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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활동중인 선교봉사단체 캠프가 이재민들과 빈민들의 자활사업을 위해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타워빌캠프봉제센터에서 직업훈련과정을 이수한 훈련생들이 수료 기념으로 지난 12일 패션쇼를 열었다. 현지인과 한국인 활동가들이 훈련생들이 만든 옷을 입고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훈련을 마친 수료생들은 필리핀 정부의 기술교육기구(TESDA)가 주관하는 국가기능사 자격시험에 응시해 85%가 기능사 2급 자격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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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코리안 디아스포라] ⑤ 해외로 간 종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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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비롯 불교·가톨릭 등 왕성
20여년 동안 10만명에 이르러
해외파송 선교사 미국 이어 2위 아프간 선교단 납치 계기로 반성
직접 선교 배제 봉사활동에 주력
젊은이들 해외진출 통로 구실도
“해외활동 자신감·적응력 얻어” 모린 파가두안 필리핀대 사회사업공동체개발학 교수는 “몇년 전까지 대부분의 한국 선교·봉사 활동가들은 일회적이고 전시적인 활동에 그쳐 현지 적응력이 떨어졌다”며 “최근에는 현지에 밀착해 뿌리내리려는 의지가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눈앞의 결과를 원해 전시적 사업에 치중하던 태도도 개선돼 빈민 등 구호 대상자들이 실질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기다릴 줄도 알게 됐다”고 평가했다. 국제엔지오 생명누리(대표 정호진)도 선교로 출발한 해외 봉사 단체다. 2000년대 초 남인도 연합개신교단의 정식 초청을 받아 인도 힌두푸르에서 선교 활동을 한 기독교장로회의 정호진 목사가 설립한 해외 봉사 단체다. 이제는 활동 영역을 인도뿐 아니라 중국·네팔과 아프리카 말라위까지 넓혀, 가난한 농촌과 산촌 마을에 마을개발센터를 설립해 생태적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인도에서는 현지에 완전히 뿌리를 내려 20여명의 인도인 직원과 20여명의 한국인 자원봉사 활동가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2007년 이후 매년 10~20명의 한국인이 생명누리를 통해 해외로 파견돼 봉사 활동에 나서고 있다. 월드비전과 굿네이버스 등은 한국 개신교계가 주도하는 대표적인 대형 국제구호활동 단체다. 월드비전은 당초 한국전쟁 때 전쟁고아 등을 도우려고 설립된 외국 구호단체였으나, 1990년대 이후 한국 개신교계가 큰 구실을 하는 대표적인 국제구호활동단체가 됐다. 월드비전과 굿네이버스를 통해 매년 수백명의 한국인 자원봉사자들이 100여곳이 넘는 나라로 나가고 있다. 한국 개신교단이 해외 신자 확보를 위한 공격적 선교 활동이 빚은 부작용에 대한 반성으로 변화하고 있는 데 비해, 가톨릭·불교·원불교·천도교 등은 해외 선교 활동을 본격화한 1990년대 초부터 구호와 봉사를 결합한 사회 선교를 펼쳐왔다. 불교계의 조계종 구호봉사단과 정토회, 가톨릭의 한국외방선교수녀회, 원불교 교단 차원의 문화선교 등은 개신교단이 겪은 부작용 없이 현지에 정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토회는 민족화해의 관점에서 대북한 지원 사업을 특화한 대표적인 단체다. 외방선교수녀회가 2008년 방글라데시로 파견한 마리피앗(고정란) 수녀 등 4명은 최빈국인 이 나라에서도 최빈곤 지역이며 소수민족들이 섞여 사는 디나지푸르에서 7년 넘게 빈민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리피앗 수녀 등은 수녀회에서 파송 명령 하나만 받고서는 현지에 도착해 3~4년의 언어 습득 등 준비기간을 거친 뒤 자신들이 디나지푸르를 활동지로 선택했다. 이제는 디나지푸르에 빈민자활를 위한 대지 2000여평, 연면적 400평 정도의 테크니컬센터 건립 등을 이뤄냈다. 마리피앗 수녀는 “테크니컬센터 건립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 아니라 6년 동안 꾸준한 활동이 낳은 산물”이라며 “처음부터 현지인과 함께하는 활동으로 구호와 봉사의 기반을 마련했고, 테크니컬센터는 이를 집적해 만든 토대”라고 말했다. 1990년대 초 이후 본격화된 종교 교단들의 선교와 구호·봉사 활동은 한국에서 교세 확장의 한계에 부딪힌 성직자들뿐 아니라, 평범한 젊은이들이 해외로 나가는 대표적 출구로 떠올랐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으로 개신교단의 해외 파송 선교사는 2만5665명이다. 2004년 1만2159명에서 8년 만에 두배로 늘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한국은 미국에 이어 해외 파송 선교사 세계 2위의 나라가 됐다. 여기에 다른 종교 교단과 종교 차원의 해외 민간봉사단체를 통해 나간 인력을 합하면 1990년대 이후 총인원이 1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마닐라/글·사진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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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항 부두 인근 조토 빈민구역의 다리 밑 마을에서 어린이들이 판자로 잇댄 다리를 건너 집으로 가고 있다. 필리핀의 빈민지역은 한국의 종교 관련 사회선교 인력들이 가장 많은 활동을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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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변방까지 깊숙이 들어가
동남아 노동자 보호 역할 맡기도 필리핀은 한국 개신교의 재외 선교와 이에 바탕을 둔 봉사·구호 활동의 모든 모습을 볼 수 있는 원형에 가깝다. 한국에서 가까운 개발도상국이란 지리적 요소에, 종교와 선교 활동이 자유로운 환경이 결합돼, 한국 개신교의 해외 선교와 봉사의 출발지가 됐다. 지금도 최대 규모의 선교·봉사 인력이 활동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한국 선교는 1977년 예수교장로회의 김활영 목사가 파송된 것을 원년으로 35년이 넘는 역사가 쌓였다. 개신교단의 수가 많고 개별적으로 나간 인력도 많아 정확한 파악은 어렵지만, 필리핀에만 적어도 1000여명이 넘는 한국인 선교 인력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의 개신교 선교 인력은 필리핀장로교단(PCP)이라는 현지 교단까지 조직해, 300여개의 교회를 열고 있다. 이 교회의 절반 정도는 한인교회지만, 나머지 절반은 현지인들이 출석하는 교회다. 이 교단은 ‘PCP2020’이라는 선교프로젝트를 마련해, 2020년까지 필리핀에서 400곳의 교회와 10만명의 신자 확보를 목표로 삼고 있다. 필리핀에서 한국 개신교 선교가 이 정도로 성장하기까지는 많은 빛과 그림자가 있었다. 필리핀교회협의회(NCC)의 로멜 리나토 사무국장은 “가톨릭이 국교 차원으로까지 번성한 필리핀에서 한국 개신교 선교 인력들은 필리핀 개신교 역사상 양적으로는 가장 성공적인 선교 확장을 했다”면서도 “이 과정에서 필리핀의 교단 질서와 문화를 훼손한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선교 인력들이 교회와 학교 건립 등 전시성 선교에 주력하는 한편 교회가 정착하면 그동안 도움을 준 현지 교회와 교단의 교인들을 잠식하는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행태가 있었다는 것이다. 리나토 사무국장은 필리핀의 개신교가 다른 종교와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에큐메니컬 전통을 지니고 있는데, 한국의 개신교 선교 인력들이 이를 무시해 필리핀 개신교 전체가 욕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가장 금기시하는 무슬림 지역에서의 공격적인 선교도 여전히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문제점에 대한 반성이 이뤄져, 한국인 선교·봉사 인력들이 필리핀의 오지까지 깊숙이 들어가 활동하고 있다. 특히 한국 선교 인력들이 목회하는 많은 교회들은 필리핀에 거주하는 제3국인들을 돌봐주는 안식처가 되려고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고 마닐라 주빛교회의 임장순 목사가 평가했다. 필리핀에 와서 노동자로 일하는 동남아 각국 사람들을 돕고 보호하며 ‘조용한 선교’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교회들은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진정한 사해동포적 교회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 세계 한인교회들의 모임인 ‘한인디아스포라포럼’의 상임총무이자 필리핀에서 목회하는 정기환 목사는 “한국인들의 해외 선교는 1990년대 이전 미주 지역의 한인 동포을 상대로 한 교회 건립과 그 이후 현지인 상대 선교로 구분되는데, 이제는 적지 않은 한인 동포 교회들에 현지인들도 찾아오는 등 현지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5500개 해외 한인교회 중 4500개가 미국 등 북미 지역에 집중돼 있기는 하지만, 도쿄의 요한동경교회, 상하이의 상해한인연합교회를 비롯한 각 대륙의 유서 깊은 거점 교회들이 현지인과 제3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의 한인교회들은 최근 남미 지역의 가장 오지로까지 들어가 선교와 봉사를 하며, 한인 디아스포라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고 정기환 목사가 말했다. 마닐라/정의길 선임기자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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