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5.30 16:16
수정 : 2015.05.30 17:23
아시아안보회의서 밝혀…국방부는 “그런 요구 없었다”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4년 만에 성사된 한-일 국방장관 회담의 배후에 미국의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그동안 이번 한-일 국방장관 회담 개최가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을 추진하는 미국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국방부는 “미국의 요구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나카타니 방위상은 30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중에 따로 열린 미-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에게 이날 한-일 국방장관 회담이 성사되도록 도움을 준 것에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이날 기자들에게 공개된 모두 발언을 통해 “최근 (카터 장관이) 일본을 방문하고 한국도 가셨는데, 내가 한국 국방장관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그 메시지를 전해주셨다”며 “오늘 그것이 실현되고 또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까지 하게 된 점에서 카터 장관의 노력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카터 장관은 지난달 초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나카타니 방위상의 이날 발언은 당시 상황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당시 카터 장관은 일본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나카타니 방위상 등을 만난 뒤 서울에 와서 한민구 국방장관과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하고 청와대도 방문했다.
한국은 2011년 1월 김관진-기타자와 도시미의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마지막으로 과거사 문제 등을 이유로 일본의 회담 개최 요구를 번번이 거부해왔다. 미국 당국자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불만을 나타내며 한-일관계 개선을 요구해왔다.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체제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한-일관계 악화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한-일 국방장관 회담 성사에 미국의 압력이 중요한 구실을 했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나카타니 방위상의 이날 발언은 사실상 이런 관측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그동안 미국의 압력설을 부인해 왔다. 지난 21일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30일 개최하기로 했다”고 발표할 때도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당시 국방부 당국자는 북한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사출 시험 등을 거론하며 “엄중한 안보상황을 고려한 것이고 미-일 방위협력지침 이후 우리 안보와 국익에 영향 미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좀 더 실무적 논의를 통해 확인할 필요 있다는 인식도 있었다”고 한-일 국방장관 회담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이날 나카타니 방위상의 발언이 알려지자 “우리 국방부는 미측의 어떤 관계자로부터도 한-일 국방장관회담을 해야 한다는 발언을 들은 적이 없다. 다만 한일관계의 개선에 관해 관심을 표명한 바는 있었다”고 부인했다. 이 당국자는 ‘한일관계의 개선에 관심 표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느냐’는 질문에 “한일간 국방분야의 협력이 정상화돼야 한다는 의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일본 쪽에 나카타니 방위상의 발언 배경을 문의하니 ‘어느 일방이 다른 나라와 회담을 하라고 강요할 순 없다’는 답변이 왔다”고 덧붙였다.
이와 무관하게 나카타니 방위상이 공개적으로 이런 발언을 한 배경에 대해서도 구구한 억측이 나온다. 집권 자민당 9선의 중진의원인 나카타니 방위상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한국 정부를 곤란하게 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에서부터 단순한 실언에 가깝다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국방부 당국자는 “나카타니 방위상이 카터 장관에게 덕담 차원에서 그런 발언한 것으로 이해한다”면서도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또 샹그릴라 대화에 참가한 국방부 대표단은 기초적인 정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눈총을 샀다. 국방부 관계자는 회의 개막일인 29일 기자들에게 “미국은 이번 샹그릴라 대화에서 우리나라하고만 양자 국방장관 회담을 한다. 일본 등 다른 나라와는 안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국이 그만큼 한국을 중요하게 여기는 방증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이날 나카타니 일본 방위상과 양자회담을 한 데 이어, 호주, 말레이시아 등과도 양자 국방장관 회담을 했다. 또 일본, 호주와 3자 회담도 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애초 미국과 양자 국방장관 회담 계획을 논의할 때 미국 쪽에서 ‘카터 장관의 일정이 빡빡해 한국과만 양자회담을 할 계획이다. 한국과는 북한의 위협 증가 등 현안이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왔었다”고 해명했다.
싱가포르/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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