에요. 이건 그저 재수가 없었던 거예요. 불운이자, 우리 자신의 실수고, 어쩌면 그냥 사고일 따름이죠. 하지만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모르긴 해도 아마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다가 방향을 바로잡게 된 거죠. 이 사고에 무언가 의미가 있다면 아마 이것일 거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간에, 난 내가 당한 사고 때문에 다른 사람 탓은 하지 않아요.

 코흐 : 필리페는 언제나 저렇게 똑똑하게 대답한다니까요. 등에서부터 가슴을 지나 정확하게 눈으로 들어오는 말. 내 맘에 꼭 들어요. 나는 내가 겪은 사고의 의미를 아직 뚜렷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다만, 신은 비뚤비뚤한 칸에도 줄이 똑바른 글자를 쓸 수 있다는 것, 나아가 구불구불한 길도 똑바로 펼 수 있다는 것은 믿어요. 나도 차츰 내가 겪은 사고의 의미를 알아가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슈피겔 : 0.06초라는 짦은 순간에 일어난 사고로 인해 운명이 하늘과 땅 차이로 갈린다는 것, 유명한 체조가로 사느냐 아니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으로 사느냐가 그렇게 단숨에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그게 제대로 돌아가는 겁니까?

 코흐 : 그렇진 않죠. 다만 운명이란 게 워낙 멍청한 녀석이라서…(낄낄거린다).

 슈피겔 : 프로그램 <내기합시다!>에 출연했을 때, 내기가 시작되어 자동차 쪽으로 뛰어 가면서 시편 23장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를 머릿 속으로 외우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시편은 넌센스라고 생각하십니까?

 코흐 : 아니오, 절대 그렇지 않아요.

 슈피겔 : 사고당한 직후 “만약 신이 내가 다시 걸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이라고 자문했다고 책에 쓰여 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무엘이 걷게 되기를 신이 바라는 것 같습니까?

 코흐 :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신은 인간 누구나가 신체 장애 없이 건강하게 살기 바란다는 겁니다. 다만, 우선권을 어디에 두느냐는 점에서는 신의 목록과 내 목록 내용이 다르다고 믿고 있어요. 내가 멀쩡히 잘 움직이는 거 말고 다른 무언가가 신에게는 더 중요한 모양이에요. 유감스럽게도.

 슈피겔 : 포초 디 보르고 씨, 어떻습니까? 사고를 당하고 나서 신앙이 생겼습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사고 전에는 나에게 무게 중심이 머리하고 배꼽 아래 부위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죠. 그런데 사고를 당하고 나자, 이 중심이 상향 이동을 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심장하고 하늘 한 중간에 그 중심이 있습니다. 장애인인 내게, 영성이란 중요한 사안이 됐습니다. ‘이 세상 일이 반드시 신의 손에 의해 결정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신은 우리가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 존재하기를 원한다.’ 이런 점들이 아마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구분하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 사회의 생각 중심도 조금 위쪽으로 상향 조정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배꼽선 위 쪽으로 말이에요.

 슈피겔 : 코흐 씨, 당시 <내기합시다!>에서 눈을 가리고 뛰어내리는 것이 다음 순서로 예정되어 있었다는데요. 지금 돌이켜 볼 때 너무 경솔했지 않나요? 사고가 나는 쪽으로 운명을 부채질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코흐 : 아닙니다. 내가 운명을 부채질한 건 없어요.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위험천만한 일들을 감행합니다. 나는 매일 체조 훈련을 할 때 이미 그보다 더 위험한 일들을 여러 가지 시도했어요. 방송에서 눈 가리고 뛰어내리는 일도 실은 성공할 수 있는 거였어요. 눈으로 보지 못하는 대신, 평소 연습했던 익숙한 동작에 그만큼 더 집중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생각해봤자 뭐 하겠어요. 지루하기만 하지.

 포초 디 보르고 : 이번엔 내 얘기 좀 할게요. 내가 했던 패러글라이딩은 위험 부담이 매우 큰 운동이에요. 이른바 ‘위험 종목’으로,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딱 들어맞죠. 강렬한 느낌, 극단적 체험. 요즘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이런 걸 찾아 헤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영원 불멸한 존재라고 망상을 하는 겁니다. 이런 갈망이나 망상은 모두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불합리함의 한 단면입니다. 우리가 겪은 것과 같은 사고는 사물이 다시 제자리를 찾게끔 해주죠. 방법이 때로 좀 가혹한 면이 있긴 하지만.

 슈피겔 : 골수 이식에 관한 첨단 연구 결과를 주시하는 편입니까? 성공 여부에 따라 언젠가는 다시 걸을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서.

 코흐 : 언젠가 다시 걸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계속 간직하려고 해요. 그렇다고 해서 날이면 날마다 최근 연구 성과 보도에 정신없이 매달리지는 않아요. 필리페가 언젠가 나에게 자기 책을 선사한 적이 있는데, 표지 안쪽에 ‘현재를 꽉 잡고 있을 것!’이라고 써주었어요. 나는 우선 ‘지금, 여기’서 사는 데 힘쓰고 있어요. 원칙적으로 두 가지 방향을 앞에 놓고서 꽤 심각하게 망설였거든요. 몸을 훈련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 신체 상태를 호전시키는 데 힘쓸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현재에만 몰두해 살면서 몸이야 어떻게 되든 별 관심 두지 않을 것인지 하고요. 지금으로서는 양쪽을 반반씩 취한다고 봐야 할 거예요.

 포초 디 보르고 : 비록 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사무엘은 다른 측면에서 볼 때 현존하는 일급 스포츠맨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비범한 훈련을 하지요. 그 분야의 챔피언이에요. 우리 전신마비자들은 모두 ‘비운동성’의 챔피언들이라는 말입니다. 좋든 싫든 간에 우리는 어마어마한 훈련을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입증해내야 합니다. 내가 19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훈련이 뭔지 아세요? 정해진 대로 음식을 섭취하는 일입니다. 나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반드시 철저하게 완수해야 하는 훈련이지요.

 슈피겔 : 치유될 거라는 희망, 아니면 최소한 병세가 호전될 거라는 희망이 당신에게 매우 중요합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언젠가 다시 걸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슈퍼맨’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가 반신마비가 되고 나서 “5년 안에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다”고 장담을 했어요. 그러나 결국 걷지 못했고, 많은 사람이 특히 장애자들이 크게 실망했죠. 이 일을 계기로 이 분야 연구 기금이 수억 달러가 모아졌어요. 아마 사무엘은 이 연구 성과의 덕을 보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겁니다. 나노 테크닉 분야에선 이미 외골격 개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자극이 뇌에서 직접 사지 근육으로 전달되는 시스템도 연구 중이고요.

 슈피겔 : 이 분야의 연구라면 어떤 형태라도 모두 환영합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언젠가 한번은 밥 먹여 주는 로봇을 제공받은 적 있어요. 사람들이 로봇을 끌고 병원으로 왔더라고요. 그 사람들 약을 좀 올리고 싶어 “난 완두콩만 먹는데”라고 했지요. 결과는 뻔한 거 아니에요? 콩알 단 한 개도 내 입으로 들어오지 못했죠. 내가 사람들에게 물었어요. “콩알을 접시에 담아서 기계에 얹어준 게 누군가요?” 하고. 주방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그랬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내가 다시 한마디했지요. “난 기계보다 그 아주머니가 더 좋아요”라고. 첨단기술을 도입한다는 미명하에 장애자들을 고립시키는 건 안 될 일이에요. “우린 당신을 위해 기계를 설치했어요. 자, 이제 당신이 기계에 적응할 차례입니다. 어서 시험해보세요”라는 식으로 나가려고요? 우리를 돌보는 사람들을 빼돌리는 명분으로 기계를 사용하지 말기 바랍니다.

 슈피겔 : “내 스위치를 이제 그만 뽑아줘! 나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아 달라고, 제발! 힘이 다 빠졌단 말이야”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어떤 배경에서 나온 말입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사고를 당하고 난 첫해에 거의 누구나 의기소침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 경우에는 그 순간이 좀 늦게 왔어요. ‘내가 정말 장애인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은 건 사고가 난 지 3년이 지났을 때였어요. 사랑하는 아내 베아트리체가 세상을 떠나자 그렇게 되더군요. 그녀가 죽자 갑자기 몹시 외로워졌어요. 외로움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느낌 중 제일 견디기 어려운 거지요. 휠체어 신세가 아닌데 자살하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외로움을 못 견뎌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해서. 그래요, 우리에게 삶의 이유를 주는 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내 심리치료 처방은 ‘절대 혼자 있지 말 것’으로 요약됩니다.

 코흐 : 사람들 속에서 사회 안에서 사는 건 우리 장애인들에게 생명보전을 위한 필수 대책입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우리 장애인들을 겁내지 않는 것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고요. 겁내는 대신 우리에게 다가오는 걸 좋아하게 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포옹이나 입맞춤은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행동인 셈이죠. 그렇게 되기까지 그 전제 조건은 우리가 채워넣어야 합니다. 대학병원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장애를 당한 후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하더군요. 첫 번째는 자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아무것에도 의욕이 없고, 보이는 건 오로지 자신이 처한 비참한 상황뿐. 그래서 차츰 자신을 고립시키다가 마침내 완전히 고독한 상태가 되고 맙니다. 두 번째는 좀 다른 형태라고 합니다. 일거수 일투족을 일일이 말로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다보면, 자칫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습관이 배기 쉽지요. 이 습관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장애자를 폭군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결국 또 고독해지고 마는 거지요. 제일 좋아 보이는 건 세 번째 경우입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피로 회복을 위한 휴식 시간에 간단한 주전부리를 하는 두 사람. 사무엘 코흐는 휠체어를 잠시 휴식 모드로 전환해 누울 수 있게끔 완전히 펼쳐놓았다. 이때 포초 디 보르고의 재혼한 아내 카디야가 인터뷰실로 들어선다. 그들은 9년 전 모로코에서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애지중지하는 딸 위다네가 길게 땋아 내린 머리를 찰랑거리면서, 방을 가로지르며 팔짝팔짝 뛰어다닌다. 아빠가 타고 있는 휠체어 바퀴를 딛고 올라가, 아빠를 껴안고 뺨을 부빈다. 나중에는 사무엘 코흐의 휠체어에도 올라가 사무엘의 뺨에 뽀뽀를 한다. 이 5살짜리 꼬마가 보여주는 행동이야말로 사무엘과 필리페가 소망하는 ‘반신마비 장애인 자연스럽게 대하기’의 표본일 것이다.

 

 슈피겔 : 포초 디 보르고 씨, 신체 접근과 성욕과 섹스가 당신 삶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자서전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사고를 당한 이후에는 어떻습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안타깝게도 사고를 당하고 나면 성기능을 잃어버리죠. 내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사고 후 가장 먼저 권한 게 섹스 전문 심리치료사의 상담을 받으라는 거였어요. 요즘 병원 예산이 대폭 감축되어 직원을 감원할 때 병원 측에서 제일 먼저 없앤 자리가 섹스 전문 심리치료사 자리였어요. 급작스런 성기능 상실이 사고를 당한 환자에게는 심각한 문제인 데 말이죠. 감정의 세계, 체험의 세계가 상실되는 이 현상은, 따지고 보면 사소한 신경 시스템이 파괴된 결과일 뿐입니다. 성기능 상실을 별로 문제 삼지 않는 여성과 결혼한 것이 내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어요.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이성적이긴 하지만. 또 여성들은 적응 능력이 뛰어나거든요.

 슈피겔 : 코흐 씨, 성기능 상실 문제는 어떻게 풀어왔습니까?

 코흐 : 사고를 당하기 훨씬 전,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나 자신과 약속했지요. 오로지 아내가 될 사람에게만 신경 쓰고 그 외엔 어떤 식이든 남녀 관계는 전부 피하겠다고. 사고가 나서 오히려 이 결심을 게속 지켜나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포초 디 보르고 : 참 현명하군! 가히 환상적이야.

 슈피겔 : 포초 디 보르고 씨, 여성을 흠모하고 찬양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습니다. “여성의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도 이미 내 병세는 완화된다”거나 “여성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같은 말을 종종 하십니다. 여성의 어떤 점이 당신을 그렇게 열광시킵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여성은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에 대해 겁을 먹지 않습니다. 나를 볼 때,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요.

 슈피겔 : 사고를 당하기 전 자신은 욕심 많고 이기적이면서 공명심이 큰 사람이었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돌이켜 볼 때, 그때 그런 자신을 후회하십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어려운 질문이군요. 만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미리 알았다면, 그 시절 달리 행동했겠지요. 하지만 이 사회는 소음과 움직임으로 꽉 차 있습니다. 현실을 제대로 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지요. 나는 “건강한 사람들의 세계, 사업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한 가지 조건이 채워진다면 말이죠. 내 짐을 다 가지고 장애인으로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그러겠다는 뜻입니다.

 슈피겔 : 코흐 씨, 아직 건강하던 시절의 자신에 대해 “간혹 정말 더러운 녀석일 때가 있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후회되는 일이라도?

 코흐 :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Je ne regrette rien·1960년대 인기 샹송), 비록 다 잘했다고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고를 당하고 나서 심장 위에 자리한 부분이 집중적으로 계발된 건 사실이에요.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많았죠. 그래서 ‘그때 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나처럼 운명의 철퇴를 맞고 고통을 받으면 열이면 열, 모두 깊이 사고하는 사람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재활 병원에 있을 때 들은 말이 있어요. “사고 전에 치사한 작자였으면 사고를 당하고 나서도 여전히 치사한 작자로 남는다”고 하더군요.

 포초 디 보르고 : 좋고 좋고!

 슈피겔 : “사고를 당하고서야 시스템의 가혹함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포초 디 보르고 : 우리는 능력 위주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능력 면으로 보면 상위권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은 끊임없이 수위를 높여가지요. 많은 이들이 그걸 견뎌내지 못해 결국 항복하고 맙니다.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전락하는 거죠. 이 시스템 안에 자리잡은 사람 수는 점점 적어지는 반면, 사회 외곽으로 밀려나는 사람 수는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요즘의 금융위기만 해도 그래요. 이것은 이 사회 시스템의 총체적 불합리함이 낳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바로 이 금융 위기가 소외 계층의 생산을 가속화합니다. 신경증 환자가 늘어갑니다. 사람들이 자꾸 자기 안으로만 기어 들어가고, 자신을 제대로 건사할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다보면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거나, 소외당했다고 느끼게 되지요. 인생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겁니다.

 슈피겔 : 코흐 씨, 사회를 보는 시각이 사고를 당하고 나서 바뀌었습니까?

 코흐 : 이전에는 관심 두지 않았을, 따라서 알지 못했을 일의 맥락이 갑자기 훤히 들여다보이기 시작했어요. 독일에도 아직 개선해야 할 곳이 많이 있다는 걸 이젠 압니다. 만약 독일에 살았다면 나 자신이나 필리페는 사고를 당한 후 절대로 목숨을 건지지 못했을 거다 싶은 지역이 독일 내에 수두룩해요. 뭐, 멀리 갈 것도 없어요. 내가 사는 곳에서 단 몇 시간만 차를 타고 나가도 그런 곳이 널려 있거든요.

 슈피겔 : 포초 디 보르고 씨, 당신의 체험에 ‘왕년의 대자본가, 자본주의 비판자로 바뀌다’란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요?

 포초 디 보르고 : 나는 원래 자본주의를 늘 미심쩍게 보아오던 사람입니다. 가치를 완전히 파괴해버리는 금융자본주의는 더욱 그렇고. 내가 총지배인으로 있던 샴페인 회사는 어떤 점에서 매우 독일적이라고 할 만한 점이 있었어요. 직원 모두가 경영에 참여하는 시스템이었지요. 노동조합이 감독 위원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피고용인의 비중이 매우 컸어요. 그러다가 회사가 어느 금융투자자 손에 들어가버렸어요. 그때부터 회사의 이익은 전부 그 사람의 주머니행이 되고 말더군요. 내게 첫 번째로 요구한 사항도 바로 전 직원 중 절반을 해고하라는 거였어요.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를 당했죠.

 슈피겔 : 해고 업무 명령을 받은 게 추락사고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십니까?

 포초 디 보르고 : 그렇고 말고요. 분명히 관계가 있어요. 저 운명적인 사고가 일어나던 날 도무지 비행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어요. 생각은 딴 데 가 있었죠. 더 이상 그런 시스템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점점 더 뚜렷해졌던 거예요.

 코흐 : 사고를 당하기 훨씬 전 나는 고수익을 보장하는 탄탄한 직업은 절대 추구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어요. 돈이나 권력은 내 이상이 아니에요. 두 가지 모두 지극히 순간적인 것이니까요. 그리고 추락사고를 통해 이 믿음이 더욱 견고해졌어요.

 슈피겔 : 우리는 현재 ‘좀더 빨리, 더 빨리!’를 모토로 하는 신경쇠약적 가속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템포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당신을 사회에서 소외시키는 걸까요?

 포초 디 보르고 : 우리 장애인들은 이런 가속 추세를 막아내는 평형추를 제공하는 셈이 아닐까. 속도를 낮추는 저속화에 공헌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때문에 실제로 소외된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지금 난 여기 뮌헨에 와 있고, 그저께는 베를린에 있었으니까요. 이동이 많은 편이죠. 어쨌든 가끔 모든 걸 중지하고 차분한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압니다. 실은 이것도 필연에서 배우게 된 것이지만 말입니다.

 슈피겔 : 지난 4월 하노버대학 음악연극방송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했지요. 학업 초반 어떤 경험을 했나요?

 코흐 : 대학 공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재미있는 가능성을 보게 해주었어요. 우리 학과는 저널리즘과 커뮤니케이션 연구소와 연결되어 있어, 그쪽 분야의 강의도 함께 들을 수 있습니다. 아직은 나나 다른 학생들 심지어 교수진까지 방향을 잡기 위한 탐색 과정에 있습니다. 실험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예전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지내던 환경으로 오랜만에 다시 돌아와 생활하는 게 참 즐거워요.

 슈피겔 : 독일 재정부 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는 휠체어에 의지하는 장애인으로서, 벌써 20년 넘게 정치권 수뇌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른 장애인들의 귀감입니까?

 코흐 : 그렇다고 봅니다. 얼마 전 국회를 방문했는데, 어디를 가나 휠체어 사용자 전용 도로가 있었어요. 문턱이 없는 도로나 건물 같은 사안엔 분명히 그가 크게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실용적인 제안을 했겠지요. 쇼이블레 장관이 보여주는 모습, 즉 ‘장애가 있지만 그로 인해 장애를 받지 않으면서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는 중요합니다. 더구나 그는 정치가로서 자신의 삶뿐 아니라 8200만 명의 독일 국민 삶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적극적 참여의 극대치라 말할 수 있습니다.

 슈피겔 : 휠체어에 의존하는 사람으로서 최정상에 올라 활동한다는 건 어느 만큼 어려운 일일까요?

 코흐 : 분명 엄청난 힘이 요구되는 일이지요. 쇼이블레 장관은 우리 두 사람만큼 심한 장애인은 아니지만. 반신마비 환자인지, 아니면 우리처럼 전신마비 환자인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두 손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니까 일상생활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쇼이블레 장관은 손으로 식사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고, 책장을 넘길 수 있고, 문을 열 수 있고, 가려우면 콧등을 긁적댈 수도 있지요. 나는 양손이 아니라 딱 한 손만이라도 제대로 쓸 수 있다면 아마 크게 파티를 열 거예요. 필리페도 아마 비슷한 심정일걸.

 포초 디 보르고 : 손? 나 같으면 손가락 하나만 움직일 수 있어도 감지덕지하겠어요.

 슈피겔 : 경영진에 장애인이 더욱 많이 진출해야 할까요?

 포초 디 보르고 :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 일상생활에서 설 자리를 발견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휠체어를 끌고서 어떤 회의에 참석하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협동 정신이 싹틉니다. 휠체어 덕분에 사회적 결속이 생성되는 거죠. 정가, 기업, 조합, 가정 등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장애자는 두 발로 서 있는 비장애인보다 적어도 2배는 능력 있고 영리합니다.

 코흐 : 그렇고 말고.

 포초 디 보르고 : 그럼, 3배까지는 몰라도.

 코흐 : 전신마비 환자들의 뇌는 고성능 프로세서로 발달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시각장애자의 청각이 한 예가 되는데, 인체의 경우처럼 어떤 특정 부위의 감각이 마비되면 그 신경이 다른 쪽으로 이동해 그쪽 신경과 함께 작용한다고 해요.

 슈피겔 : 간호사 압델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이 ‘변두리 출신 경범죄자’는 당시 감옥에서 막 출소한 자인데, 이 간호사한테서 배운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용기를 되찾게 해줬어요. 아내가 죽은 후 심한 우울증에 빠졌는데, 압델 덕분에 삶의 기쁨을 되찾게 됐어요. 그러면서 귀족인 내가 전혀 알지 못한 ‘변두리’ 세계도 알게 되었죠. 사회 문제의 초점이자 배제된 사람들의 근거지인 그런 세상이 내겐 금시초문이었어요. 이 부류 사람들을 사회의 변두리에 그대로 방치해두어서는 안 됩니다.

 슈피겔 : 압델은 “필리페가 아니었으면 난 아마 이미 죽었거나 지금쯤 감방에 가 있을 거다”라고 말했지요. 자본주의 안에서도 윈윈 게임이 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법합니다만.

 포초 디 보르고 : 전적으로 가능하죠. 압델이 없었다면 난 지금 감옥에 가지는 않겠지만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슈피겔 : 요즘 압델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서로 연락은 잘 합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우린 정기적으로 만납니다. 압델은 사업가가 됐어요. 양계업을 하는데 아주 잘되죠. 결혼도 했고, 아이가 셋이에요. 갈비뼈에 30kg이나 살이 더 붙었다고 하던데….

 슈피겔 : 30kg이나요? 잘 지내는 게 확실하군요.

 포초 디 보르고 :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난 압델을 만나는 게 늘 즐거워요. 그런데 그 친구, 엉뚱한 건 여전해요.

 슈피겔 : 영화에 보면 필리페가 “변두리 출신 녀석들은 연민이라는 걸 몰라. 그리고 그거야 말로 내가 바라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연민이 뭐 그렇게 나쁜 겁니까?

 포초 디 보르고 : 연민으로는 치유가 안 되기 때문이지요. 여기 누가 나를 보고서 막 운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실은 저 자신을 불쌍히 여기면서 우는 거예요. 이때 우리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함께 울지 않습니다. 연민이란 건 몸이 건강한 사람의 자기보호책이에요. 거기서 내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코흐 : 연민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공감이라면 또 모를까. 조그만 꼬마들이 와서 나한테 “와아, 아저씨는 참 좋겠다. 자기 손으로 밥 먹지 않아도 되고, 자기 발로 걸어서 어디 가지 않아도 되고, 옷도 혼자 힘으로 갈아 입을 필요 없잖아. 정말 편하겠다. 나도 그랬으면!” 이렇게 말하는 건 귀엽기나 하지요. 그런 건 나도 좋아해요. 그런데 비슷한 내용 같지만 실은 전혀 다른 말을 들을 때도 있어요. 이번엔 아이들 목소리가 아니에요. “흠, 전체적으로 볼 때 별로 나쁘지 않네. 넌 편안히 잘 살고 있잖아? 사는 모습이 널리 공개되고, 이름도 나고. 그거야 말로 네가 정작 가지고 싶던 거 아니야?” 이래요. 정말 말도 안 돼죠! 공감과는 도무지 거리가 먼 얘기고. 그런 사람하고는 생산적인 대화를 하기가 어려워요.

 슈피겔 : “직립 보행을 하는 인류와 수평으로 누워 있는 인류가 함께 사는 삶”을 꿈꾼다고 자서전에 썼는데, 어떻게 하면 그런 세상이 가능해질까요?

 포초 디 보르고 : 무엇보다도 사회의 압력이 너무 크면 그런 세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사회 시스템의 요구와 우리 인간의 천성이 완전히 어긋나니까. 요구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낙오자가 되는 건 비단 신체 장애자들만이 아닙니다. 그 외 다른 사람들 중에도 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질문해보죠. 결국 인간 소외로 종결되는 이 시스템에 정당성이 있을까요? 이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다시 시스템 안으로 모아들여야 합니다. 이 생각을 건강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다시 돌려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행복할 겁니다.

 슈피겔 : 코흐 씨, 그리고 포초 디 보르고 씨, 지금까지 나눈 대화에 감사드립니다.  ⓒ Der Spiegel

번역 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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