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주의’ 사법부 “헌법회의 위헌” 정부견제 이집트, 정부-사법부 권력투쟁 이집트 사법부가 이슬람주의 세력이 다수인 슈라위원회와 헌법회의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하야 이후 이집트 사법부가 이슬람주의 세력이 장악한 입법부를 상대로 내린 세번째 위헌 판결이다. 이집트와 터키 등 이슬람권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에 대한 견제에 사법부가 선봉에 서고 있다. 이집트 최고헌법재판소는 2일 슈라위원회(의회 상원)와 신헌법을 기초한 헌법회의가 불법적으로 선출됐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지난해 선거에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이슬람주의 세력 승리와 신헌법의 합법성이 사라졌다며, 야권이 반정부 공세에 나섰다. 야권은 무르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서명을 받은 뒤 무르시의 취임 한돌인 30일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열 계획이다. 헌재의 이번 판결로 슈라위원회가 즉각 해산되거나 신헌법이 무효화되는 건 아니다. 슈라위원회는 현재 공석인 하원이 선출될 때까지 존속하며, 이미 국민투표를 통과한 신헌법도 유효하다. 앞서 헌재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하야 이후 신헌법을 기초하던 헌법회의에 대해 지난해 4월 첫 위헌 판결을 내려 해산시켰다. 이어 6월에는 선거법이 위헌이라며 이슬람주의 세력이 다수인 하원을 해산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법부의 견제로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자 무르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신헌법이 제정될때까지 대통령 칙령이 절대적 권한을 갖는다는 조처를 발표했다. 이른바 ‘파라오법’이다. 이와 함께 100인 위원으로 구성된 헌법회의에 헌법 기초의 전권을 맡겼다. 이 과정에서 판사들의 파업과 반정부 집회가 이어졌다. 헌재는 헌법회의를 해산시키는 판결을 시도했다. 법조계 전체가 반정부 활동을 이끌어온 셈이다. 이슬람주의 세력은 법원을 봉쇄하는 항의 집회로 이 판결을 막았다. 신헌법은 이런 과정을 거쳐 가까스로 통과됐다. 헌재는 의회와 헌법회의 등 입법기구에 위헌과 해산 판결을 내리는 이유에 대해 선거법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갈등의 뿌리에는 이슬람주의 세력이 권력분립에 기반을 둔 세속주의 법률 체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슬람주의 세력의 집권이 강화되면, 종교와 정치의 일원화 및 이슬람 율법의 적용으로 결국 세속주의 법 원칙이 무너지리라는 판단이다. 사법부로서는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집트의 법학자들은 신헌법이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성직자들이 입법 활동에 개입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 무르시 정권은 판사들의 은퇴 연령을 60살로 낮추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현재 11명의 헌재 대법관 중 절반이 올해 안에 은퇴하게 된다. 사법부는 이 법안이 무르시 추종자들을 헌재 등 법원에 심으려는 노림수라고 비난하고 있다. 터키에서도 지난 2002년 이슬람주의 정당인 정의개발당(AKP)의 집권하자 이를 무력화시키려는 법적 시도가 잇따랐다. 특히 2008년 터키 검찰이 앞장서서 정의개발당이 터키의 세속주의 헌법정신을 어기고 이슬람주의 국가로 만들려 한다며 정의개발당 해산과 그 각료들의 해임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슬람주의 세력의 광범위한 항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 소원은 헌재에서 간신히 기각됐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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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사법부가… 정교일치 꿈꾸는 이슬람주의에 맞서다 |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된 광장재개발 반대 시위가 주말을 거치며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로 타올랐다. 이집트에선 헌법재판소가 나서 새 헌법 초안을 만든 헌법회의를 위헌이라고 판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슬람국가인 두 나라가 겪고 있는 위기는 겉보기엔 양상이 다르지만 본질적으론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종교뿐 아니라 정치·사회 각 영역까지 ‘이슬람공동체’로 아우르려는 이슬람주의와 정교분리의 원칙을 견지하려는 세속주의 사이의 뿌리깊은 갈등이다.
총리 독재적 이슬람주의…반정부시위 확산
터키 주말 67개 대도시서 시위
시민들은 보도블록을 깨서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매캐한 최루가스가 뿌옇게 거리를 채웠다. 이슬람사원과 학교, 상점은 임시치료소로 변했다. 애초 시위가 벌어진 터키 이스탄불 탁심광장에서 경찰이 철수하며 잦아들 듯했던 분노는 터키 곳곳에서 다시 타올랐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 사흘째인 2일 오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 집무실이 가까운 베식타쉬 지역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알자지라> 등 외신들은 주말 동안 67개 대도시에서 200여건의 시위가 벌어져, 2명이 죽고 1000여명이 다쳤으며 1700여명이 체포됐다고 3일 보도했다.
튀니지·이집트 등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다른 아랍국가들과 달리, 터키는 최근 몇년 동안 관광·자동차제조업 등이 살아나며 호황을 누렸다. 고질적인 재정적자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낮아졌고, 100%에 이르던 물가상승률은 10% 밑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에르도안 총리는 최근 쿠르디스탄노동자당(PKK)과 극적인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써, 쿠르드족과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도 터키 국민들은 왜 이렇게 에르도안에 분노하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2003년 집권한 에르도안 총리가 시간이 흐르며 점점 ‘권위주의적 이슬람주의’를 강화해가는 데서 답을 찾는다.
외신들은 이번 시위가 이스탄불 중심지에 있는 탁심광장 안 게지공원에 대형쇼핑몰을 짓는 재개발계획에서 비롯됐다고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녹지가 사라지는 것을 반대하는 평화시위를 경찰이 과잉진압해 반정부 시위로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탁심광장 프로젝트는 단순한 도시재개발이 아니라, 정부의 일방주의적 행태의 ‘상징’이었다. 미국의 국제정치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탁심광장에 앞서 아름다운 고대 도시를 파괴하는 각종 재개발과 건설계획이 잇따랐다고 지적했다. 에르도안 정부는 19세기부터 보스포루스 해협을 빛내온 유적인 갈라티다리 바로 옆에 흉물스러운 새 다리를 건설했다. 술루쿨레, 타를라바시, 발라트 등 500년 넘게 유지돼온 옛 주거지를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국민들의 반대에 아랑곳 않고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에르도안 총리는 5월1일 메이데이를 맞아 탁심광장에서 열리는 집회를 저지하고자 사실상의 계엄령을 선포하고 광장 인근 지역의 대중교통 운행을 금지시켰다. 지난달 말엔 “젊은이들을 악습에서 구하고자” 알콜 판매 규제를 강화했고, 공공장소에서의 애정표현도 금지시켰다. <포린폴리시>는 이처럼 이슬람주의에 기반을 둔 풍속 규제가 세속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고 짚었다.
터키 국민들은 수니파인 에르도안 총리가 시아파인 시리아 정권에 취해온 적대적 태도 때문에 터키가 시리아 내전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우려도 하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무기 공급만 빼곤 시리아 반군에 다양한 지원을 해왔다. 많은 터키인들은 지난달 터키-시리아 접경지대에서 51명이 숨지는 차량폭탄 테러가 벌어진 것도, 에르도안 총리의 잘못된 대시리아 정책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다. <포린폴리시>는 “에르도안 등 이슬람주의자들은 케말 파샤의 독재적 근대화를 독재적 이슬람주의로 대체하려 한다”며 “현재 터키 시위가 얼마나 더 지속·확대될지는 불투명하지만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된다면 이러한 에르도안의 야심도 종언을 고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세속주의’ 사법부 “헌법회의 위헌” 정부견제 이집트, 정부-사법부 권력투쟁 이집트 사법부가 이슬람주의 세력이 다수인 슈라위원회와 헌법회의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하야 이후 이집트 사법부가 이슬람주의 세력이 장악한 입법부를 상대로 내린 세번째 위헌 판결이다. 이집트와 터키 등 이슬람권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에 대한 견제에 사법부가 선봉에 서고 있다. 이집트 최고헌법재판소는 2일 슈라위원회(의회 상원)와 신헌법을 기초한 헌법회의가 불법적으로 선출됐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지난해 선거에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이슬람주의 세력 승리와 신헌법의 합법성이 사라졌다며, 야권이 반정부 공세에 나섰다. 야권은 무르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서명을 받은 뒤 무르시의 취임 한돌인 30일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열 계획이다. 헌재의 이번 판결로 슈라위원회가 즉각 해산되거나 신헌법이 무효화되는 건 아니다. 슈라위원회는 현재 공석인 하원이 선출될 때까지 존속하며, 이미 국민투표를 통과한 신헌법도 유효하다. 앞서 헌재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하야 이후 신헌법을 기초하던 헌법회의에 대해 지난해 4월 첫 위헌 판결을 내려 해산시켰다. 이어 6월에는 선거법이 위헌이라며 이슬람주의 세력이 다수인 하원을 해산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법부의 견제로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자 무르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신헌법이 제정될때까지 대통령 칙령이 절대적 권한을 갖는다는 조처를 발표했다. 이른바 ‘파라오법’이다. 이와 함께 100인 위원으로 구성된 헌법회의에 헌법 기초의 전권을 맡겼다. 이 과정에서 판사들의 파업과 반정부 집회가 이어졌다. 헌재는 헌법회의를 해산시키는 판결을 시도했다. 법조계 전체가 반정부 활동을 이끌어온 셈이다. 이슬람주의 세력은 법원을 봉쇄하는 항의 집회로 이 판결을 막았다. 신헌법은 이런 과정을 거쳐 가까스로 통과됐다. 헌재는 의회와 헌법회의 등 입법기구에 위헌과 해산 판결을 내리는 이유에 대해 선거법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갈등의 뿌리에는 이슬람주의 세력이 권력분립에 기반을 둔 세속주의 법률 체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슬람주의 세력의 집권이 강화되면, 종교와 정치의 일원화 및 이슬람 율법의 적용으로 결국 세속주의 법 원칙이 무너지리라는 판단이다. 사법부로서는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집트의 법학자들은 신헌법이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성직자들이 입법 활동에 개입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 무르시 정권은 판사들의 은퇴 연령을 60살로 낮추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현재 11명의 헌재 대법관 중 절반이 올해 안에 은퇴하게 된다. 사법부는 이 법안이 무르시 추종자들을 헌재 등 법원에 심으려는 노림수라고 비난하고 있다. 터키에서도 지난 2002년 이슬람주의 정당인 정의개발당(AKP)의 집권하자 이를 무력화시키려는 법적 시도가 잇따랐다. 특히 2008년 터키 검찰이 앞장서서 정의개발당이 터키의 세속주의 헌법정신을 어기고 이슬람주의 국가로 만들려 한다며 정의개발당 해산과 그 각료들의 해임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슬람주의 세력의 광범위한 항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 소원은 헌재에서 간신히 기각됐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세속주의’ 사법부 “헌법회의 위헌” 정부견제 이집트, 정부-사법부 권력투쟁 이집트 사법부가 이슬람주의 세력이 다수인 슈라위원회와 헌법회의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하야 이후 이집트 사법부가 이슬람주의 세력이 장악한 입법부를 상대로 내린 세번째 위헌 판결이다. 이집트와 터키 등 이슬람권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에 대한 견제에 사법부가 선봉에 서고 있다. 이집트 최고헌법재판소는 2일 슈라위원회(의회 상원)와 신헌법을 기초한 헌법회의가 불법적으로 선출됐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지난해 선거에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이슬람주의 세력 승리와 신헌법의 합법성이 사라졌다며, 야권이 반정부 공세에 나섰다. 야권은 무르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서명을 받은 뒤 무르시의 취임 한돌인 30일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열 계획이다. 헌재의 이번 판결로 슈라위원회가 즉각 해산되거나 신헌법이 무효화되는 건 아니다. 슈라위원회는 현재 공석인 하원이 선출될 때까지 존속하며, 이미 국민투표를 통과한 신헌법도 유효하다. 앞서 헌재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하야 이후 신헌법을 기초하던 헌법회의에 대해 지난해 4월 첫 위헌 판결을 내려 해산시켰다. 이어 6월에는 선거법이 위헌이라며 이슬람주의 세력이 다수인 하원을 해산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법부의 견제로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자 무르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신헌법이 제정될때까지 대통령 칙령이 절대적 권한을 갖는다는 조처를 발표했다. 이른바 ‘파라오법’이다. 이와 함께 100인 위원으로 구성된 헌법회의에 헌법 기초의 전권을 맡겼다. 이 과정에서 판사들의 파업과 반정부 집회가 이어졌다. 헌재는 헌법회의를 해산시키는 판결을 시도했다. 법조계 전체가 반정부 활동을 이끌어온 셈이다. 이슬람주의 세력은 법원을 봉쇄하는 항의 집회로 이 판결을 막았다. 신헌법은 이런 과정을 거쳐 가까스로 통과됐다. 헌재는 의회와 헌법회의 등 입법기구에 위헌과 해산 판결을 내리는 이유에 대해 선거법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갈등의 뿌리에는 이슬람주의 세력이 권력분립에 기반을 둔 세속주의 법률 체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슬람주의 세력의 집권이 강화되면, 종교와 정치의 일원화 및 이슬람 율법의 적용으로 결국 세속주의 법 원칙이 무너지리라는 판단이다. 사법부로서는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집트의 법학자들은 신헌법이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성직자들이 입법 활동에 개입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 무르시 정권은 판사들의 은퇴 연령을 60살로 낮추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현재 11명의 헌재 대법관 중 절반이 올해 안에 은퇴하게 된다. 사법부는 이 법안이 무르시 추종자들을 헌재 등 법원에 심으려는 노림수라고 비난하고 있다. 터키에서도 지난 2002년 이슬람주의 정당인 정의개발당(AKP)의 집권하자 이를 무력화시키려는 법적 시도가 잇따랐다. 특히 2008년 터키 검찰이 앞장서서 정의개발당이 터키의 세속주의 헌법정신을 어기고 이슬람주의 국가로 만들려 한다며 정의개발당 해산과 그 각료들의 해임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슬람주의 세력의 광범위한 항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 소원은 헌재에서 간신히 기각됐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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