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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13 20:08 수정 : 2014.03.14 16:27

가난하고 힘없는 아마존 사람들이 세계 2위의 석유 메이저와 싸우는 것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다.

텍사코는 에콰도르 국영 석유회사(페트로 에콰도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1964~1992년 에콰도르 북동부에 있는 라고아그리오 지역에서 석유를 채굴했다. 시추 과정에서 수천만ℓ의 폐유가 나왔다. 텍사코는 800여개의 웅덩이를 파고 찌꺼기 기름을 버렸다. 20여년 동안 폐유 7100만ℓ가 폐기됐고 원유 6400만ℓ가 유출됐다. 텍사코는 미국 등에선 석유·가스 채굴 때 나오는 유독물질을 걸러내는 기술을 이용했지만 에콰도르에선 그러지 않았다. 텍사코는 1배럴당 3달러를 아끼려고 200만㏊의 밀림에 폐기물을 그냥 버렸다. 지난해 환경운동연합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에콰도르 원주민 세코야족의 에데르 파야과헤 의장은 텍사코가 길에 석유를 뿌리고 쓰레기를 시냇물에 버리는 모습을 수없이 봤으며 비가 오면 기름이 섞인 물을 버릴 수 있게 펌프를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어머니의 땅’ 곳곳이 오염됐다”며 “내가 만약 날개가 있다면 어디론가 날아가겠지만 현재로선 갈 곳도 떠날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아마존 원주민들은 암, 피부질환, 백혈병, 기형아 출산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농사도 지을 수 없어 생계가 막막하다.

원주민 3만여명은 ‘아마존 보존 연합’을 결성하고 1993년 텍사코 본사가 있는 미국 뉴욕의 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미 에콰도르에서 철수한 텍사코지만 환경훼손 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텍사코는 1998년 4000만달러의 배상금을 내기로 에콰도르 정부와 합의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한 배상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2001년 셰브론은 텍사코를 인수해 세계 2위의 석유회사가 됐다. 원주민들은 더 강대해진 초국적기업과 싸워야 했다. 셰브론은 미국이 아니라 에콰도르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시스템이 취약하고 부패가 많은 에콰도르 법원이 더 유리하다는 게 셰브론의 속내라고 원주민들은 생각한다. 원주민들은 2003년 다시 에콰도르에서 소송을 시작했다. 수백만달러의 소송 비용을 동원한 셰브론은 원주민들의 노력을 좌절시킬 만한 ‘법적 지뢰’를 곳곳에 깔았다. 셰브론은 텍사코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에콰도르 국영회사에도 책임이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에 소송을 냈다. 2011년 2월엔 원주민을 대변해온 미국 변호사 스티븐 돈지거 등이 에콰도르 판사, 환경컨설팅 회사한테 뇌물을 줬다며 고소했다. 셰브론은 돈지거 변호사 등한테 마피아 따위를 다스리는 ‘조직범죄 단속법’(리코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셰브론이 리코법 소송을 낸 지 며칠 뒤 에콰도르 법원은 환경 복구와 원주민 치료비로 2주 안에 96억달러를 셰브론이 내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95억달러의 배상금 지급을 결정함으로써 원주민들의 기나긴 투쟁도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셰브론이 깔았놓은 지뢰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지난 4일 미국 뉴욕지방법원 루이스 캐플런 판사는 돈지거 등이 에콰도르 소송 과정에서 부정을 저질렀으므로 에콰도르 법원의 배상 판결을 집행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변호인단은 즉시 항소하겠다고 밝혔으나 어떤 결론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찌꺼기 기름으로 더럽혀진 아마존의 검은 물에 원주민들의 피눈물이 흐른다.

이유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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