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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 도중 폭동으로 불에 탄 한 건물에서 시민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걸고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26명의 시위대가 사망한 이 시위 등을 거치며 친러시아 노선을 표방하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정부는 붕괴됐다. 하지만 러시아는 야누코비치 정부 붕괴가 친서방 세력들의 쿠데타라며 크림반도를 합병하는 한편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리독립 내전을 지원하고 있다. 키예프/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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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본 ‘2014년 국제정세’
‘칼리프’ ‘차르’ ‘황제’. 1400~2000여년 전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이들이 올 한해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현 국제질서의 정점에 선 ‘대통령’이 이들과 벌인 갈등이 2014년 국제 정세의 핵이었다. 고대와 중세 절대 권력자의 호칭으로 상징되는 올해 국제 정세는 옛 질서와 새 질서의 착종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시작된 ‘포스트 냉전’ 시대는 붕괴했다. 국경선들은 허물어지고 신흥 세력이 등장했으나, 이를 규율하는 새 질서는 여전히 혼돈스럽다. 2014년은 우크라이나 분쟁으로 시작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니아 동부 지역의 친러시아 반군세력들은 분리독립을 위한 내전에 돌입했다.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62) 러시아 대통령은 ‘포스트 냉전’의 상징이던 옛 소련 공화국들의 국경선을 흩뜨려 놓으며 힘을 과시했다.
시진핑, 내부 권력 강화·아태 본격 진출
푸틴, 우크라서 힘과시…경제제재 발묶여
IS 부상…이슬람 대 반이슬람 새구도
오바마, 중간선거 참패…미 독주 주춤
중동에서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지난 6월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점령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중동 한복판인 이라크와 시리아의 상당 지역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며 ‘칼리프 국가’ 체제를 선포했다. ‘칼리프’를 자칭한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43)는 현대 국가질서의 근원인 ‘국민국가’ 체제를 뒤흔들고, 전후 중동의 국경선을 무력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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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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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황제’ 시진핑(61) 국가주석은 ‘파리 사냥’ ‘호랑이 사냥’으로 불리는 부패와의 전쟁으로 내부 권력을 공고히 한 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공세적 외교를 벌였다. 동남아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남중국해에서 일방적으로 석유시추를 강행했다. 우경화와 군사력 확대를 추진하는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과 정면대결을 벌이면서, 현대 국제질서의 주축인 미국에 도전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공식적으로 그에게 ‘시 황제’라는 별명을 헌사했다.
슈퍼 파워인 미국의 버락 오바마(53) 대통령은 우유부단하다는 뜻의 ‘햄릿’이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으며, 11월 중간선거에서 참패했다. 하지만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미국 홀로 막강한 힘을 자랑했던 포스트 냉전체제는 이라크 전쟁이 명백한 실패로 드러나고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 이미 붕괴하기 시작했다. 2014년은 2008년부터 진행된 그 추세가 변곡점을 찍었던 해다.
2014년의 정세는 냉전의 균열이 본격화한 1979년과 비교하면 좀 더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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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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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강대국들의 전략적 관계 변화다. 1979년 새해 첫날은 미국-중국 수교 발효로 시작됐다. 미-중 수교는 미국과 소련이 격돌했던 냉전의 전환점이었다. 미-중은 손을 잡고, 소련 봉쇄에 나섰다. 이는 미국과 대결하는 소련에 가장 큰 전략적 압박이 됐다. 중국도 본격적으로 개방해, 세계경제에 편입되며 경제대국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2014년 새해에 벌어진 우크라이나 사태는 1979년과는 180도 달라진 미-중-러 관계를 가속화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손을 잡고, 미국과의 대결에 나서게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와중에 러시아와 중국은 정상회담을 열어 최대 현안인 가스 등 에너지 공급과 개발 문제를 전격 매듭지었다. 양국의 군사협력도 가속화됐다. 두 나라 군대는 올 1월 처음으로 서방의 안마당인 지중해에서도 합동 훈련을 했고, 내년 봄 지중해와 태평양에서 합동 해상훈련을 할 예정이다. 미국에 맞서는 중-러 연대가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연대가 굳건해지고 있다.
둘째, 중동 분쟁의 근본적 변화다. 1979년 3월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평화협정에 조인했다. 이는 중동 분쟁의 성격을 아랍국가 대 이스라엘 분쟁에서 이슬람주의 세력 대 반이슬람주의 세력 분쟁 구도로 바꿨다. 그해 이란에서는 이슬람혁명이 성공해 최초의 이슬람공화국이 성립됐다. 미국은 중동에서 최대 동맹국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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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IS 칼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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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 중동의 한복판인 ‘레반트 지역’, 즉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IS)가 전격적으로 등장했다.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에 건설된 칼리프 국가의 재건을 자처한 이슬람국가는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 이후 중동 분쟁에서 주역으로 등장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 운동의 최대 결과물이다. 이슬람국가는 무엇보다도 ‘국민국가’ 체제의 화해를 시사한다. 유럽의 30년 전쟁 뒤 1648년 조인된 베스트팔렌 조약은 국가 주권 개념에 바탕한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었다. 근·현대 국제사회는 국민국가 개념에 입각해, 국경선을 긋고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서로의 주권과 독립을 인정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면서 국제사회와 질서에서는 국민국가가 아닌 비국가 행위자들의 활동과 영향력이 커졌다. 대표적으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은 국민국가 체제를 초월하는 행위자로 등장했다. 이슬람국가는 그 산물이다.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무슬림의 공동체인 칼리프 국가를 자칭하는 이슬람국가의 등장으로 중동 지역의 기존 국경선은 희미해지고, 기존 국가들의 형해화는 진전되고 있다. 이슬람국가가 실체적인 체제로서 살아남을지는 의문이나, 중동 지역에서 기존 국민국가 질서의 약화를 재촉할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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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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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국제경제 환경의 급변이다. 1979년은 1974년 오일쇼크로 시작된 고유가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상징되는 전후 대불황이 절정에 오른 때였다. 하지만, 유가는 이란의 이슬람혁명으로 촉발된 2차 오일쇼크 때 정점을 찍은 뒤 장기적인 하락 추세로 돌아섰다. 인플레이션은 잦아들었고, 미국 달러화는 약세, 일본 엔화는 강세로 돌아섰다. 유가 하락은 석유 수출이 수입원이던 소련 경제를 압박해, 소련 붕괴의 주요 배경이 됐다. 달러 약세와 엔화 강세는 당시까지 욱일승천하던 일본 경제를 장기불황으로 밀어넣었다.
2014년 여름 이후 유가는 급격하게 하락하며 장기적인 저유가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현재의 디플레이션으로 고착되는 조짐이다. 저유가는 러시아에 직접적 타격을 줘, 루블화 폭락 등을 야기하며 푸틴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2014년 국제 질서와 정세를 뒤흔든 주인공인 차르와 칼리프, 황제는 분명 미국의 헤게모니와 기존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의 상징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대안 세력인지는 의문이다.
차르의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제재와 유가 하락으로 비틀거리는 상황이다. 칼리프의 이슬람국가는 일찍 붕괴할 것이라는 예상을 털어버렸지만, 체제로서 살아남을지는 의문이다. 황제의 나라, 중국 역시 하락하는 경제성장률과 지속되는 전 세계적 불황 속에서 경제적 취약성을 나날이 노출하고 있다.
차르와 칼리프, 황제가 미국의 헤게모니를 몰락으로까지 밀어넣을지는 의문이다. 6년 전 금융위기의 발원지였던 미국이 오히려 경제 회복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 유가 하락은 당장 미국의 적들인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를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 달러 강세는 그 자체로 미국 경제의 상대적 강세뿐만 아니라, 경제회복이 본격화되면 미국으로 몰릴 자금 순환을 예고한다.
2014년 들어 급격히 진행된, 강대국들의 전략적 관계 변화와 중동 분쟁의 성격 변화, 국제경제 환경의 급변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미국과 중국 등의 대응에 달려 있다. 유가 하락과 디플레이션 추세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 양날의 칼이다. 특히,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에 외교적 퇴로를 열어주는 타협책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보일지 주목된다. 현재의 사태가 지속된다면, 러시아의 차르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수 있겠지만, 그 결과는 세계경제를 다시 흔들고 미국의 전략적 환경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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