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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17 20:00 수정 : 2014.12.17 20:00

애꿎은 민간인들만 희생

파키스탄 탈레반의 학교 공격과 학생 집단학살의 비극은 파키스탄 정부의 모순된 정책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다. 멀리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독립이 그 근원이고, 직접적 원인은 파키스탄이 미국과 탈레반 사이에서 벌여온 ‘이중 게임’이다.

파키스탄정보부가 탈레반 키워
미국 ‘테러와의 전쟁’ 동참했지만
탈레반과 연계 안끊어 세력 커져
군이 소탕작전 벌이자 테러 나서

파키스탄의 ‘이중 게임’은 1947년 건국 이후부터 시작됐다. 인도 내부의 종교분쟁으로 인해 독립한 파키스탄은 인도와 전쟁까지 치렀고, 인도는 제1의 주적이 됐다. 그 과정에서 막강한 파키스탄 군부가 탄생했고, 그 정보기관으로 파키스탄정보부(ISI)가 만들어졌다. 냉전 시대 친소련 노선을 걷던 인도를 견제하려고, 미국은 파키스탄정보부와 협력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파키스탄은 기꺼이 소련의 반대편에 서서 이슬람 세력을 규합해 소련 패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파키스탄으로서는 1979년 이슬람 혁명에 성공한 시아파 이란과 인도가 아프간에 영향력을 갖는 것을 봉쇄하기 위해, 아프간에 수니파 정부를 세워야 할 절박한 의도가 있었다. 미국도 이란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최적의 협력 대상으로 삼았고, 파키스탄을 통해 아프간 내 이슬람 무장세력인 무자헤딘 등을 지원했다.

파키스탄정보부는 무자헤딘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아프간과의 접경지역에 세워진 이슬람학교 마드라스에서 아프간 파슈툰족 청년들을 교육시켰다. 이 청년들은 이후 소련이 아프간에서 철군한 뒤 아프간으로 돌아가 탈레반을 결성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탈레반은 사실상 파키스탄정보부가 만든 단체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도 파키스탄이 자국 출신 무장대원 8000명을 파견해 지원했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지 이틀 뒤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워싱턴을 방문중인 마무드 아메드 파키스탄정보부장에게 “파키스탄이 알카에다에 대한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파키스탄을 폭격해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아메드는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군사행동에 반대하고, 탈레반 관리들을 매수해 오사마 빈라덴을 넘겨주겠다는 선에서 타협하려 했다. 하지만, 본국에 있던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내부의 반대를 물리치고 탈레반 공격을 지원하는 결정을 내렸다. 무샤라프는 한달 뒤 아메드를 정보부장에서 해임했다.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장이던 조니 테닛은 이 일화를 자서전 <폭풍의 중심에서>에서 밝히면서, “우리처럼 무샤라프도 새로운 현실에서는 그의 정보부 수장이 적(탈레반)들과 너무 밀접하다고 결론낸 것이 분명하다”라고 회고했다.

당시 미국은 파키스탄을 배후지로 삼아, 탈레반 정권을 한달 만에 무너뜨렸다. 이슬람주의 무장투쟁의 온상이자 ‘테러와의 전쟁’의 배후지 구실을 동시에 하는 파키스탄의 ‘이중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면서도 탈레반과의 연계를 끊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파키스탄 내 이슬람 무장세력이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침공으로 쫓겨난 아프간 탈레반이 파키스탄 접경지대로 피신한 뒤 같은 민족인 파키스탄 내 북서변경주와 연방부족자치지구 내의 파슈툰족도 탈레반 운동을 펼쳐 세력을 키웠다.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아프간 탈레반과는 달리 파키스탄 탈레반은 파키스탄 중앙정부와 관계가 좋지 않다. 펀잡족이 주류인 파키스탄 중앙정부에 대해 변경지역의 파슈툰족들은 건국 이후부터 사실상 독립적 지위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국의 아프간 전쟁이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 2007년부터 급격히 세력을 확장했다. 특히 ‘타릭-이 탈레반 파키스탄’(TPP)이란 단체가 주축이 된 파키스탄 탈레반 세력은 2009년 파키스탄 정부군과 정규전까지 벌이며,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100km 떨어진 부네르까지 점령했다. 이들은 이슬람공화국 설립을 목표로 삼고, 파키스탄 정부와 내전에 들어갔다. 그 후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의 압력을 받아 이슬람주의 소탕 작전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올해 중반부터 파키스탄 군이 벌인 대대적인 소탕작전으로 세력이 위축되자, 이번 학교 테러 사건을 벌였다.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간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전쟁에는 소극적으로 임하면서도, 자국 내 탈레반과는 본격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복잡한 상황에 휘말려 있다. 미국은 더 큰 딜레마에 빠져 있다. 오사마 빈라덴 제거 이후 미국은 아프간 탈레반과 평화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 아프간 정부가 반발하고 있고 탈레반도 이슬람주의 통치 원칙을 포기할 기미가 전혀 없는 상태다. 미국으로서는 아프간-파키스탄(아프팍) 지역의 통제력을 잃으면 이란부터 파키스탄까지가 ‘반미 이슬람 벨트’로 변하는 악몽을 맞게 된다. 이는 걸프만과 아라비아해의 전략적 통제권 상실로 이어진다. 더구나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가진 이슬람 대국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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