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09 20:33
수정 : 2016.04.16 00:17
강온책 능수능란 미·서방 압도
비자 제한엔 “START 중단” 반격
시리아 화학무기 때도 미국 설득
우크라이나의 정권교체와 영토 분열을 놓고 러시아와 서방이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블라디미르 푸틴(사진) 러시아 대통령이다. 지난 1일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크림반도를 장악한 데 이어 닷새 뒤인 6일 크림자치공화국 의회가 러시아 통합을 결의해 러시아가 미국·유럽보다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푸틴 대통령이 의회·행정부 등 여러 채널을 활용해 강경책과 온건책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상대방을 ‘요리’하고 있는 셈이다.
푸틴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6일 미국과 유럽이 비자 제한 등 러시아 제재 조처를 내놓은 뒤에도 계속됐다. 러시아 국영 <리아노보스티>는 8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국방부 고위 관리의 말을 따서 “러시아가 미국과 맺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의 합의 사항 이행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관리는 “미국이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중단한 만큼, 러시아도 전략무기감축협정에서 합의한 군 시설 사찰을 중단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미-러는 2018년까지 핵탄두를 각각 1550개로, 전략핵미사일을 절반으로 줄이고 해마다 17곳의 군 시설을 사찰하기로 합의했다. 이 협정 이행을 중단한다는 것은 미-러 신뢰관계의 심각한 균열을 감수하겠다는 엄포다. 그러면서도 러시아 외무차관은 이날 우크라이나의 주모스크바 대사와 만났다. 우크라이나의 과도정부 출범 이후 고위 인사끼리의 첫 대면이다. <비비시>(BBC)는 “양쪽은 솔직한 분위기에서 만났다고 한다”며 그나마 긍정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서도, 크림자치공화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지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상원·하원 의장은 7일 크림자치공화국 의회가 16일 러시아 통합을 놓고 찬반 주민투표를 하기로 한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크레믈(크렘린)이 크림자치공화국의 분리·통합 움직임을 지지하고 있다는 첫 공개 신호라고 짚었다. 푸틴은 4일 기자회견에서 크림반도를 병합할 뜻이 없다고 밝혔지만 크림자치공화국의 ‘주체적 판단’을 존중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의회의 입을 빌려 속내를 밝힌 셈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미국이 화학무기 사용을 이유로 시리아를 공격하려고 할 때에도 국제사회의 감시 아래 시리아 화학무기를 폐기하자는 안으로 미국을 설득해 극적으로 국면을 전환시킨 바 있다. <포린어페어스>는 푸틴이 시리아에 이어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도 ‘전략의 달인’으로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짚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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