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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25 20:30 수정 : 2013.03.25 20:30

필리핀의 대표적인 빈민도시 나보타스에 사는 조이 라군다이는 ‘팜파갈락 가톨릭 미션’(가난한 그리스도의 종 공동체) 공소 3층에서 매일 오후 열리는 검정고시 학당에 2살 난 아들 그레그를 데리고 와 공부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레그를 임신하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둔 그는 대학교를 졸업해 스튜어디스(항공사 객실승무원)가 되는 게 꿈이다. 이형섭 기자

2013 희망나눔 나보타스의 아이들

월 1만여원이면 벽돌집서 살수있어
학당 나와 칼리지 졸업한 후렌트
“9살·11살 동생 돌보려 공부 애써”

‘팜파갈락 가톨릭 미션’(가난한 그리스도의 종 공동체)이 필리핀 나보타스에 세운 공소(본당보다 작은 교회) 3층에서 매일 오후 여는 검정고시 학당에는 명물이 한 명 있다. 2살 난 아들 그레그를 데리고 등교하는 조이 라군다이(17)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임신하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뒀다. 어차피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학교를 더 다닐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21살 남편은 직업이 없고 아버지가 자전거 운전을 해서 버는 돈으로 온 가족이 먹고살고 있다. 지금 같이 사는 식구는 8명이다. 가끔은 집이 너무 좁아서 친구 집에 가서 자기도 한다.

이곳 학당은 친구가 다녀서 알게 됐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결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집안 식구들은 사정도 어려운데 무슨 공부냐고 했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은근한 압박도 있었다. 물론 학당에 다니는 건 힘들다. 그레그는 조금 커서 데리고 다니지만 갓난아이인 둘째는 집에 두고 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부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 그는 학당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해서 스튜어디스가 되는 게 꿈이라며 웃었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빈민가, 절망뿐일 것처럼 보이는 나보타스에도 조이처럼 자신만의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꿈은 대부분 단 하나,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구해서 판자촌을 벗어나는 것이다. 한달에 500페소(1만3700원)만 내면 판자가 아니라 벽돌로 만든 집으로 이사갈 수 있다. 상수도가 없어 8페소를 주고 20ℓ짜리 물통에 든, 깨끗하지도 않은 물을 마실 필요도 없고, 화장실이 없어서 대변은 5페소, 소변은 3페소씩 내고 공동화장실을 이용할 필요도 없다.

부모가 모두 2009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진 후렌트 가비올라(20)는 초등학교 이후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2010년 팜파갈락의 검정고시반 덕분에 나보타스 폴리테크닉 칼리지에 진학해 올해 졸업했다. 그는 “내가 공부해서 대학을 나와야 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9살, 11살 동생들을 돌보며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통신(IT) 전문가가 꿈이다. 로자나 보체스(22)는 지난 2005년 임신하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직업을 가져야 했다. 슈퍼마켓 점원으로 일하는 남편 월급만으로는 살 수가 없는 탓이다. 그의 꿈은 교사다.

한달에 7000페소(19만2000원)의 월급을 받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그들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필리핀의 고용률은 92.9%, 나보타스의 고용률은 82.3%다. 실업은 빈민들에게 집중돼 있다.

이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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