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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시 인근 나보타스시의 빈민가 ‘마켓3’의 모습. 이곳 주민들은 월세 500페소(1만3700원) 하는 콘크리트집에서도 살 형편이 안 돼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통 5~6명인 한가족이 1평 정도의 판잣집에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곳도 내년 여름이면 철거될 예정이다. 주민 대부분은 도시부랑자가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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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희망나눔 필리핀 나보타스 빈민가를 가다
전쟁과 가난 속에서 꽃 같은 아이들과 여성들이 스러져간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세계 곳곳에서 수백만명의 아이와 여성 등 취약계층이 공포와 굶주림, 추위로 고통을 받으며 좀더 나은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한겨레>가 어린이인권단체 ‘세이브더칠드런’과 고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기려 만들어진 모금·배분 전문기관 ‘바보의 나눔’과 함께 진행해온 ‘나눔 캠페인’ 해외편이 마지막 회를 맞았다. 필요한 것은 우리의 작은 관심이다.
일 나간 엄마 기다리는 남매저녁 되어야만 겨우 첫 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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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이(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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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한평집에 온가족 살아 마켓3 지역을 찾아 차에서 내리는 순간 가장 먼저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냄새였다. 비릿한 바다와 생선 내음, 인체 분비물과 쓰레기가 같이 썩어가는 듯한 냄새가 코끝으로 훅 몰려들었다. 대여섯살 돼 보이는 아이 여러명이 그 냄새에 둘러싸인 채 썩어가는 검은 물웅덩이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마닐라에서 소비하는 생선의 약 70%가 공급된다는 어항 한켠에 자리잡은 이곳에 700가구 정도 되는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곳에 사는 인구는 대략 7000여명. 가구당 아이가 5~6명씩 되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엄청나 집은 판자에 못을 박아 만든, 말 그대로 판잣집이었다. 집의 크기는 평균적으로 3.3㎡(1평) 정도다. 이 작은 공간에서 적어도 대여섯명의 식구가 산다. 롤리 세르나(45)는 1987년부터 이곳에서 살았다. 여기서 아이 7명을 키웠고, 딸 둘은 결혼했지만 여전히 함께 살고 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식구는 모두 20명이나 된다. 그는 딱히 직업이 없지만 건설노동자와 어부인 두 사위의 벌이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내년이면 이사를 가야 하는데 한달 집세 500페소(1만3700원)를 내고 나면 어떻게 먹고살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가난은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천형이다. 비르고 드라이브 판자촌 뒤쪽으로 가니 시커먼 썩은 물이 흐르는, 그 동네 사람들이 ‘블랙 리버’라고 부르는 나보타스 강가에 천막 몇 채가 보였다. 한달 월세 200페소(5400원) 정도 하는 판잣집에서조차 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천막 중 한 곳에서는 학교에 다녀온 크리스찬(11)이 집 앞에 앉아 쇳덩어리를 조몰락거리고 있었다. 조그만 평상 위에 비닐천막을 대충 얹은, 도저히 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곳에서 동생 2명과 아빠, 엄마, 할머니 등 여섯 식구가 살고 있다. 5천원 월세조차 못내는 이들은
썩은 강물 흐르는 강가에 ‘천막’
그마저도 곧 철거 예정돼 있어 팍팍하지만 어떻게든 버텨온 그들의 삶조차도 올여름이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높다. 나보타스 시장이 ‘아름다운 나보타스’를 기치로 내걸고 ‘환경미화’를 명목으로 빈민촌과 천막촌을 철거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비르고 드라이브는 올여름, 마켓3는 내년 여름 철거가 예정돼 있다. 한때 40여가구가 살던 천막촌은 이미 올해 1월 새벽에 군인과 함께 들이닥친 철거반원들에게 철거당했다. 현재는 서너 가구가 남아서 철거당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살고 있다. 천막촌마저 헐리면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시 부랑민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정부의 지원을 바라기는 힘들다. 사유지 한편에 불법적으로 무리지어 사는 이들에게는 상하수도, 도로포장, 쓰레기 수거 등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도 허락되지 않는다. 허드렛일에 지친 몸을 누일 한 뼘의 공간마저 빼앗기기 일보 직전이다. 한국인 김홍락 신부(칼로오칸 교구 빈민사목)가 이끄는 ‘팜파갈락 가톨릭 미션’(가난한 그리스도의 종 공동체)이 빈민들을 도우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만 예정된 철거일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필리핀 빈민가에서 가장 흔한 게 아이들이다. 피임이나 낙태를 죄악시하는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차이는 돌멩이보다 더 많아 보였다. 아이들은 웃고 뛰놀다가 김홍락 신부와 기자를 보면 달려와서 손을 잡고 자기 머리에 대며 인사했다. 공경을 표시하는 인사법이다. 그 얼굴들이 너무 맑아서 가슴이 시렸다. 이 아이들은 내년이면 모두 어디로 가게 될까. 멀리서 피나이가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새 크래커를 뜯어서 오물거리고 있었다. 나보타스/글·사진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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