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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25 20:38 수정 : 2013.03.26 10:39

필리핀 마닐라시 인근 나보타스시의 빈민가 ‘마켓3’의 모습. 이곳 주민들은 월세 500페소(1만3700원) 하는 콘크리트집에서도 살 형편이 안 돼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통 5~6명인 한가족이 1평 정도의 판잣집에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곳도 내년 여름이면 철거될 예정이다. 주민 대부분은 도시부랑자가 될 터이다.

2013 희망나눔 필리핀 나보타스 빈민가를 가다

전쟁과 가난 속에서 꽃 같은 아이들과 여성들이 스러져간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세계 곳곳에서 수백만명의 아이와 여성 등 취약계층이 공포와 굶주림, 추위로 고통을 받으며 좀더 나은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한겨레>가 어린이인권단체 ‘세이브더칠드런’과 고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기려 만들어진 모금·배분 전문기관 ‘바보의 나눔’과 함께 진행해온 ‘나눔 캠페인’ 해외편이 마지막 회를 맞았다. 필요한 것은 우리의 작은 관심이다.

일 나간 엄마 기다리는 남매
저녁 되어야만 겨우 첫 끼니

피나이(11)
피나이(11)는 너무나 이뻤다. 삐쩍 마르고, 햇볕에 까맣게 그을리고, 옷도 남루했지만 검은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하지만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철없이 까불며 웃어대는 남동생 피노이(7)와는 달랐다.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니 대답을 하지 않는다.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거들었다. “엄마가 새벽 4시에 병 세척 일을 하러 나갔으니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을 거예요.” 그때가 오후 2시께였다. 엄마는 저녁 7시에나 돌아온단다. 엄마는 돌아올 때 쌀 한 줌과 생선 한 토막을 사온다. 그때야 가족은 하루의 처음이자 마지막 끼니를 먹는다. 엄마가 하루에 13시간씩 일해서 버는 돈은 일주일에 고작 600페소(1만6500원). 아빠는 피나이가 5살 때 집을 떠나 따로 가정을 이뤄 살고 있다는 얘기만 들었다. 들고 있던 크래커를 주섬주섬 건네주니 먹지도 않고 손에 꼭 쥐고만 있다.

피나이의 집은 필리핀 나보타스시 비르고 드라이브의 판자촌에 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좁은 길, 하수도가 없어 각종 오수로 질퍽질퍽한 바닥을 걸어서 닿은, 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1평 남짓한 방 한 칸이 세 가족의 보금자리다. 문짝도 없고 창문도 없는 그들의 집은 한낮이라도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으면 사진이 안 찍힐 정도로 어두웠다. 가재도구라고 해야 이불 두 채와 작은 책상, 옷가지와 낡은 취사도구 몇개가 다다. 이 집에서 그들은 잠을 자고 밥을 해먹고 또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피나이 집의 사정은 이 지역의 다른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필리핀의 수도권 격인 메트로마닐라를 구성하는 17개 시의 하나인 나보타스는 마닐라에서 제대로 직업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낙후지역이다. 인구 27만명의 이 도시는 평균 가구원 수 4.65명에 연평균 가구소득은 6만페소(180만원)에 불과하다. 한달 15만원으로 온 가족이 입고, 먹고, 사는 셈이다. 온 가족의 배를 채우기에도 부족한 돈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또 빈부격차는 존재한다. 비르고 드라이브와 마켓3 등의 판자촌과 천막촌 사람들의 삶은 더욱 고달프다.

판자촌 바닥엔 쓰레기와 악취
비좁은 한평집에 온가족 살아

마켓3 지역을 찾아 차에서 내리는 순간 가장 먼저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냄새였다. 비릿한 바다와 생선 내음, 인체 분비물과 쓰레기가 같이 썩어가는 듯한 냄새가 코끝으로 훅 몰려들었다. 대여섯살 돼 보이는 아이 여러명이 그 냄새에 둘러싸인 채 썩어가는 검은 물웅덩이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마닐라에서 소비하는 생선의 약 70%가 공급된다는 어항 한켠에 자리잡은 이곳에 700가구 정도 되는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곳에 사는 인구는 대략 7000여명. 가구당 아이가 5~6명씩 되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엄청나 집은 판자에 못을 박아 만든, 말 그대로 판잣집이었다. 집의 크기는 평균적으로 3.3㎡(1평) 정도다. 이 작은 공간에서 적어도 대여섯명의 식구가 산다. 롤리 세르나(45)는 1987년부터 이곳에서 살았다. 여기서 아이 7명을 키웠고, 딸 둘은 결혼했지만 여전히 함께 살고 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식구는 모두 20명이나 된다. 그는 딱히 직업이 없지만 건설노동자와 어부인 두 사위의 벌이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내년이면 이사를 가야 하는데 한달 집세 500페소(1만3700원)를 내고 나면 어떻게 먹고살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가난은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천형이다.

비르고 드라이브 판자촌 뒤쪽으로 가니 시커먼 썩은 물이 흐르는, 그 동네 사람들이 ‘블랙 리버’라고 부르는 나보타스 강가에 천막 몇 채가 보였다. 한달 월세 200페소(5400원) 정도 하는 판잣집에서조차 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천막 중 한 곳에서는 학교에 다녀온 크리스찬(11)이 집 앞에 앉아 쇳덩어리를 조몰락거리고 있었다. 조그만 평상 위에 비닐천막을 대충 얹은, 도저히 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곳에서 동생 2명과 아빠, 엄마, 할머니 등 여섯 식구가 살고 있다.

5천원 월세조차 못내는 이들은
썩은 강물 흐르는 강가에 ‘천막’
그마저도 곧 철거 예정돼 있어

팍팍하지만 어떻게든 버텨온 그들의 삶조차도 올여름이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높다. 나보타스 시장이 ‘아름다운 나보타스’를 기치로 내걸고 ‘환경미화’를 명목으로 빈민촌과 천막촌을 철거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비르고 드라이브는 올여름, 마켓3는 내년 여름 철거가 예정돼 있다. 한때 40여가구가 살던 천막촌은 이미 올해 1월 새벽에 군인과 함께 들이닥친 철거반원들에게 철거당했다. 현재는 서너 가구가 남아서 철거당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살고 있다. 천막촌마저 헐리면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시 부랑민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정부의 지원을 바라기는 힘들다. 사유지 한편에 불법적으로 무리지어 사는 이들에게는 상하수도, 도로포장, 쓰레기 수거 등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도 허락되지 않는다. 허드렛일에 지친 몸을 누일 한 뼘의 공간마저 빼앗기기 일보 직전이다. 한국인 김홍락 신부(칼로오칸 교구 빈민사목)가 이끄는 ‘팜파갈락 가톨릭 미션’(가난한 그리스도의 종 공동체)이 빈민들을 도우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만 예정된 철거일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필리핀 빈민가에서 가장 흔한 게 아이들이다. 피임이나 낙태를 죄악시하는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차이는 돌멩이보다 더 많아 보였다. 아이들은 웃고 뛰놀다가 김홍락 신부와 기자를 보면 달려와서 손을 잡고 자기 머리에 대며 인사했다. 공경을 표시하는 인사법이다. 그 얼굴들이 너무 맑아서 가슴이 시렸다. 이 아이들은 내년이면 모두 어디로 가게 될까. 멀리서 피나이가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새 크래커를 뜯어서 오물거리고 있었다.

나보타스/글·사진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나보타스 아이들의 교육 후원해주세요

<한겨레>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잇기 위해 설립된 전문모금법인 ‘바보의 나눔’과 공동으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합니다’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보의 나눔은 한 사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사회 모든 이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재정적 지원보다 현지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자기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자생력 강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나보타스 빈민촌 아이들이 철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후원의 손길을 보내주세요.

‘바보의 나눔’은 민간단체 최초로 법정 기부금 단체로 지정되어 개인의 경우 기부금액의 100%, 법인은 50%까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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