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5 08:06
수정 : 2013.11.05 08:06
사 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각국 정부에 대한 불법 정보수집 활동의 실상은 충격적이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드러나기 시작한 미국의 불법 정보수집 활동은 ‘빅 브러더’를 연상케 한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처럼 우방국 지도자의 전화를 도청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밀정보 수집을 위해 첨단장비까지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혹스러운 것은 우리나라가 미국의 핵심 정보수집 활동 대상에 포함됐음이 확인된 점이다. <뉴욕 타임스>가 일부 공개한 스노든의 기밀문서를 보면, 한국은 외교정책·정보기관 활동·미군 주둔지역·전략기술 등 4개 분야에서 ‘초점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초점 지역은 미국 이익에 치명적인 지역으로 반드시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곳이다. 2007년 1월에 작성된 이 문서에는 노무현 정부 말기와 이명박 정부 초기에 해당하는 12~18개월간의 임무를 규정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6자회담 등 민감한 현안들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가 집중 감시 대상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도 미국의 핵심 정보수집 대상국일 가능성이 크다. 또 국가안보국의 도청 대상이었다는 35개국 지도자 중에 한국 대통령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현안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이번 폭로로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 정보수집 활동에서 우방이나 적국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 더욱 명백해졌다. 우리 정부의 여러 논의와 움직임은 고스란히 미국의 정보수집 활동에 노출됐다고 봐야 한다. 과거 위키리크스의 폭로에서도 확인됐듯이 우리 사회 상층부 인사들의 대다수가 아직도 미국에는 알아서 고개를 숙이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불법 활동까지 하며 정보를 수집했으니 워싱턴 당국자들은 한국 정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고 있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런 상태에선 호혜적이고 평등한 관계가 이뤄질 수 없다.
미국은 불법 정보수집 활동의 전모를 한국 정부에 숨김없이 밝히고 그간의 잘못을 사과해야 한다. 또 이런 불법 활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방국과 전세계의 우려를 해소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미국이 이 문제를 적당히 얼버무리려 든다면 국제사회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 정부 역시 이를 어물쩍 넘기려 들면 안 된다. 이미 우리 대통령에 대한 도청 의혹이 제기된 상태에서 미국의 불법 활동 단서가 드러난 만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실 확인과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바로잡지 않고, 적당히 넘긴다면 주권국가의 자존을 훼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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