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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5 18:31 수정 : 2005.08.26 14:38

니컬러스 바 런던정경대 교수와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런던정경대 바 교수 연구실에서 유럽과 한국의 연금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런던/김보영 통신원

[세계는연금개혁중] ⑥ 대담- 니컬러스 바 런던정경대 교수


연금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니컬러스 바 런던정경대(LSE) 교수(공공경제학)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다양한 경험에서 바람직한 연금개혁 방향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간 적립방식으로 연금 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금융업계에만 이득을 줄 뿐”이라면서 수명이 늘어나 연금이 문제가 된다면 은퇴연령 조정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은행이 지난 5월 발표한 ‘21세기 노령세대를 위한 소득보조’ 보고서 작성에 참여해 그동안 민영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던 세계은행이 나라마다 다양성 인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토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번 대담은 런던 정경대학 아시아연구소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런던에 체류중이던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지난 7월14일 오후 런던정경대학내 바 교수 연구실을 방문해 1시간여동안 진행됐다.


김연명 교수(이하 김)= 귀한 시간을 허락해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우선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국가들의 연금개혁 흐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현재 한국에서도 연금문제는 뜨거운 정치적 쟁점 중의 하나이다. 한국 언론들은 서유럽국가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서유럽국가들의 연금제도가 주로 정부가 운영하는 부과방식(별도의 적립기금 없이 일년을 단위로 경제활동인구에게 보험료나 세금을 부과하여 얻은 수입으로 노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포기하고 민간연금으로 대체하거나, 정부가 운영하더라도 적립방식(가입자의 보험료를 장기간 적립한 기금에서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재정운영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고령세대 위한 다양한 직업 창출로 노동생산 늘려야
선택범위 넓어 …민간적립반식은 금융업계만 살찌워
OECD 다양한 경험 거울삼아 독자적 해법 찾아야


니컬러스 바(이하 바) 교수=현재 유럽에서 연금개혁에 대해 수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가 빠져있다고 생각한다. 연금문제의 핵심은 사람들이 점점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지난 20세기의 커다란 성과이기도 하다. 문제는 19세기 말에 정해졌던 은퇴연령이 아직까지 변화하지 않고 있는 데 있다. 따라서 현재 보통 65살인 은퇴연령은 70살 정도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이것은 경제학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매우 분명하고 쉬운 대답이다. 하지만 정책을 결정하고 운영해야 하는 정치인들로서는 쉬운 결정이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령화에 대한 대책으로 적립방식 연금을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적립방식은 고령화 대책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유는 매우 간단한다. 연금은 결국 경제학적으로 은퇴 후에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다.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일할 때 연금 보험료(또는 세금) 납부를 통해 정부로부터 은퇴 뒤 연금 급여를 약속 받든가(부과방식), 아니면 돈과 재산을 은퇴를 대비해 쌓아놓는 것(적립방식)이다.

그러나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방식이 아니라 미래에 소비될 상품과 서비스이다. 부과방식과 적립방식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 논란을 거시경제학적으로 바라볼 때, 방식상의 차이만 있을 뿐 단지 미래의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권리를 쌓아놓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이 논쟁은 경제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로 적립방식으로 이득을 얻는 사람은 금융업계이다. 잘 훈련된 연금 보험설계사가 복잡한 연금설계를 잘 이해못하는 사람들의 노후보장보다는 당장 자기가 그 사람들에게 연금상품을 판매함으로써 얻는 수익에만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영국의 경우, 1980년대 대처정부가 부과방식의 공공연금에서 적립방식의 민간연금으로 옮겨가는 것이 장려하면서, 민간보험업계가 연금을 잘못 팔아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연금을 손해보게 되는 대규모의 연금스캔들이 발생해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김= 실제적으로 부과방식과 적립방식의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한국의 많은 정치인들과 정책결정자들은 적립방식으로 쌓인 기금이 경제발전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또한 경제관료들은 연금 기금을 경제발전에 필요한 투자 자금으로 사용하는 데 관심이 매우 높다.

바=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이지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연금기금의 규모가 커질수록 경제가 더 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금융시장의 저축량이 너무 많아 문제인 중국을 보더라도 대규모의 연기금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둘째, 적립된 기금이 금융시장을 원할히 돌아가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이미 금융시장이 잘 발달된 유럽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경제발전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금융시장이 작동하지 못하는 우간다 같은 나라에도 적용되지 않는다. 연금기금이 금융시장에 도움을 주느냐 않느냐는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나는 이 문제가 한국에 도움이 되는 경우라고 판단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연금기금이 경제성장에 도움을 줄수 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 효과가 과장되어서는 안된다. 또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김= 한국에서는 적립방식에 대한 논의와 함께 민영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민영화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대체로 세계은행에서 제안했던 3층제 연금 모델(최소한의 공공연금, 의무적인 민간적립방식의 확정기여형 2층연금, 자발적인 개인연금으로 이루어진 3층연금으로 이루어진 모델. 보통은 은퇴 이후 최소수준의 공공연금과 민간보험사의 2층연금을 합해서 소득을 얻게 된다.)을 주장한다.

바= 세계은행이 고령화 문제를 다룬 1994년의 보고서 ‘고령화 위기를 피하는 길’은 공적연금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진단했지만 민영화를 주장하는 정책대안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국가주도의 연금체계가 문제가 많기 때문에 민간연금이 대안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이다. 하지만 나도 집필에 참여했던 새로운 입장을 담은 ‘21세기의 노령세대를 위한 소득보조: 연금체계와 개혁에 대한 국제적 관점’이 지난 5월에 발간 됐다. 세계은행은 이 책을 통해 민간 중심의 3층제 연금 모델만이 대안이라고 했던 기존의 입장을 버린 셈이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3층제 연금 모델과 같은 특정한 모델이 정답이 아니라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해결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또 민간중심의 적립방식을 여전히 선호하기는 하지만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김= 세계은행의 이런 입장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게 된 것인가?

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10여년 동안 시끄럽게 싸워온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는 끈질기게 ‘민간연금이 정답’이라는 주장은 말이 안되며, 사실도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과장됐다고 주장해 왔고, 이는 점점 명확한 사실로 드러났다.

한국의 경우도 ‘과연 민간중심의 적립방식 연금이 좋은가’라는 질문에 대답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다양한 선택사항 중 하나일 뿐, 경제상황이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대안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 2층 모두 부과방식의 체계로 연금을 잘 운영하는 반면, 네덜란드는 미국과 다른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스웨덴 역시 미국, 네덜란드와는 또 다른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한국이 정작 고려해야 하는 것은 한국의 경제상황, 특히 투자가능한 저축수준, 정치경제적 상황, 사회적·역사적 상황들이다. 일반적으로 상당한 경제적·제도적 능력을 갖춘 나라들은 보다 넓은 선택 범위를 가지고 있다. 한국 역시 그렇다. 경제규모에 따라 연금체계는 매우 다양할 수 있고 나라마다 연금체계는 또 매우 다르다. 내가 한국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다양한 경험을 광범위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모델만이 훌륭하다고 얘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 은퇴연령을 상향조정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연금개혁의 과제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노동시장의 변화가 너무 급격히 진행돼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에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그리고 은퇴연령을 상향조정할 경우 청년실업이 더 악화될 가능성도 있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 은퇴연령의 상향조정이 과연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바= 은퇴연령의 상향조정과 더불어 다양한 노동형태가 제공되어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 알맞게 노동시장에서 다양한 직업 형태가 보장되어야 연금제도 역시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다. 스웨덴의 경우, 62살이 되면 연금의 일부를 받으면서도 시간제 노동을 선택하고, 이를 통해 보험료를 추가적으로 적립해 향후에 더 높은 수준의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의무적인 은퇴연령을 폐지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고령자가 원할 경우 은퇴 대신 시간제 노동으로 대체할 수 있는 방안 등 다양한 제도적 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은퇴연령 상향조정을 고려할 때 항상 청년실업의 증가를 걱정한다. 그러나 현대의 경제구조 아래에서 이는 기우다. 갑자기 은퇴연령을 대폭 상향조정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점진적으로 조정해 경제가 이에 적응할 시간을 준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즉, 은퇴연령이 높아질수록 총 노동자 수는 증가하겠지만 현대 경제에서는 이것이 더 많은 경제활동을 만들어내거나 임금을 하향조정시켜 그만큼의 고용을 창출해낼 수 있다.

역사적인 경험으로도 산업혁명 이전에 10명이 할 일을 기계의 발명으로 1명이 할 수 있게 됐다면, 요즘은 4대의 기계를 더 만들어 5명이 5배의 생산성 있는 활동을 하게 하고 또 나머지 5명은 서비스 산업으로 옮겨가게 하는 식으로 계속 고용을 창출해 해왔다. 따라서 은퇴연령을 상향조정하면 실업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경제학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김= 그러면 연금문제에 있어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는 재정문제로 넘어가 보자. 유럽국가들의 전반적인 공공연금 지출은 이미 국민총생산(GDP) 대비 약 10% 정도인 반면 한국의 경우는 2030년 경에야 7~8% 수준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벌써부터 재정안정성에 대한 논쟁이 매우 치열하다. 한국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것이 너무 높은 수준이어서 미래 한국 경제에 매우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 문제는 연금지출이 아니라 전체적인 정부지출 규모다. 세금이 너무 높으면 경제활동 의욕을 저해한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문제는 어느 정도를 ‘너무’ 높은 것ㅇ로 보느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담세율 45%가 넘으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정부지출이 낮다면 같은 세금을 가지고도 더 많은 돈을 연금에 쓸 수 있다. 특정 수준 이상으로 공공연금 지출이 많아지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김= 연금문제에 있어서 연금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과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바= 그렇다. 수명이 연장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더 오래 생산적인 일을 하게 되면 추가적인 경제적 자원을 창출하게 된다. 또한 더 늦게 은퇴함으로써 연금 지출을 아끼게 된다. 다시 말하면 재정안정성과 총 연금지출수준의 관계는 상충하는 관계가 맞다. 하지만 은퇴연령을 높여 평균적으로 연금을 받게 되는 기간을 줄인다면 꼭 연금급여 수준을 낮추지 않더라도 재정 안정성을 추구할 수 있다. 재정안정을 위해 노후생활 보장이 희생되는 것은 은퇴연령을 높이는 것보다 먼 미래 받을 연금 급여를 낮추는 것이 정치인들에게 더 쉬운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 마지막으로 한국 연금문제에 대해 덧붙일 말은 없는가.

바= 내가 한국 연금에 깊숙히 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밖에서 보기에 한국 경제는 매우 훌륭하게 성장해왔고 따라서 한국이 다양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경험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신만의 개혁을 만들어가야 한다. 연금개혁은 어떤 특정한 정답이 있을 수 없으며 자신의 상황에 맞는 자신만의 해법을 찾는 것만이 바로 정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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