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14 16:51
수정 : 2013.01.1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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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토프 러시아정교회 앞 광장, 한국어학원도 이곳에 있다. 오른쪽으로 돈강이 흐르고 강변을 따라 시장이 형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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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으로 향하는 한반도 철도
③ 로스토프와 타간로그
로스토프는 우크라이나 근처인 러시아 서남쪽에 위치한 인구 100만명의 도시다. 러시아의 식량기지로 불릴 정도로 농업이 발달해 있다. 내륙운하로 쓰이는 돈강이 도시를 관통해 ‘돈강의 로스토프’(로스토프나도누)로 불린다. 고층 빌딩군이 들어서 있어 세련된 도시라는 인상을 준다. 강변 산책길은 라일락 꽃과 자작나무 가지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바람에 흔들린다. 로스토프국제항은 아조프해를 거쳐 흑해, 에게해, 지중해로 가는 물길의 출발점이다. 옛 로스토프국제항이 쇠락해 옆에 새 로스토프 항구가 기능을 대신하고 있지만 규모는 작았다. 야적한 석탄더미들이 가득했다. 선석 바로 옆까지 철로가 들어서 있는 등 항구시설은 효율성이 높아 보였으나 컨테이너 하역시설은 없었다. 석탄과 농산물을 실은 화물열차가 항구를 빠져나와 돈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를 건넜다.
■ 돈강의 로스토프 로스토프항은 돈강을 운하처럼 활용하는 내륙운송의 거점으로, 남부 서러시아에서 철도·도로 등 육상운송과 해상운송의 중요한 접점이다. 돈강 선착장은 1시간 짜리 유람선부터 지중해를 돌아오는 한달짜리 여객선까지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선착장 옆으로 바닥이 넙대대한 화물선들이 석탄이나 원유 등을 싣고 끊임없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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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토프를 관통하는 돈강과 강변 풍경, 멀리 지중해까지 항해하는 유람선들이 보인다. 이 강은 내륙운하 구실을 하며 로스토프국제항도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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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횡단철도는 블라디보스토크~모스코바를 잇는 러시아 대륙횡단 간선망이다. 한국이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활용해 유럽으로 컨테이너 물류를 운송하는 방식은 현재 부산항 등에서 화물선에 선적해 나호트카시의 보스토치니항에서 하역한뒤 시베리아철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모스코바에 도착한 컨테이너는 민간 컨테이너 야적장을 통해 육로나 철도, 화물선에 실려 최종 목적지를 향한다. 만약 우랄산맥 너머 서러시아 쪽에서 유럽으로 가는 새로운 운송길을 찾아야 한다면 그 중간 기점이 바로 로스토프다. 항구 규모가 작고, 취급하는 품목이나 물량도 한정돼 있지만, 철강 등 산업도 발달해 있다. 러시아철도공사가 집계한 지난해 1~9월 화물처리량은 840만톤으로 2011년보다 18.9% 증가해 아조프·흑해연안 항만들의 화물처리 평균증가율 3.3%를 크게 앞섰다.
로스토프에는 러시아에서 세무대학으로 손꼽히는 로스토프세무대학이 있다. 러시아 세법 전문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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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간로그역, 소박하고 작은 규모다. 열차가 어느 플랫폼으로 들어올지 미리 알려주지 않아 러시아 사람들도 플랫폼을 왔다 갔다 한다. 안내방송은 열차가 들어오기 직전에 러시아어로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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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 세법은 복잡하기로 악명이 높다. 모스코바에서 만난 화학제품 운송사업가 유니콘 오씨는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에 진출하려면 먼저 견실한 현지기업과 합작하고 통관업무와 세법전문가를 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중소기업에도 세무를 전담하는 직원이 40여명이나 될 정도다. 애초에는 이익의 90%가 세금이었는데 몇년전 완화된게 50% 선이다”라고 말했다.
■ 아조프해의 숨은 보석 타간로그 타간로그항은 로스토프에서 열차로 한시간 거리인 북카프카스 아조프해 연안에 있으며, 오랫동안 러시아 아조프함대의 기항지여서 블라디보스토크,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항구 가운데 한 곳이다.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의 고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남카프카스 분쟁지역인 체첸공화국 등과 인접해있어 기차역 등에서는 늘 경찰이 테러방지 검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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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간로그 시민들이 시장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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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간로그항 역시 로스토프항 보다 크지만 규모는 작은 편이다.
운송 전문가들은 컨테이너 선석과 벌크 선석, 유류선적용 파이프와 저장소 등을 갖춘 복합항이고 흑해, 에게해, 지중해, 인도양으로 바닷길이 열려 있다는 지리적 여건을 타간로그항의 최고의 장점으로 꼽는다. 타간로그 시내 곳곳에는 시설은 낡았지만 세관사무소까지 있는 소규모 컨테이너 야적장들이 있다.
범한판토스 관계자는 “아프리카 북부나 태평양을 거치지 않는 미주행 노선 개발이 가능하다. 또 동남아시아 등지서 생산한 공산품을 인도차이나 철도망과 중국횡단철도(TCR, Trans China Railway)를 통해 운송할 경우, 이를 화물선에 선적해 유럽으로 보내는 새로운 복합운송항 구실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러시아철도공사는 2006~2007년 최대 400%대 운임 인상 조처뒤 극동발 유럽행 통과물류 대부분을 해상운송에 빼앗기자 꾸준히 운임을 인하해 왔다. 철도운송비가 해상운송비와 경쟁이 되면 통과물류와 러시아행 물류가 시베리아철도로 돌아올 가능성은 언제나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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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간로그항. 흑해를 배경으로 왼쪽부터 컨테이너, 석탄, 원유 선석이 자리잡고 있다. 바다 쪽에서 부터 크레인 등 선적과 하역 설비, 화물 야적장, 철도, 트레일러 운송장 등을 갖췄다. 크레인이 직접 석탄을 퍼올려 화차에 적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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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간로그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알려진 것은 1997년 대우그룹이 연 12만대 규모의 자동차 반조립공장을 지으면서 부터다. 자동차 조립공장인 타가즈는 대우가 문을 닫은뒤 현대차와 협정을 맺고 베르나(현지명 엑센트), 소나타, 포터, 산타페 글래식, 중형버스 카운티 등을 생산했다. 타간로그시는 누리집에서 러시아에 판매되는 현대차 가운데 60%가 이곳에서 생산된 자동차라고 밝혔다. 현대차현대차는 처음에는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해 부품을 공급했으나 2007년 운임 폭등을 겪은 뒤 해상으로 길을 바꿨다. 현재 타간로그항 컨테이너 부두에서 부산발 컨테이너를 찾기 어렵다. 타간로그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은 “한때 한국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 한국 회사 이름이 쓰인 컨테이너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5년여전 부터는 종적을 감췄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 현대자동차가 “러시아가 신흥시장으로서 잠재력이 높다고 보고 타가즈사의 타간로그 반제품조립 공장의 현대차 생산량을 현재 5만대에서 8만대 규모로 확대하겠다”고 밝혀 타간로그항 활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항 모비딕부두(자동차 전용부두) 관계자는 “현대차가 부족한 부품을 러시아 외 지역에서 운송하게되면 타간로그항으로 향하는 한국 물류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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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스 지역의 한국어학당
로스토프시 러시아 정교 교회 앞 광장의 왼쪽 연노란색 건물에 태극기가 펄럭였다. 말로만 전해들었던 로스토프의 한국교육원이다.
“정말 여기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치네요?”
김병협 원장과 인사를 나누면서 물었다. “그럼요. 오래됐어요. 허허.”
한국정부가 이곳에 한국교육원을 세운 것은 2001년, 고려인 4세, 5세 들에게 전통문화와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설립됐다. 이곳에서는 로스토프와 북카프카스 지역의 25개 한국어 교육시설을 관리하고 학습자료 등을 지원한다. 또 한국어 능력시험을 실시하고, 각종 한국과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자료를 구비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전통놀이와 음식 등 문화를 알리는 행사도 연다. 한국교육원이나 한국어 교육시설에서는 무료로 한국어와 태권도 가르친다.
한국교육원 안은 러시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고려인 교사인 안나씨는 “한국어 인기가 많아 러시아 사람들도 많이 배운다”고 귀띔했다.
김 원장은 “고려인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면서 우리 것을 배우려는 의식이 높아졌고, 한국 자동차 생산공장이 들어서면서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로스토프는 남쪽으로 남카프카스와 중앙아시아, 북쪽은 러시아 모스코바와 연결되는 통로여서 유동인구가 많다. 1993년 러시아정부가 ‘고려인복권법’을 제정한뒤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러시아로 이주하는 고려인들이 크게 증가해 한인사회가 확대됐다. 이 지역은 사회가 안정돼 있고, 온화한 날씨 등 농업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는데다 임금수준도 높아 중앙아시아에서 농사를 짓다 이곳으로 이주해 정착하는 고려인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9년 인구조사에서는 로스토프주 거주 고려인이 7132명으로 집계됐으나, 2002년 러시아 정부의 인구조사에서는 1만1669명으로 늘었다. 로스토프 한국교육원이 2008년 자체 집계한 고려인수는 2만5천명을 넘었다. 북카프카스 지역의 볼고그라드에는 3만여 고려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볼고그라드에 고려인 이주가 급증한 것은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려고 주정부가 이주를 권장했고 1992년 타지키스탄 내전과 2000년부터 시작된 아랄해 가뭄이 원인으로 꼽힌다.
교육원 방문에 앞서 들른 시장에서는 우리나라 나물같은 코레이스키 살라드(코리아 샐러드)가 인기 식품이었고, 새우젓 담듯 비닐에 담은 김치도 팔았다. 식료품점 여주인은 생김새가 우리랑 똑같았다. 반가운 눈인사를 건네며 사과 한봉지를 달라고 하자 말문이 열렸다. “서울에서 왔어요?” 어색했지만 분명 우리말이었다. “경북 문경이 증조할아버지 고향이다. 나 말 잘못한다”면서도 봉지에 한가득 사과를 담아 주었다. 마치 읍·면 장날을 온 것 같았다.
고려인들이 한인사회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99년 충북 청주시와 로스토프주가 자매결연을 맺었다. .2008년 농업에 종사하는 고려인들을 돕는 비닐집 사업이 시행됐다. 로스토프주는 이 사업에 악사이스키 지역의 땅 5만㎡를 지원했다. 2009년 강원도는 농업기술 이전사업을 벌였다.
김병협 원장은 “체첸 등 남카프카스 지역에도 선교사 등이 운영하는 한국어학당 10여곳이 있다고 들었다. 한국어 교재를 보내달라는 연락도 온다. 한국업체가 러시아에 진출할 경우 우리말을 아는 고려인들을 채용하면 언어 소통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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