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외국 정상들에 대한 도·감청 사실을 개괄적으로는 알고 있었다는 미 정보당국 책임자의 발언이 나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몰랐다는 백악관의 해명에 배치되는 주장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미국 정보기관 16곳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의 제임스 클래퍼 국장은 29일 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나와 “(오바마 대통령이 의장인) 국가안보회의(NSC)에서 국가안보국(NSA)의 국외활동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실제로 알고 있다. 특정 표적이나 특정 내용은 아니더라도 전체 차원의 결과물은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클래퍼 국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알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백악관의 해명을 반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클래퍼 국장은 미 정보당국의 첩보활동을 거침없이 정당화했다. 그는 “외국 정상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첩보활동의 핵심 목표이며, 이런 노력은 정보정책의 가장 기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뉴욕 유엔 본부에 대한 도·감청 자제를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례 없는 외교적 위기에 처한 미국이 외국 정상에 대한 첩보활동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지 하루 만이다.
<로이터> 통신은 29일 “오바마 대통령이 국가안보국에 유엔 본부에 대한 엿듣기를 자제하라고 명령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내린 지는 몇주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은 (현재) 유엔 본부를 목표로 한 감시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거에 유엔 본부를 도청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한 도·감청을 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하지 않겠다면서도 ‘과거 도·감청’ 여부에 대해선 어물쩍 넘어간 ‘오바마 화법’ 그대로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관련영상] [한겨레 캐스트#187] 엿듣는 미국, '9·11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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