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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19 20:37 수정 : 2013.11.20 15:08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으로 영국 런던에 체류 중인 윤성준(가운데)씨가 지난 5월 독일 뮌헨에서 유럽 축구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른 독일 프로축구팀 바이에른 뮌헨 팬들과 함께 함성을 외치고 있다. 윤성준씨 제공

[21세기 코리안 디아스포라] ② 세계가 일터 “나는 워홀이다”

* 워홀 : 워킹홀리데이 참가자

1963년 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한국에서 날아온 비행기 한 대가 착륙했다. 독일 함보른 광산에서 석탄을 캐려고 고향을 떠난 한국 청년들의 첫 독일행이었다.

광부들은 지하 1000m 막장에서 40℃까지 치솟는 열기와 먼지를 견디며 월 600마르크(160달러)를 벌어 대부분을 동생들의 학비로, 집안의 생활비로 고향에 부쳤다. 이 무렵 독일로 온 간호사들도 응급실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힘겹게 번 돈으로 고국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50년 전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땀과 눈물을 흘린 독일 땅에, 이제는 국경을 넘어 더 넓은 세상에서 일자리와 기회를 찾으려는 한국 청년들이 모여들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 물류업체의 현지 지사에 근무하는 정효진(25)씨도 그중 한 명이다. 유학생이 아니면 좀처럼 비자를 받기 힘든 독일에서 정씨가 합법적으로 체류하며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길이 돼준 것은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이다.

워킹홀리데이는 국외여행을 하며 합법적으로 취업해 돈을 벌 수 있도록 국가 간 협정을 맺는 제도다. 2013년 현재 한국은 뉴질랜드·대만·덴마크·독일·스웨덴·아일랜드·영국·오스트리아·이탈리아·일본·체코·캐나다·프랑스·오스트레일리아·홍콩·헝가리·이스라엘 등 17개 국가·지역과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맺고 있다. 일반 관광비자로는 취업할 수 없지만, 워킹홀리데이비자(관광취업비자)로는 예외적으로 이들 국가에서 취업이 허용된다. 만 18~30살을 대상으로 한 나라에 1회씩만 발급하며 체류 기간은 1년이다. 하지만 직장에서 취업비자를 받도록 도와주면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정씨도 2011년 워킹홀리데이비자를 받아 독일에 왔다. 대학에서 독일어를 공부한 게 큰 도움이 됐다. 프랑크푸르트에 지사를 둔 한국의 중소 물류업체가 낸 인턴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이 됐다.

첫 임무는 여성한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택배 회사처럼 짐을 운반하는 일이었어요. 원래 남자 인턴을 뽑으려고 했는데, 지원자가 저밖에 없어서 뽑았다고 하더군요.” 일은 힘들었지만 보람도 컸다. 휴가 때면 평소 가보고 싶던 독일 지역은 물론 인근 국가도 여행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뒤 정씨는 정식 취업비자를 받았고, 지금은 한국 대기업의 프랑크푸르트 지사에서 정식 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2009년 188명→2012년 1084명
수출강국이라 기회 더 많아
비교적 고임금 받고 자기계발
독일어 못하면 시급 1만원에
한국 음식점 등서 장시간 업무

한국, 16개 국가·지역과 협정
영국은 일자리 적고 물가 높아
“현지사정 파악하고 준비를”

2009년부터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시작한 독일은 최근 한국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각광받고 있다. 시행 첫해 독일을 찾은 ‘워홀’(워킹홀리데이의 줄임말·워킹홀리데이비자를 받아 해외로 떠난 이들을 통칭한다)은 188명에 불과했으나, 이듬해 582명, 2011년 839명, 2012년 1084명으로 급증세다. 가장 많은 워홀들이 향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3만4234명(전체의 70%)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가장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비영어권 국가 중에선 일본(2012년 5856명) 다음으로 참가자가 많다.

독일이 워홀들의 인기를 모으는 이유는 경제 때문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탄탄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무사히 헤쳐나왔고, 다른 경제 선진국들에 비해 일자리가 많다. 그만큼 워홀들에게도 취업의 문이 넓다.

독일이 수출 강국인 점 또한 워홀에겐 큰 매력이다. 글로벌 무역의 생생한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어서다. 정씨는 “물류 선진국 독일에서 많은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있다”며 “이제는 세계 어디에 가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3년 정도 더 이곳에서 생활한 뒤 다른 나라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 워홀에 대한 지나친 환상은 금물이다. 정씨처럼 처음부터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독일어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지 않으면 대부분 한국 음식점 등에서 일을 시작한다. 이 경우 아르바이트 시급이 7유로(약 1만원)에 불과해 생활비를 벌려면 장시간 일을 해야 해, 애초 목표인 어학 공부 등 자기계발을 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1년 안에 다른 직업을 구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해부터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시작한 영국도 최근 한국 워홀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2012년 1기와 올해 초 2기 모집에서 경쟁률이 3대1 수준을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에 추가로 170명을 모집할 때는 경쟁률이 6대1로 높아졌다. 영어 종주국이란 점이 주요 요인인데, 이런 추세라면 내년 3기 모집 때는 경쟁이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

하지만 영국은 독일에 비해 한국 젊은이들이 기회를 잡기가 만만치 않다. 오랜 불황으로 취업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현지인들조차 좋은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이 때문에 런던의 많은 한국인 워홀들이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런던에 도착한 윤성준(25)씨도 우선 영국 선술집 퍼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워홀 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런던 지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런던은 워홀들에게 기회의 땅이자 고통의 땅이다. 세계적인 금융·패션·예술의 중심지라서 견문을 넓힐 수 있지만, 살인적인 물가 탓에 생활고에 시달린다. 조금만 방심하면 여행은 커녕 일상생활조차 버거워진다. 그럼에도 윤씨는 일을 하는 틈틈이 휴가를 내 프랑스와 독일을 여행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여기 와보니 그동안 너무 좁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죠.” 윤씨는 “이곳 생활을 마치면 인생을 좀더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젊은이들이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새 기회를 찾아나가고 있지만, 이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현지 언어 능력이 필수다. 현지어에 능통하지 못하면 한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1년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2003년 영국에 와서 현지 금융회사에 취직해 10년째 런던 생활을 하고 있는 남궁주희(34)씨는 “이곳 사정을 미리 제대로 파악하고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돈벌이까지 해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고 조언했다.

런던·프랑크푸르트/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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