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9 20:16
수정 : 2013.09.10 08:15
케리 “1주 안에 화학무기 다 내놔야”
러 외교도 시리아에 무기 파기 요청
화학무기 직접증거 못찾은 상황서
양국 ‘시리아 해법’ 일치 가능성 관심
시리아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여론이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 정부가 한 목소리로 시리아에 화학무기를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설득하기 위해 유럽과 중동을 순방 중인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9일 마지막 방문지인 영국 런던에서 시리아 정부가 화학 무기 사용 사실을 인정할 것과 남은 무기를 국제 사회에 즉각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케리 장관은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과 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리아가 한 주 안에 화학무기를 모두 내놓지 않으면 공격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그러나 케리 장관은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이 화학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사실상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이날 모스크바를 방문한 왈리드 무알렘 시리아 외무장관과 회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시리아가 보유한 화학무기를 국제적 통제에 맡겨 이를 파기하고, 1997년 발효된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 가입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가 한 목소리로 아사드 정권에게 화학 무기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미국 등 국제사회가 아사드 대통령이 화학무기를 사용한 공격에 직접 간여했다는 분명한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시리아가 국제 사회의 커다란 근심거리로 등장한 화학 무기를 국제사회의 통제 아래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미국과 러시아가 의견의 일치를 봤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데니스 맥도너 미 백악관 비서실장은 8일 주요 방송들과 한 인터뷰에서 시리아에서 벌어진 화학무기 공격에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논박할 수 없는” 증거를 확보한 것은 아니라고 시인했다. 독일 정보기관 ‘베엔데’(BND)도 시리아 정부군 관계자들 사이의 전화 통화를 감청해보니, 아사드 대통령이 화학무기 사용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독일 신문 <빌트암존타크>가 보도했다. 베엔데가 시리아 연안에 파견한 정보함에서 감청한 내용을 보면, 아사드 대통령은 지난달 21일의 화학무기 공격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으며, 그 이전에 화학무기를 사용하자는 군부의 요청도 여러 차례 막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독일 정보기관의 이런 보고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공개된 미국 정보기관들의 판단과 비슷하다. 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 구타에서 지난달 화학무기 공격이 자행됐을 때 미국 정보기관들은 시리아 정부 인사가 화학무기 운용 군부대 책임자와 전화 통화에서 당황한 목소리로 사태를 파악하는 내용을 감청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는 아사드 대통령이나 시리아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화학무기가 사용됐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정황이 하나씩 확인되며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에 대한 국제 여론도 악화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미국의 시리아 군사개입에 유일하게 동참하겠다고 밝혔지만, 프랑스 시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해보니 64%가 반대 뜻을 표했다. 이런 사정 탓인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군사개입 전에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유엔의 보고서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군사 개입에 대한 국제 여론이 이렇게 악화되자 미국은 일단 시리아에 화학무기 포기를 압박하면서 유엔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조사 보고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은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포기하라는 국제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명분으로 언제든 재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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