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4 17:47
수정 : 2005.09.0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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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나라별 주당 노동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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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노조 논란 가열
“경쟁력회복” “소득감소” 대립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에서 속옷 가게를 운영하는 스텔라 크세노우(45)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안이 달갑지 않다. 정부는 상점 운영 시간을 늘리려고 하는데, 스텔라는 종업원을 고용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는 “나만 가게 문을 닫고 다른 가게가 영업을 하면 손님들을 빼앗길 것”이라고 불평했다.
그리스 정부가 추진중인 노동시장 개혁안의 주요 내용은 △탄력적 노동 시간제 도입 △초과 근무 수당 삭감 △영업시간 연장 등이다. 현재 하루 8시간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이 많을 때 최대 10시간까지 일하고, 일이 없을 때 추가로 일한 시간만큼 덜 일하게 된다. 초과 근무 수당은 현행 평소 근무 수당의 150%에서 125%로 줄어든다. 지금까지 상점들은 월·수요일에는 오후 5시면 문을 닫았는데, 앞으로는 주중에는 밤 9시까지 열 수 있다. 정부는 “두 자릿수인 실업률을 줄이고 경제의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저임금 노동시장을 가진 새 유럽연합 가입국과 경쟁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10월에 실시될 예정인 이 개혁안은 즉각 대기업과 투자자들의 환영을 받았지만, 영세업체와 노동조합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는 이미 1980~90년대 경제구조와 노동시장 개혁을 이룬 영국이나 스웨덴, 네덜란드는 낮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임금이 싼 동유럽이나 아시아로 기업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스 알파은행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근무 시간 연장은 국내총생산의 18%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고, (노동시장 유연화는)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고용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규모 사업체나 상점을 운영하는 이들은 정부 개혁안이 가족 단위로 운영하는 상점들을 파산시킬 것이라며 스텔라와 같은 걱정을 한다. 니코스 스코리니스 그리스 상인·영세업총연합 사무총장은 “상점 영업시간 연장은 소규모 업체들의 비용만 늘릴 뿐, 소비자 이익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조합 쪽 역시 “새 노동법은 노동 여건 악화와 노동자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고 반대 뜻을 밝혔다. 노총은 “현재 급여수준을 유지한 채 주당 근무시간을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축소하자”고 주장하며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계속 추진한다면 법안 시행을 저지하기 위해 추가 행동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야당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은 “그리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은 (노동자의)기술 숙련, 연구·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다시 정권을 잡으면 이 개혁안을 뒤집겠다”고 말했다.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총리가 이끄는 보수 성향의 정부는 지난해 3월 치른 총선에서 10.4%대인 실업률을 낮추고 재정적자를 줄이겠다고 약속하며 정권을 잡았다. 그리스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의 6.1% 수준이다. 유럽연합은 2006년까지 유럽연합 기준인 3%선으로 낮출 것을 요구했다. 유럽 성장·안정 협약에 따라 재정적자가 3%를 넘기면 벌금을 무는 등 제재조처를 받게 된다.
윤진 기자
mind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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