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25 20:22
수정 : 2013.03.25 20:29
2013 희망나눔 지구촌 위기의 아이들 끌어안기
긴급구호 절실한 지역에서도
어린이친화공간(CFS) 지원 중요
2011년 12월 시리아 남서부 자바다니에서 집이 폭격을 맞아 부서진 뒤, 여섯살 라가드는 레바논에 사는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자는 엄마 손에 이끌려 집을 떠났다. 그러나 와보니 현실은 전혀 달랐다. 라가드는 따뜻한 물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다른 시리아 난민 네 가족과 살고 있다.
엄마는 처음엔 라가드를 유치원에 보냈지만 곧 고향을 잃은 슬픔과 우울증으로 라가드에게 옷을 입혀줄 수도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고 이듬해부터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라가드가 웃음을 되찾은 것은 세이브더칠드런이 운영하는 어린이친화공간(Child Friendly Spaces)에서였다. 일주일에 세번씩 오후 3~6시 라가드는 그림, 노래, 글쓰기를 배운다. 너무 재밌어서 6시가 지나도 집에 가고 싶지 않을 정도다.
2011년 파키스탄 남동쪽 신드 지역을 강타한 홍수로 샨티(8)는 집을 잃었다. 비가 그치자 이번엔 모기와 전염병이 찾아왔다. 어린 동생들도 열병을 앓았다. 물 긷기, 가축 돌보기, 면화 따기 등 어른들을 돕느라 학교에 다닌 적이 한번도 없었던 샨티는 홍수 이후 마을에 생긴 어린이친화공간에서 읽기와 쓰기를 배운다. 샨티는 “예전엔 한동네 사는 애들도 잘 몰랐지만 여기 와서 모두 친구가 됐다”고 말한다. 수줍으면서도 조심스런 성격의 샨티는 매일 어린이친화공간이 문을 닫을 때마다 장난감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며 정리를 도맡는다.
레바논 베카밸리 시리아난민촌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잇즈 앗딘은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행동을 보며 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알아챌 수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눈앞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본 한 여섯살 어린이는 남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쉽게 분노의 감정을 보이곤 했다. 어른들이 계속 말을 시키며 다가간 결과 아이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마음을 열었다.
자연재해와 분쟁으로 먹을 물과 음식도 부족한 상황이지만 어린이들이 어린이다워지려면 의식주만으론 부족하다. 이들을 웃게 하는 건 대화, 친구, 놀이, 배움, 돌봄이다. 의료·식량배급 등 긴급구호가 절실한 지역에서도 세이브더칠드런이 어린이친화공간 운영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아동교육과 사회복지 분야의 전문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현장에 파견돼 학습과 놀이를 돕고, 공포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마음을 열어 자신을 표현하도록 도와준다.
세이브더칠드런 한국지부의 김희경 권리옹호부장은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신체적, 심리적으로 해로운 영향에서 벗어나 학습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지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며 “어린이친화공간은 단지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재난으로 파괴된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는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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