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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각)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주검이 안치된 카라카스의 군사학교 앞에서 김순배(왼쪽) 통신원이 줄을 서서 참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카라카스/김순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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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카라카스를 가다 ③
빨간 베레모에 녹색 군복 입은채
유리관 속 창백한 얼굴로 눈감아
밤새운 긴 조문행렬 서로 격려
“내가 차베스…투쟁은 계속된다”
푸석했다. 퉁퉁 부은 채 창백했다. 검은 갈색 피부에 덧칠한 흰색 분은 겉돌았다. 입술이 아래로 처져 화가 난 듯한 얼굴로, 빨간색 베레모에 녹색 군복을 입고 휘장을 가슴에 두른 채, 유리 관에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9일 오전 8시50분(현지시각) 18시간 25분 동안 줄을 선 끝에 본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영면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일반 조문객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초! 한 죽은 인간의 얼굴을 보려고 수많은 시민들은 걸어서 30분 거리를 기꺼이 노숙하며 기다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조문 행렬은 차베스 사후 베네수엘라와 중남미 ‘좌파블록’이 가야할 길처럼 험난해 보였다.
8일 오후 2시25분. 영구 방부처리된 차베스의 시신이 임시 안치된 군사학교로 향하는 ‘엘 파세오 데 로스 프로세레스’ 초입이 조문 행렬의 맨 뒤였다. 30분 전 공식 장례식이 50여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끝났지만, 조문은 7일간 연장됐다. 그들은 “나의 위대한 지도자여서” “아버지처럼 보살펴줘 감사하다고 말하려고”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주려고”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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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지지자인 부부가 창문 너머 남미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 등이 묻힌 판테온 나시오날을 가리키며 그곳에 차베스가 묻혀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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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은 1시간에 100m를 나가는 듯하다가도 때로는 몇 시간째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배가 고프면 얇은 빵 사이에 닭고기를 넣은 ‘아레파 콘 포요’나 ‘토스톤 데 플라타노’(말린 바나나)를 먹었다. 더우면 손수레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목마르면 군인들이 던져주는 과야바 주스를 마셨다. 오후 7시가 넘어 어둡고 싸늘해지자 에스프레소 컵에 따뜻한 커피와 술 ‘미체’를 마셨다. 심심하면 ‘고르도’(복권)를 사고, 이방인에게 “남한에서 왔어, 북한에서 왔어?”를 번갈아 물었다. 밤 11시가 넘어 졸리면 반팔 티 안으로 팔을 집어넣고 웅크려 잤다. 새벽 3~4시쯤 지쳐 졸다가도 서로 “푸에르사”(힘내라)라고 어깨를 두드리고, 새치기를 하는 이에게 “푸에라”(꺼져라)라고 소리쳤다. 화장실이 멀면 구석에다 오줌을 갈겼다. 악취가 코를 찌르는 쓰레기 옆에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누웠다 깼다를 반복했다.
카라카스에 산다는 프랑스인 로빈 아란(25)은 이 모든 광경을 신기해했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이 죽었다고 절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나올 수 없다.” 이른바 전통적 대의민주주의가 체계화된 프랑스에서 자란 그는 “한 나라의 제도를 다른 나라에 그대로 옮겨놓고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8일 장례식은 신나는 ‘알마 야네라’(베네수엘라 민중가요)를 부르며 치러졌다.
조문 현장에서 외치는 ‘푸에블로’(영어로 피플)는 ‘대중’, ‘국민’, ‘민중’ 사이를 수없이 오갔다. 하지만 차베스가 선택한 정치와 경제, 민주주의의 방식은 프랑스에서는 불가능한 수십만명의 조문객을 끌어냈다. 이날 현장이 ‘비자유적 민주주의’인지, 수많은 ‘포퓰리즘’ 가운데 그 무엇인지, ‘21세기 사회주의’란 이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행렬은 1시간에 100m를 나가는 듯하다가도 때로는 몇 시간째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배가 고프면 얇은 빵 사이에 닭고기를 넣은 ‘아레파 콘 포요’나 ‘토스톤 데 플라타노’(말린 바나나)를 먹었다. 더우면 손수레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목마르면 군인들이 던져주는 과야바 주스를 마셨다. 오후 7시가 넘어 어둡고 싸늘해지자 에스프레소 컵에 따뜻한 커피와 술 ‘미체’를 마셨다. 심심하면 ‘고르도’(복권)를 사고, 이방인에게 “남한에서 왔어, 북한에서 왔어?”를 번갈아 물었다. 밤 11시가 넘어 졸리면 반팔 티 안으로 팔을 집어넣고 웅크려 잤다. 새벽 3~4시쯤 지쳐 졸다가도 서로 “푸에르사”(힘내라)라고 어깨를 두드리고, 새치기를 하는 이에게 “푸에라”(꺼져라)라고 소리쳤다. 화장실이 멀면 구석에다 오줌을 갈겼다. 악취가 코를 찌르는 쓰레기 옆에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누웠다 깼다를 반복했다.
“비바 차베스”(만세 차베스)를 외치는 그들 ‘푸에블로’는 ‘대중’, ‘국민’, ‘민중’ 사이를 수없이 오갔다. 하지만 차베스가 선택한 정치와 경제, 민주주의의 방식은 프랑스에서는 불가능한 수십만명의 조문객을 끌어냈다. ‘비자유 민주주의’의 결과인지, 수많은 ‘포퓰리즘’ 가운데 그 무엇인지, ‘21세기 사회주의’란 이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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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반대자인 두 여성이 차베스 밀가루(오른쪽)와 민간 업체의 밀가루를 들어 보이며 품질 차이를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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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반대자를 자처하는 두 사람이 차베스에 왜 반대하는지 열변을 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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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새치기를 막는 군인의 통제처럼 자본주의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당연시하고, 목마른 이들에게 물과 배주스를 공짜로 나눠주고 지하철을 임시로 무료로 운영하는 분배, 그리고 새치기에 “꺼져라”라고 외치는 뒤틀린 세계질서에 대한 저항 따위의 수많은 선택 가운데 나름의 길을 갔다.
차베스가 걸어온 길, 중남미 좌파블록의 미래는 그들의 삶에 있었다. 아침 8시께 차베스의 관을 100여m 앞에 뒀을 때 차베스가 누워 향한 언덕이 눈에 들어왔다. ‘카시타’, 언덕 위로 곧 허물어질 듯한 ‘판잣집’이 빼곡했다. 칠레 산티아고의 남쪽,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오늘이다. 그것은 고급 호텔 디럭스킹룸의 안락함과 달랐다. 차베스와 중남미 좌파가 외친 해방, 혁명, 연대는 스페인과 미국의 지배에 시달려온 그들에게 차베스의 관 위에 ‘해방, 정의, 통합’을 상징하는 남미 독립혁명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검을 얹게 했다. 그래서 새벽 4시, 4시간 만에 “또 한명의 볼리바르”를 보려는 조문이 재개되고, 7시부터는 앞사람을 놓치지 않으려면 더러 뛰어야 할 만큼 줄이 줄어들자 기뻐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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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지지자 부부가 차베스의 정책으로 노동자 보호용으로 지급케했다는 보호신발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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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가 “나의 예수”였던 그들, 쓰러지는 판잣집. 그것은 베네수엘라와 중남미 좌파블록 지도자가 걸어왔고, 가려고 할 길이 무엇인지 말해주었다. 그 선택이 이방인의 잣대와 해답에서 얼마나 멀든 상관없었다. 그들은 “내가 차베스다”라고 쓰인 머리띠를 두르고 이렇게 외쳤다. “차베스는 살아있다. 투쟁은 계속된다.”
베네수엘라 대선은 다음달 14일 치러진다. 8일 임시 대통령에 취임한 ‘차베스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와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약 44%를 얻었던 엔리케 카프릴레스 주지사가 경쟁한다.
카라카스/김순배 통신원, 칠레대 박사과정
otromundo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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