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02 14:16
수정 : 2014.12.0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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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테레비> 아나운서 합격생, 입사 앞두고
호스티스 전력 밝혀지자 회사가 돌연 입사 취소
당사자는 소송 내고, 여론은 당사자 지지 …
한국에서 공중파 방송의 아나운서 시험 합격자가 호스티스 클럽에서 일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이런 일을 ‘안 봐도 비디오’라고 한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연예 전문 언론사들은 날마다 이 사실을 대서특필하고, 누리꾼들은 예리한 ‘집단지성’의 힘을 활용해 해당 인물의 신상을 털 것으로 예상된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당사자의 졸업 사진이 유출되면, 일부 누리꾼들과 인터넷사이트를 중심으로 해당 인물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글들이 확산되고, 이를 견디지 못한 당사자는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는 눈물의 기자회견을 자청할 것이다. 일부에서 지나친 ‘마녀사냥’은 좋지 않다는 의견도 나오겠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철저하게 망가진 채로 사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먹잇감을 향해 나아갈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일본 사회는 이런 사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 <아사히신문>은 2일치에서 일본의 주요 공중파 방송인 <니혼테레비>의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한 사사자키 리사(22·동양영화여학원 4년)의 사연을 소개했다. 사사자키는 니혼테레비의 아나운서 입사전형에 지원해 지난해 9월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학창 시절에 도쿄 긴자의 한 호스티스클럽에서 일했다는 사실이 지난 5월 전해지면서 2015년 봄으로 예정된 입사가 취소되고 말았다. 회사 쪽은 “채용 당시에 이 같은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허위 신고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입사 취소의 이유로 들었다. 니혼테레비의 인사국장은 또 합격 취소 사실을 전한 문서를 통해 “호스티스로 일했다는 경험은 아나운서에게 요구되는 청렴성에 비춰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를 붙였다.
이에 대해 사사자키는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눈물을 흘리며 좌절하는 대신 소송을 내고 과감하게 싸우는 길을 택했다. 그는 지난달 <주간현대>라는 주간지에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며 인터뷰를 했다. 이어 지난달 14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 첫번째 변론에선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합격을 취소하면 법적인 책임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누리꾼들도 트위터 등을 통해 “그렇다면 호스티스는 청렴하지 않다는 거냐” “여자 아나운서는 모두 청렴한가”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소송의 결과는 예측하기 힘든다. 일본의 노동문제 전문가인 요시무라 유지로 변호사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합격을 취소한 것은 받아들여지기 힘들지만, 방송국 쪽의 행동도 완전히 합리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존 일본 법원의 판례를 보면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해 “인간적인 따뜻함, 신뢰감, 여러 탤런트적 자질이 필요한 전문직”이라는 판단을 내린 적이 있다. 호스티스로 일했다는 경력이 여자 아나운서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여론은 사사자키에 우호적인 편이다. 일본의 호스티스는 성매매 같은 ‘2차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고, 손님의 옆자리에 앉아 말동무를 해주는 일을 한다. 호스티스 업계 관계자들도 “호스티스라고 하지만 최근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같은 느낌으로 오는 학생들도 많다”고 말했다.
일본의 여류 작가인 무로이 유즈키는 “직업엔 귀천이 없다. 이긴다면 당당히 방송사에 들어가면 된다. 만약 있기 힘들어진다면 이번 일로 이름이 알려진 그가 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일본 사회의 이런 유연성에는 가끔 눈앞이 아득해질 때도 있다. 모쪼록 앞날에 좋은 일만 있으시길….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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