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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후(현지시각) 네덜란드 헤이그 미국대사관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권유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헤이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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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정상회담] 국제 정세와 3자 회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각)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둔 ‘아시아 귀환’ 정책에 다시 방점을 찍었다. 최근 국제사회의 현안인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는 ‘출구전략’을 밝혔고, 그 힘을 모아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공조 체제를 회복하려는 전략을 분명히 했다.
오바마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허약해서” 이웃 나라를 협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접경 국가에만 위협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 강국”이라고 폄하했다. 러시아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초강대국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옛소련 영내에서의 러시아의 영향력은 인정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미국의 국력을 쏟아붓는 대처를 하지 않음으로써 유럽에 발목 잡히지 않겠다는 의도를 밝힌 것이다. 러시아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는 미국 조야 매파들의 비판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조기에 봉합하려는 그의 목표는 분명하다. 재정적자로 국방비를 삭감해야 하는 처지에서 미국의 국력을 전세계적으로 과잉 전개할 여력은 없다. 이런 현실에서 더욱 시급한 아시아·태평양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이다. 미 ‘아시아 귀환’ 선언했지만
우크라이나·시리아에 발목
오바마 “러 허약해서 이웃 협박”
우크라이나 출구전략 밝혀
한·일 ‘과거사’로 관계 나빠진 새
중국 동아시아 패권 키워
미, 과거사 문제 유례없는 개입
오바마는 우크라이나 출구전략을 내비치면서, 아시아·태평양으로 돌아가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동아시아 최대 동맹국인 일본과 주요 동맹국인 한국을 한자리에 모아, 한-미-일 삼각 공조체제 복원을 밀어붙였다. 이를 위해 미국은 앞서 한-일 과거사 문제에 전례 없는 개입을 했다. 극우 성향인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에 지난해 12월 조 바이든 부통령을 보내 한국과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귀환’ 정책은 지금까지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다른 지역의 현안들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아시아에 미국의 국력을 집중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동에선 이란 핵개발 문제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데다 시리아 내전은 3년 넘게 계속되며 악화됐다. 지난해 중국은 오히려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며 선수를 쳤다. 동아시아에서 미국 안보의 기본틀인 한-미-일 삼각 공조체제는 과거사 문제로 인한 한-일 갈등에 부딪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날 회담에서 오바마는 한·일 정상에게 안보와 관련한 구체적 요구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공동 군사작전, 그리고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통해 어떻게 (안보동맹을) 심화시킬지” 논의했고, 다음달에 3국의 차관보급 안보토의(DTT)를 개최한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과거사 문제로 계속 삐걱이는 한·일 양국을 향해 공동 군사작전과 미사일방어라는 구체적인 숙제를 다시 압박한 것은 미국의 다급한 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사일방어 체제는 친미 일변도 외교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명박 정부마저도 소극적이었던 사안이다. 동유럽에서는 러시아의 반발로,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반대와 이를 의식한 한국의 소극적 자세로 진척이 없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천문학적 재원이 들어가는 미사일방어 체제를 구축하려면 일본과 한국의 재정적 기여가 절실하다. 이는 미국내 매파와 군산복합체 세력을 달래는 한편 ‘아시아 귀환’을 공식화한 미국이 중국을 구체적으로 압박할 조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비해서는 중국을 고려한 ‘균형외교’를 취하려는 박근혜 정부가 치러야 할 막대한 비용과 중국의 견제는 여전한 숙제다. 한-미-일 회담과 동시간대에 벌어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미국이 주장하는 미사일방어 등 한-미-일 안보 공조체제의 명분을 부각시킨다. 반면 미국의 아시아 귀환이 몰고 올 긴장 고조 역시 여실히 보여준다. 만사를 제치고 아시아로 귀환하려는 미국이 시급히 원하는 한-미-일 공조 체제에는 많은 걸림돌이 남아 있다. 어쩌면 이는 동아시아 신냉전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위험도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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