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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4 20:37 수정 : 2013.11.24 22:03

신승연씨가 인턴으로 일하는 시카고의 온라인 마케팅회사 사무실 복도 밖으로 시카고의 상징이자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고층 빌딩으로 꼽히는 1920년대 리글리 빌딩의 시계탑이 보인다.

[21세기 코리안 디아스포라]
④ 국제인턴, 엇갈리는 명암

재즈의 도시, 알 카포네의 도시, 마이클 조던의 도시…. 신승연(24·여)씨는 지난 7월부터 미국 시카고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의 44층 빌딩에 자리잡은 온라인 마케팅 회사 ‘펄스포인트’의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신씨가 날마다 출근하는 사무실은 20세기 건축의 역사라 할 만한 유명 마천루들로 둘러싸여 있다. 복도를 지나다 보면 건너편에 <시카고 트리뷴> 신문사 사옥이자 1920년대의 고풍스런 빌딩인 ‘트리뷴 타워’가 내려다 보인다. 이아무개(31·여)씨 역시 지난 8월부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록펠러 센터, 타임스퀘어가 자리한 뉴욕 맨해튼으로 출근한다. 패션 마케팅에 관심이 큰 그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의 의류업체에서 인턴 자리를 구했다.

요즘 수많은 젊은이들이 ‘국제 인턴 생활’을 꿈꾼다. 남다른 취업 스펙에 대한 압박감도 있고 외국 생활이 가져다 줄 새로운 경험에 대한 욕구도 크다. 국내 취업도 워낙 어렵기 때문에 혹여 외국 현지 취업 출구가 열릴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도 있다. 최근 국제 인턴 지원은 북미·유럽은 물론 동남아·중동·남미 등의 오지까지 다양화되는 추세지만, 여전히 미국의 대도시 인턴 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다. 비싼 생활비와 업체 수수료, 까다로운 비자 때문에 문턱은 높지만 영어를 익히기에 좋은 환경인데다 세계 문화의 용광로로 풍부한 체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 ‘취업 스펙’보다 ‘나의 변화’가 좋다 신승연씨는 한국 교육과학기술부가 미 국무부와 손잡고 운영하는 글로벌 인턴십 ‘웨스트 프로그램’으로 1년 계약의 인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07학번으로 지난해 8월에 학교를 마쳤다. 5년 반만의 졸업이지만 요즘 풍조론 이상할 것도 없다. 스웨덴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국내 공연기획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인턴 생활도 했고, 휴학도 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길 원하는 그에게 취업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신씨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관광경영을 부전공했는데 사실 취업에 유리한 조건은 아니었다”며 “졸업하고 외국계 회사 취업에 실패한 뒤 대학원 준비를 하다가 미국 인턴을 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학연수비와 비자·인턴 구직 수수료 등으로 처음에 900만원가량을 지불했다. 정부 프로그램인지라 가계소득분위에 따른 지원금이 있지만 그는 소득분위가 높아서 항공료를 빼곤 추가 지원은 받지 못했다.

그는 현지에서 시급 12달러로 일하는데, 매달 세전 1900달러, 세후 1500달러가량 번다. 달마다 집세로 800달러가 들지만 빠듯하게나마 경제적 독립이 가능하다. 교통비나 점심식사만 제공하는 실질적 무급 인턴십이 흔한 미국 분위기에서 신씨는 사정이 나은 쪽이다. 신씨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왔지만 월 수입이 500달러에 불과하거나 프리랜서처럼 아예 불규칙해서 인턴 수입만으론 생활이 안 되는 이들도 많다.

스펙쌓기보다 새로운 도전 해보려
‘국제인턴’으로 미국 찾는 젊은이들
비싼 수수료·저임금 감수하며 노동
유연한 기업문화 등 배울점 있지만
기대밖 허드렛일 시달리며 후회도

신씨의 도전은 가깝게는 취업을 겨냥했지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그는 “토익과 인적성 검사를 보완하는 게 당장의 취업엔 더 유리했을 수 있다”며 “하지만 새 경험에 대한 욕구가 컸고 지금은 선택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연하면서 탈권위적인 미국의 직장 문화가 가장 인상 깊다고 했다. 그의 회사는 미국과 유럽에 6개 지사, 170여명의 직원를 두고 있다. 지사들끼리 최대 8시간이나 시차가 나다 보니 일의 효율을 중시할 뿐 출퇴근 시간에 대한 집착은 없다. 그는 “한국에선 어느 시점에는 사다리의 어느 위치에 올라가 있어야 한다는 조급증에 시달렸는데 ‘남의 눈’에서 벗어나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찬찬히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며 “취업 스펙보다는 기업 문화에 대한 관점 등 직장이나 삶에 대한 내 가치관이 변한 게 더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 최고의 도시에서, 최저임금으로 허드렛일 하지만 미국 인턴 생활이 마냥 환상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민간 알선 업체를 통해서 뉴욕에 발을 디딘 이아무개씨는 현지 한인이 운영하는 패션업체에서 지난 8월부터 1년 계약으로 인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국내 알선 업체에 500만원이 넘는 수수료를 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매달 적자 행진이다. 현재 그가 받는 시급은 최저임금을 약간 넘는 7.5달러로, 매달 세금을 제외한 1000달러를 번다. 하지만 월세 630달러를 포함해, 생활비는 아무리 아껴도 매달 1500달러다. 문화생활 등 잡비를 쓰지 않아도 한달에 500달러가 적자다. 이씨는 “서울에선 흔히 먹던 스타벅스 커피를 여기 와서 딱 한 차례 마신 것 같다”며 “요새는 점심값을 아끼느라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2010년 8월에 졸업했다. 하지만 유학파가 득실 거리는 대기업 패션업체는 문턱이 높았다. 2011년 1월에 중견 의류업체에 입사했지만 조직문화도, 일의 내용도 맘에 안 찼다. 5개월 만에 그만둔 뒤 패션쪽 개인사업을 염두에 두다가 뉴욕 의류업체 인턴을 시도하게 됐다.

하지만 기대와 현실은 달랐다. 패션 마케팅과 홍보 부서를 희망했지만, 이씨가 가게 된 회사는 주문자상표부착 방식(OEM)으로 납품을 하는 곳이라 마케팅·홍보 부서 자체가 없었다. 그는 생산관리 부서에 배치됐다. 그는 “바이어 사무실에 샘플을 들고 오가는 택배 같은 허드렛일이 70~80%”라며 “15명 인턴 중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고장난 컴퓨터와 복사기를 손보는 일을 맡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 회사가 인턴사원의 취업비자(H1) 전환을 지원해줘 현지 취업한 사례도 있다고 해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실상을 보니 못할 짓이었다. 그런 사례가 딱 2명인데, 연봉이 세전 2만8000달러, 세후 2만달러로 약 2100만원 수준이다. 첫 해는 4000달러 상당의 취업비자 전환 비용도 내라 하니 손에 쥐는 월급은 140만원이다. 3년간은 이직도 안 되고 3년 뒤 다른 회사로 옮기려 해도 취업비자 발급을 지원해줄 회사를 못 찾으면 한국으로 되돌아가긴 마찬가지다. 그는 “20대 초중반 대학생들은 인턴 내용이 허술해도 미국 대도시 생활만으로 만족하기도 하지만 연령대가 더 높거나 경력자들은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끼리 ‘외노’(외국인 노예)라고 말하는 인턴 생활에 회의가 많지만, 혹여 버티다 보면 다른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현재 생활을 포기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국무부가 지정한 ‘문화교류 비자(J1) 스폰서 기관’ 70곳 가운데 한 곳으로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을 주선·관리하는 ‘컬처럴 비스타’의 로브 펜스터마히어 대표는 “글로벌 유급·무급 인턴십 등을 위해 문화교류 비자로 미국에 들어오는 인력이 연간 30만명을 넘어선다”며 “미국 기업들은 다양한 국적의 인력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대한 새로운 관점 얻을 수 있고, 외국 인력들은 미국 기업 문화라는 ‘소프트 스킬’과 전문 영역의 ‘하드 스킬’이라는 직장 경험을 얻어가라는 ‘윈-윈’ 취지”라고 말했다. 미국의 문화교류 비자는 미 국무부가 체류 목적에 인턴십 프로그램 참여를 명시적으로 포함시킨 대표적 비자다. 비자 발급 건수는 1997년 17만9598건에서 지난해 31만3431건으로 거의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시카고·뉴욕(미국)/ 글·사진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한국인 미 인턴십 비자 연간 5만여건

학생·문화교류비자로 출국
미 무급인턴십 노동착취 논란도

미국 인턴십 지원자들은 대개 학생비자(F1)나 흔히 ‘문화교류 비자’ ‘연수 비자’라고 불리는 제이원(J1) 비자를 받아 떠난다. 올해 초 발표된 미 국무부 통계를 보면, 2012년 한국인이 받은 미국 학생비자는 3만9159건, 문화교류비자는 1만820건 정도였다. 학생비자를 받은 인턴 지원자는 어학연수 프로그램 수료 뒤 약 8주간의 문화체험·여행 용도의 체류허가 기간(Grace period)에 단기 무급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또 문화교류 비자를 받은 인턴 지원자는 최대 18개월까지 유급이나 무급 인턴십이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의 인턴십은 직장 경험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무급 인턴십을 운영하는 게 일반적이라서, 청년 노동력 착취에 대한 해묵은 논란이 많다. 문화교류 비자 역시 현지 기업이 허드렛일 인건비를 줄려고 외국인 노동력을 값싸게 착취하는 경로로 이용된다는 논란이 있다.

현재 미국 학생비자와 문화교류 비자를 받는 이들엔 인턴십 지원자뿐 아니라 유학생, 어학연수생, 교환학생, 어학연수생으로 가장한 불법 취업자·기러기 엄마 등이 뒤섞여 있어 인턴십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고 추세 짐작 정도만 가능하다. 국내 유학업체 관계자는 “유학업체도 어학연수 프로그램만으론 매력이 떨어지니 무급 인턴십 체험을 함께 묶어 상품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정세라 기자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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