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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25 20:32 수정 : 2013.03.25 20:32

필리핀 나보타스에 ‘팜파갈락 가톨릭 미션’이 세운 유치원에서 수업이 한창이다. 유치원에 들어오지 못한 아이들은 창틀에 붙어서 수업을 훔쳐듣는다. 이형섭 기자

2013 희망나눔 나보타스의 아이들
도시 빈민들 힘겨운 ‘자활의 꿈’

가족 중 하나라도 대학 졸업해
번듯한 직장 얻으면 문제해결
하지만 학자금 못내 빈곤 악순환
김홍락 신부 ‘협동농장’ 꿈꾸지만
터·운영비 1억 마련 못해 난항

마르셀 프란세스코(27)의 머리는 여느 필리핀 젊은 여성과 달리 단발이었다. 그는 지난 12월만 해도 허리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생머리를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둘째 아이가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해야 하는데 입고 갈 옷이 없었다. 누군가가 머리를 잘라 팔면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 줬다. 그래서 그는 400페소를 받고 단발머리가 됐다.

버나드(52)의 가족은 모두 16명이다. 버나드의 아이만 11명, 결혼한 큰딸의 네 가족까지 함께 사는 바람에 대가족이 됐다. 그는 자전거 옆에 바퀴 달린 의자를 붙여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사이드카를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365일 몬다. 그렇게 버는 하루 200페소 정도의 돈은 17가족의 구명줄이다.

이들은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필리핀 나보타스시 비르고 드라이브 뒤 천막촌에서 살던 40여가구 중의 일부다. 천막촌이 강제로 철거되는 바람에 뿔뿔이 흩어질 뻔했지만 김홍락 신부가 운영하는 ‘팜파갈락 가톨릭 미션’(가난한 그리스도의 종 공동체)이 급하게 세운 판잣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3층짜리 판잣집에 모인 가족은 모두 13가구 100여명이다. 집이래 봤자 1평 정도의 방 한 칸이었지만 이사하는 날 사면이 벽인 집에서는 난생처음 살아본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기뻐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이 판자촌마저 올여름에 철거된다는 소식에 이제는 또다시 어디로 가야 하나 마음을 졸이고 있다.

김홍락(45·프란치스코) 신부는 2009년 가방 두 개만 달랑 든 채 이곳 천막촌으로 이사왔다. 그는 2007년 나보타스에서 일하는 다른 신부의 생일에 초대받아 왔다가 주민들의 처참한 생활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필리핀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신학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빈민촌 사람들의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사제로서 이들을 외면할 수 없다”고 결심하고 무작정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대충 천막을 치고 그들과 똑같이 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주민들도 점점 그를 빈민촌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줬고 김 신부를 따르기 시작했다.

김 신부가 가장 고민한 것은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자립해서 혼자 살아갈 힘을 얻게 될까 하는 점이었다. 1년 넘게 주민들을 관찰한 결과 가장 필요한 것은 교육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주민들은 어떻게든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밥은 먹고 있었다. 밥을 나눠주는 것은 당장의 배를 채울 뿐 자립에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가족 중 하나라도 대학을 졸업해 월급 7000페소(19만여원) 이상의 번듯한 직업을 구할 수 있다면 온 가족이 평생 판자촌의 굴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악순환을 차단할 수 있다. 장학사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나보타스에 세운 공소(본당보다 작은 교회) 1층에서 운영하는 유치원과 3층에서 운영하는 검정고시반 등 직접 교육이고, 또 하나는 장학금을 지급하는 간접 지원이다. 현재 유치원에는 세 반에 96명이 다니고 있고, 초·고등 검정고시반에서는 48명이 공부하고 있다. 필리핀의 교육열은 빈민들 사이에서도 높은 편이지만 학자금과 학용품비, 용돈 등을 제대로 댈 수가 없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비율은 10명 중 7명 정도밖에 안 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사람은 많아야 5명이다.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팜파갈락 가톨릭 미션’은 초등학생에게는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용돈을, 고등학생에게는 학자금과 용돈을 지원한다. 장학금을 받다가 또는 검정고시반을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면 등록금도 모두 지원한다. 5년여를 지원했더니 이제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홍락 신부는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된 학생이 올해 처음 나왔다. 주변 부모들에게는 성공 신화로 받아들여져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당장 몸을 누일 공간조차 빼앗길 지경의 사람들에게 교육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라는 말은 사치에 가깝다. 김 신부가 협동농장에 대한 구상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땅을 마련해 닭을 키우는 협동농장을 세우고 주민들이 함께 살면서 수익을 나눠 자립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주민들 대부분은 함께 가겠다고 결심했다. 마르셀의 가족은 이미 병아리 두 마리를 사서 닭 키우는 연습을 하고 있다. 버나드 가족도, 피오나 가족도 모두 컴컴한 빈민촌을 벗어나 농장에서 땀 흘리며 닭을 키우는 꿈을 꾸고 있다. 남편, 두 딸과 함께 농장으로 가고 싶어하는 에이프릴(20)은 “농장이 잘될 것 같고 잘 안되더라도 신부님이 도와주시지 않겠냐”며 웃었다.

현재 협동농장 건립은 마땅한 터를 찾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땅을 찾더라도 농장을 짓고 닭을 사고 수익이 날 때까지 운영비를 포함해 모두 1억원 정도 들 것으로 보이는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큰일이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사람들의 도움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국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 등의 지원도 힘이 되고 있다.

나보타스/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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