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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 시내에서 벤치에 앉아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연금생활자 노부부. 영국의 연금생활자들은 해마다 줄어드는 연금급여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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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영국-불안한 은퇴 이후
올해 은퇴를 앞둔 크리스(65)는 국가기초연금 대상자다. 40여년 동안 월 소득의 10% 가량을 사회보험기여금으로 꾸준히 납부해 왔기 때문이다. 별다른 재산이 없고 다른 연금도 가입한 게 없어 노후를 연금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가 받을 수 있는 연금은 우리나라의 기초생활보장제에 해당하는 ‘연금 크레딧’ 수급자가 받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1980년대 기초연금 지급 산정방식이 임금 기준에서 물가 기준으로 바뀐 뒤로 급여 수준이 지속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크리스는 자동적으로 연금 크레딧 대상에 편입돼 기초연금보다 30% 가량 많은 연금액을 수령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선 별도의 신청을 하고 자산 조사도 받아야 한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직장연금에 별도로 가입한 줄리아(59·여)도 얼마 남지 않은 은퇴 이후가 불안하다. 영국 기업들의 직장연금 적립금 부족분이 최소 5백억파운드에서 최대 1천억파운드(약 2백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증시 활황 때 기금 평가액이 커지자 자기 몫의 적립금 납부를 줄줄이 유예했다가 증시가 다시 떨어지면서 대규모 부족분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줄리아는 요즘 새로 들어오는 신입사원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기금 부족 사태 이후, 기업 몫의 보험료가 전체 임금의 평균 11%에서 6%로 확 주는 바람에 새 가입자들의 연금액은 더 쪼그라들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금 지급 방식도 기금의 운영 결과에 연동하는 확정기여방식으로 대부분 바꿔, 앞으로는 연금을 얼마나 받을지를 가늠할 수도 없게 됐다. 영국의 연금체계는 그동안 ‘약한 공공연금’을 ‘든든한 민간연금’이 지탱하는 구조여서, 다른 유럽국가들처럼 정부가 재정 부담에 시달리지 않는 유연성이 있는 제도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지난해 재계, 노동계, 학계 각 1인씩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연금위원회’가 첫번째 보고서 <연금:도전과 선택>을 발표하면서 연금체계의 문제점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80년대 이후 공공연금의 지속적인 축소가 결국 국민들의 노후 생활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보고서 곳곳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런던 정경대 니콜라스 바 교수(공공경제학)는 “공공연금은 지나치게 낮고, 민간연금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시스템은 비상식적으로 복잡하다”면서 “영국 연금은 어떻게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는 끔직한 사례”라고 말했다. 연금위원회의 보고서를 보면, 전체 노동자의 절반 가량인 1210만여명이 노후생활을 위한 대비가 충분하지 않다. 또 1130만여명의 노동자는 아예 민간연금에 가입하지 않고 있으며, 가입한 사람조차 매우 적은 돈을 쌓아놓고 있을 뿐이다. 지속적으로 축소된 공공연금을 민간연금이 제대로 보완하거나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연금위원회는 그 대안으로 ”공공연금을 강화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거나, 민간연금(저축)을 활성화시키거나, 은퇴 연령을 높이거나, 아니면 노령인구의 빈곤 증가를 받아들이는 선택이 있다”면서 “빈곤 증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므로 앞의 세가지 선택이 복합된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위원회는 올 가을 발표될 두번째 보고서에 구체적인 대안을 담을 예정이다. 공공연금 축소의 부메랑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예컨대 현재 평균 소득계층이 공공연금인 국가2차연금(옛 국가소득비례연금)에 추가로 가입해 국가기초연금 급여를 합쳐 연금을 받는다해도 급여 비율은 최종 임금의 평균 37%에 미치지 못한다. 이는 다른 유럽국가인 네덜란드(70%), 스웨덴(71%), 프랑스(71%)의 절반에 불과하며 미국(45%)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공공연금의 낮은 급여가 연금 생활자 5명 가운데 1명이 빈곤에 허덕이는 주 요인으로 꼽힌다. 80년대 이전까지 국가2차연금은 비교적 조건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가입했다. 하지만 대처 정부가 급여 수준을 대폭 낮추고 민간연금 가입을 독려하면서 가입자가 크게 줄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가입자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겨 이른바 ‘미스셀링(Mis-selling) 스캔들’로 비화되기도 했다. 국가2차연금 외에 직장연금 등 기초연금과 별도로 가입해야 하는 이른바 ‘2층연금’은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의무화 되어 있지만 가입률이 전체 대상의 60% 수준이다. 그나마 보험료 납부는 의무화되지 않은 상태다. 가입 의무가 없는 자영업자들한테도 찬밥 신세다.이해관계자 연금은 토니 블레어 정부 들어 직장연금이 저소득 근로자에게 불리한 점을 개선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보험료를 납부한 가입자가 4%에 불과해 사실상 이름만 남은 상태다. 블레어 정부는 지난 4월 직장연금의 기금 부족분을 해결하기 위해 ‘연금보호기금’을 출범시켰다. 이 역시 이미 파산한 기금만을 보조하는 탓에 실제 빈사상태에 놓인 대부분의 기금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글·사진 요크/김보영 통신원 saekyol@hanmail.net
정권 바뀔때마다 손질…연금체제 ‘3층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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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연금체제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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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연금 구조는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공공연금과 별도로 민간연금 비중이 매우 높은 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내세워 이곳저곳 손을 댔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기본적으로 받는 연금이 국가기초연금과 연금 크레딧이다. 통상 ‘1층 연금’으로 불린다. 국가기초연금은 월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약 80만원)으로 사회보장기여금을 납부하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연금이다. 44년 이상 납부했을 때 1인 가족은 주당 79.60파운드(약 16만원), 2인 가족은 주당 127.25파운드(약 25만원)를 받는다. 국가기초연금 외 다른 연금이나 재산 소득이 없어 최저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힘든 사람은 연금 크레딧의 대상자가 된다. 이렇게 연금 크레딧은 우리나라 기초생활보장제와 비슷하게 최저 생활을 보장하는 보장 크레딧과 연금(또는 국가사회보험) 가입경력에 따라 추가 급여를 지급하는 저축 크레딧으로 나뉜다. 보통 1인 가족은 주당 105.45파운드(약 21만원), 2인 가족은 160.95파운드(약 32만원)이 지급된다. 5인 이상 사업장은 국가가 운영하는 국가2차연금(옛 국가소득비례연금)이나 민간에서 운영하는 직장연금, 이해관계자연금, 개인연금 중 하나에 의무적으로 추가 가입해야 한다. 이런 연금들이 이른바 ‘2층 연금’을 이룬다. 이 연금에 가입하면 사회보장기여금을 일부 감면해준다. 이밖에 노후를 위해 자발적으로 민간 연금보험 상품이나 기존 2층 연금에 더 높은 연금을 위해 추가로 기여금을 더 납부하는 경우는 ‘3층 연금’으로 분류된다. 요크/김보영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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