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조세피난처 대해부- 도피 자금 규모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산한 2010년 현재 역외 금융센터들의 자산은 18조달러다. 매킨지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제임스 헨리가 추산한 조세피난처 은닉 자산의 규모는 21조~32조달러에 이른다. 또한 세계 무역량의 절반 이상이 조세피난처를 거친다. 물론 교역 물자들이 실제로 이곳을 거치지는 않는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기 위한 세탁 과정일 뿐이다. 재정적자로 고전 중인 프랑스에서도 매년 수백억유로가 세수에서 빠져나간다.
크리스티앙 샤바뇌 Christian Chavagneux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스위스와 싱가포르에 비자금을 숨긴 제롬 카위작 전 프랑스 예산장관과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불투명한 거래의 심각한 일면을 다룬 ‘역외 탈세자 명단’ 공개가 주요 일간지를 장식한 데 이어 조세피난처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우리가 단순히 ‘야자수가 우거진 섬’이라고 생각하는 이미지와 달리 이런 ‘기생 국가’들은 경제와 금융 세계화에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매킨지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제임스 헨리는 오래전부터 조세피난처에 은닉된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측정하려 한 전문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추정치의 신뢰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그간 계산에서 생략되거나 빠진 부분을 포함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검토했다. 결과는 엄청났다. 조세피난처 은닉 자산 규모는 최소 21조달러에서 최대 32조달러에 달했다. 중간 수치로 잡을 경우 26조달러 정도가 이 불투명한 지역에 숨겨진 것으로 추정됐다.
역외탈세 자산의 절반가량은 9만1천명의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인구의 0.001%에 해당하는 최상위 부유 계층이다. 나머지 절반을 소유하는 840만명도 바로 아래 단계에 있는 고소득층이다. 세계 인구 중 재산 상위 0.14%에 속한다. 탈세가 드러난 경우를 모두 확인한 결과 조세피난처 이용도 1990년부터 나름 ‘민주화’가 이뤄졌다. 중소기업 사장부터 다국적기업의 고위 간부, 컨설팅회사 창업자까지 더 많은 고객이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제전문가 가브리엘 주크만의 추정에 따르면, 부유층 가정의 금융자산 가운데 8%가 조세피난처에 있고 이 가운데 25%가 은행 예금의 형태를 띠고 있다.
프랑스는 어떨까? <라크루아>의 유명한 기자 앙투안 페이용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프랑스인들은 6천억유로를 조세피난처에 숨겼다. 이 가운데 2200억유로는 개인 자산이고 나머지는 기업 소유로 추정된다. 이 자금 대부분은 스위스에 숨겨져 있다. 페이용 기자는 프랑스에서 발생한 의심스러운 UBS은행 거래를 조사해 스위스 연방에 숨겨진 프랑스인의 자산 규모가 최소 1100억유로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스위스 잡지 <빌랑>의 부편집장이자 이 분야의 전문가인 미레 자케에 따르면, 스위스는 실제로 1600억유로에 이르는 프랑스인의 자산을 숨기고 있으며 이 가운데 600억유로는 스위스에 있는 프랑스 은행 지사의 금고에 들어 있다.
늘어나는 세수 손실에 국가 재정 휘청
공공금융연대노동조합은 국내와 국외를 막론하고 탈세로 인한 예산 손실이 지난 6년 동안 대폭 증가했다고 밝혔다. 금융노조는 2006년 탈세로 새나간 비용을 420억~510억유로로 분석했다. 이는 한해 정부 세수 총액의 12.3~15%에 해당한다. 이후 탈세 규모가 확대되면서 최근엔 연간 600억~800억유로의 세수가 빠져나가고 있다고 노조는 추정한다. 이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하면 세수 총액의 16.7~22.3%에 이르는 추가 세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프랑스가 올해 국가 채무에 대한 이자로 500억유로 정도를 지급해야 함을 고려하면 이는 상당한 수준의 금액이다. 특히 재정 지출 절감이 요구되는 시기에 탈세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일반 가정도 탈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세금을 회피하는 가장 대표적인 집단은 대기업이다. 대기업들은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2009년 봄 조사에서 파리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우량기업 40곳이 조세피난처 지역에 상당수의 지사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상황은 이후에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예컨대 국립통계연구소 사이트를 보면, 스위스에 있는 프랑스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은 프랑스 전체 국외 고용 인원의 2%에도 못 미치지만, 이들이 스위스에서 벌어들인 돈은 프랑스 전체 해외 매출액의 9%에 이른다. 이런 격차는 스위스에 있는 직원들의 생산성이 예외적으로 높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중앙은행인 프랑스은행은 지난 4월 초 아주 놀랄 만한 다국적기업들의 행태를 밝혀냈다. 프랑스은행은 국제수지표에 나타난 대내외 투자 현황을 재검토했다. ‘실질적 투자’가 아닌 조세피난처로 빠져나가는 거래를 가려내자, 2011년 말 현재 프랑스에 대한 외국인 증권 투자액이 2730억유로나 과대평가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외국인 투자 총액의 60%이자 프랑스가 국외에 투자한 액수의 30%에 근접하는 수치다. 이런 격차는 계속 증가하는데 이는 기업들의 조세피난처 이용이 증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 나은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진정한’ 투자가 조세피난처에서 이뤄졌을 경우 최초 투자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면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벨기에가 중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조세피난처 국가들이 미국, 독일, 프랑스 기업의 자회사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2011년 말 현재 프랑스에 투자한 외국인 증권 투자액의 14%는 프랑스 소재 외국기업의 자회사들이 조세피난처를 경유해 수행한 것이었던 셈이다. 프랑스에 대한 프랑스 기업의 직접투자는 산업 분야(제약 24%, 화학 17% 등)에서 70%가량 이뤄진다고 프랑스은행 보고서는 분석한다. 서비스 분야 기업까지 포함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치는 기업들로는 악사, 볼로레, 젠델, 신용평가회사 피치 소유주, 사노피아벤티스, GDF 수에즈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프랑스 기업만 이런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다. 2011년 말 미국 기업이 주로 택한 국외 투자처는 네덜란드, 영국, 룩셈부르크, 버뮤다 순이었다. 이 나라들은 조세피난처에 있는 덕택에 제너럴일렉트릭(GE) 같은 대기업은 2.3%, 구글은 2.4%라는 낮은 수준의 법인세율을 적용받았다. 이는 세계적 웃음거리가 될 만한다.
프랑스에선 기업 수입에 대한 징수 체계가 점차 퇴보하고 있다. 표면적인 법인세는 33.3%지만 기업에 실제 적용되는 평균 세율은 18%로 차이가 크다. 직원 20명 이하인 기업들은 30%의 법인세를 낸다. 반면 파리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우량기업 40개(CAC40)의 평균 세율은 8%에 불과하다. 이 기업들 가운데는 심지어 세금을 아예 내지 않는 기업도 있다.
프랑스 우파 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 소속 의원인 질 카레즈는 2011년 7월 “소기업이 감당하는 실제 조세부담률이 대기업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더 높다”고 밝혔다. 그의 조사는 CAC40 대상 기업 40곳이 2007년부터 3년간 납부한 120개의 납세 관련 데이터를 대상으로 했다. 그 가운데 52개의 사례에서 아예 법인세가 부과되지 않았거나 기업이 되레 세금을 환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4개 기업은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가 대주주인 기업 4곳(EDF, GDF 수에즈, 르노, 프랑스텔레콤)은 40%의 세금을 납부했다.
조세피난처는 세금 문제만 걸려 있는 게 아니다. 대규모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 등도 조세피난처를 활용한다. 의무과세자문위원회가 지난 1월 말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프랑스 2위 은행인 소시에테제네랄이 91개 자회사를 조세피난처에 둔 것을 비롯해 3위 은행인 크레디아그리콜은 150개, 그리고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는 무려 334개를 뒀다. 은행들이 조세피난처에 과도할 정도로 많은 자회사를 두고 있는 게 확인된다.
조세피난처로 대기업들만 이익
금융기관들이 원자재 거래의 중심지인 스위스나 에어버스 판매 등 항공산업의 자금 조달에 특화된 케이맨제도에 자회사를 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소시에테제네랄과 크레디아그리콜이 케이맨 제도에 단지 2개의 자회사를 둔 것과 비교해 BNP파리바가 무려 24개의 자회사를 세운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는 자금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옆 혹은 위 아래??)그래프는 두가지를 보여준다. 자본의 유입과 유출은 밀접히 연결돼 있는데 이는 케이맨제도가 단순히 중재자 역할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자본의 흐름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촉발한 신용 거품이 커진 2007~2008년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게다가 미국 상원 보고서는 2008년 여름부터 이 위기를 일으킨 위험 요소의 일부가 케이맨제도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나라가 헤지펀드 유치를 위해 맨 앞에 서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투자회사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이후 자본 흐름의 역동성은 현저히 줄었다. 유럽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은 2011년 여름 이후, 특히 프랑스 은행들이 달러에 대한 투자를 줄인 뒤 크게 감소했다. 이를 통해 자본이 부분적으로 어디를 경유하는지 알 수 있다.
케이맨제도의 의심스러운 활동을 잘 요약한 자료가 있다. 영국 금융의 중심지 시티오브런던은 케이맨제도 자본의 4배가량을 관리할 뿐이지만(케이맨제도의 1조4천억유로 대비 5조6700억유로) 고용 인원은 케이맨제도 금융권의 100 배 이상이다. 케이맨제도의 금융 관련 직원은 3650명인 데 비해 시티오브런던에서 일하는 직원은 36만명에 이른다. 이렇듯 케이맨제도는 거의 활동하지 않으면서 조세회피를 위한 가상 거래와 위험을 피하는 역할만 담당한다. 이 역외 금융센터들의 목적은 규모에 비해 불균형한 자본의 흐름을 관리하고 금융거래가 드러나지 않게 하는 도피처가 되는 것이다.
영국 은행 노던록은 저지섬에 위치한 자회사 ‘그래닛’에 엄청난 규모의 단기 부채를 숨겼다. 미국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는 케이맨제도와 아일랜드 더블린에 자회사를 두고 미친 수준의 도박을 벌이다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됐다. 버나드 매도프의 사기 행각과 관련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의 역할은 말할 필요도 없다.
조세피난처는 최고의 부자들- 개인, 기업, 은행가, 투자자 등- 의 이익에 우선적으로 봉사함으로써 불평등을 조장한다. 또한 불투명한 위험 감수의 공간을 제공해 투기성 금융자본이 크게 팽창하는 데 기여하고 고용과 경제활동을 침체시키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조세피난처를 재검토해야 할 때가 되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3년 5월호(제324호)
Les paradis fiscaux au cœur de la mondialisation?
번역 백수린 위원 크리스티앙 샤바뇌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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