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2 20:44
수정 : 2013.07.02 20:44
월가 후원금·소송 무기 개혁법 교란
미 파생금융상품 규제 대상 축소
EU 과도한 보너스 제한 방안 유보
단기부동자금 규제도 지지부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금융개혁이 될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0년 7월21일 백악관에서 금융개혁법(도드-프랭크법)에 서명한 뒤 이렇게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의 호된 대가를 치르고 있던 미국 서민들은 반색했고, 언론들도 “홀딱 반할 만하다”며 오바마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오바마의 장담은 3년이 지난 지금 빈말이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월가의 강력한 로비에 막혀 금융개혁법이 무력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의회는 최근 재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융개혁법 적용 대상에서 스왑 상품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스왑은 금융위기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파생금융상품이다. 금융개혁법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강력한 규제인데도 월가의 집요한 로비로 규제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비영리 단체인 맵라이트에 따르면, 월가의 로비가 이뤄진 기간에 친 월가 성향의 의원들에게 쏟아진 금융업계의 후원금은 다른 의원들에 비해 2배 이상 많았다.
월가는 의회를 상대로 한 로비뿐만 아니라, 각종 소송 제기로 금융개혁법의 시행을 막고 있다. 월가는 최근 금융개혁법의 의결권 대리 행사 규정에 대해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며 무효 소송을 냈다. 미 금융당국이 비용-편익 분석에만 2만1000시간을 쏟아 붓는 등 철저한 사전 검토 작업을 거친 사정을 고려하면, 이 소송은 억지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월가가 미 연방대법관 안토닌 스칼리아의 아들을 변호사로 선임한 탓인지 법원은 심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월가의 로비스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드-프랭크법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며 “의회와 오바마 행정부의 상당수 인사들이 월가를 돕는 데 발 벗고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말부터 대형 투자은행 최고경영자(CEO)의 보너스를 ‘본봉의 100%’로 제한하고, 이 가운데 절반은 펀드의 실적과 연계해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최고경영자에 대한 과도한 인센티브가 은행의 위험한 투자를 부추긴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 규정에 대한 유럽의회의 표결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표결이 무기 연기됐다. “사전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금융업계의 로비가 먹힌 탓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사전 검토 작업은 전적으로 금융업계가 제공한 데이터에 의존할 것이므로 ‘물타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은 올해 초부터 투기자본의 단기 부동자금 유입에 따른 폐해를 막으려고 금융거래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나,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이와 관련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피델리티, 도이치방크 등 대형 은행들이 유럽연합을 상대로 한 로비 자금으로 15만~190만유로를 썼다. 하지만 비공식적인 활동까지 포함하면 천문학적인 돈이 로비자금으로 쓰였으리라 추정된다.
한편, 유럽연합은 1일 제이피모건 등 13개 대형 투자은행들이 25조달러에 이르는 신용파생상품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가 진입하는 것을 막으려고 공모한 사실이 드러나 벌금을 매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신들은 “금융개혁이 왜 필요한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