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0 18:36
수정 : 2005.10.1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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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가까운 농촌 마테타니마을 주민들이 지난달 28일 나무심기를 마친 뒤, 그린벨트 운동 활동가들과 함께 춤을 추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케냐의 그린벨트 운동은 아프리카 시민운동의 상징으로, 이 운동의 창설자인 왕가리 마타이는 그 공로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지난달 초 세계 각국의 시민운동가들과 함께 피스보트를 타고 세계일주 항해에 나선 본사 취재진이, 지구촌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린벨트 운동의 현장을 둘러봤다. 마테타니/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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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보트 세계를 가다] 케냐 그린벨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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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정용(사진부)·정인환(정치부) 기자는 세계 각국의 시민운동가 등 1052명과 함께 ‘피스보트’(토파즈호)를 타고 105일간 세계일주를 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이번 51차 피스보트 주제)를 모색한다.
지난 3일 시작된 일본 평화단체 피스보트의 51번째 항해는 요코하마에서 출항해 앞으로 105일 동안 아시아-아프리카-유럽-라틴아메리카-남태평양 항로를 따라 세계를 일주한다.
피스보트쪽은 이번 항해에서 케냐의 그린벨트 운동과 아프리카 식량안보 문제, 쿠바의 유기농 혁명 등에 초점을 맞춘 ‘지구대학’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또 오는 10월5일 도착 예정인 이집트 포트 사이드에서 모로코 카사블랑카 사이의 뱃길 열흘 동안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주제로 선상 국제심포지엄도 연다. <한겨레>는 승선자들과 함께 5대양 6대주를 돌며 세계 각지에서 평화운동을 펼치는 현지 시민운동가들의 활동상을 현지보고 형식으로 지면에 담아낼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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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타니의 ‘조용한 혁명’
수도 나이로비에서 차량으로 2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마테타니 마을은 케냐가 건기를 지나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9월24일 오전 구불구불한 비포장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자 바짝 말라 붙은 황토가 이내 붉은 먼지바람을 일으켰다. 마을 들머리부터 빼곡히 커피나무가 심어져 있는 마테타니는 겉보기엔 여느 가난한 농촌 마을과 다름 없어 보였다. 하지만 5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선 30여년 전 시작된 ‘조용한 혁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저기 저 언덕 보이지?”
베스 이룰룰루(68)는 주름진 손을 들어 마테타니 언덕을 가리켰다. “예전엔 이틀에 한번꼴로 7~8㎞ 떨어진 저 언덕까지 걸어가서 땔 나무를 해왔다. 오가는데 각각 2시간씩이 걸렸고, 나무를 긁어 모으느라 또 2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하루 건너 하루씩 땔감을 마련하는 데만 꼬박 6시간이 걸린 셈이다.” 하지만 이룰룰루는 더이상 마테타니 언덕까지 갈 필요가 없다. 그린벨트운동 시작과 함께 심었던 나무들이 어느새 자라 땔 나무는 물론 목재용으로 ‘추수’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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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 운동을 하고 있는 케냐 나이로비 인근 농촌 마을 마네타니로 향하는 길에서 성냥각처럼 생긴 가옥들을 흔희 볼 수가 있다. 마테타니/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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땔감도 마실 물도 없던 마을…푸른 생기가 황토 덮었다
텃밭에선 야채·콩이 ‘쑥쑥’ 주민 표정엔 자신감이 ‘가득’
빈곤과 인구폭발은 개발도상국의 자연환경을 파국으로 이끈다. 가난한 이들은 땔감을 얻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고, 농토를 마련하기 위해 숲을 파괴한다. 자연이 파괴될수록 빈곤의 악순환은 더욱 골이 깊어진다. 큰 비가 올 때마다 땅은 쉽게 침식되고, 토양의 영양분도 점차 유실되기 마련이다. 만성적인 기아와 마실 물 부족, 그에 따른 전염병 창궐은 환경 파괴가 가져온 인재다.
1970년대 초반 케냐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남성들의 부엌 출입조차 금기시 하는 농촌 마을에서 집안 살림을 떠맡은 여성들에게 땔 나무와 마실 물 확보는 가장 현실적이고 절박한 문제였다. 그린벨트운동의 나무 심기 운동은 이들이 떠안고 있던 삶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됐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궁벽한 케냐의 농촌에서 땔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새삼스럽다. 마테타니 여성들은 매끼 아궁이도 없는 부엌에서 돌 무더기 위에 솥을 얹고 장작에 불을 지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린벨트운동 창립회원인 마사 두쿠 마치아(83)는 운동의 성과를 묻는 질문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며 “땔감을 구하기 쉬워졌다”고 말했다.
건기를 맞아 마을 회원들은 재래종 나무에서 떨어지는 씨앗 줍기에 한창이었다. 이렇게 모은 씨앗은 우기가 시작될 무렵 마을 곳곳에 마련된 6개 묘목단지에 파종해 싹을 틔운다. 묘목의 키가 30㎝ 가량으로 성장하면 특정 장소를 골라 옮겨 심게 되는데, 옮겨 심은 뒤 석달이 넘게 살아남는 묘목에 대해선 그린벨트운동 쪽에서 약간의 ‘사례금’을 지급한다.
그린벨트운동 상임활동가 조세핀 무고는 “묘목 1그루당 5케냐실링(1달러=약 70케냐실링) 정도로 사례금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라며 “하지만 5인 가족 기준으로 하루 1~2달러면 생활이 가능한 농촌 현실에서 이 정도 액수도 여성들이 나무 심기에 나서는 데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나무 심기와 함께 이른바 ‘부엌 정원’으로 불리는 허드렛물을 활용한 텃밭 가꾸기와 공동 우물 파기 사업도 시작됐다. 특히 농삿일 대부분을 커피 등 환금작물 재배에 집중하고 있는데다, 만성적인 물 부족에 시달리는 케냐 농촌에서 텃밭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커피 작황이 나쁠 때면 끼니마저 걱정해야 했던 마테타니 여성들은 부엌 곁에 마련된 텃밭에서 카사바·얌·콩 등 주식류와 각종 야채를 직접 가꾸기 시작하면서 먹을 거리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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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린벨트 운동을 하고 있는 케냐 나이로비 인근의 농촌인 마네타니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 마을대표의 얘기를 듣고 있다. 마테타니/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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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린벨트 운동을 하고 있는 케냐 나이로비 인근의 농촌인 마네타니마을의 본도니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낯선 이방인의 보고 신기한 듯 창밖을 통해 밖을 쳐다 보고 있다. 마테타니/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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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어 놓은 나무가 자라는 만큼 삶의 고단함을 스스로 이겨내기 시작한 마테타니 여성들의 자신감도 커져 갔다. 그린벨트운동 상임활동가 막달리나 바리키는 “다양한 주민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회원들에게 마을이 직면한 문제점과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하면, 어느새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내 실행에 옮기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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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나이로비 인근의 농촌인 마네타니 마을의 한 어린이와 어미니. 그들에게 그린벨트의 운동은 빈곤을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되어가고 있다. 마테타니/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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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좀도둑이 들끓기 시작하면 청년들로 자경단을 구성해 순찰을 돌게 했고,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고아 가정 3곳에는 회원들이 매달 학비와 식료품을 대주고 있다. 올 초엔 무너진 다리 보수를 위해 ‘울력’에 나서는 한편 지방정부에 지역개발자금(CDF)을 요구하고 나섰다.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자라고 있는 회원들이 심어 놓은 파파야·망고 등 과실수와 그라빌리아 등 성장이 빠른 목재용 묘목 246그루는 10여년 뒤면 아이들의 간식거리와 책걸상용 목재로 사용될 것이다.
그린벨트운동 마을 책임자인 레지나 랑고도(43)는 “얼마 전 150여 회원들이 공동 은행계좌를 개설하고, 그동안 모은 기금으로는 농사 밑천인 소 5마리를 샀다”며 “조만간 양초판매 사업을 시작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숙원사업인 마을 길 넓히기를 위해선 대규모 정부 지원이 필요한 만큼, 내년에는 지방 정부와 한판 싸움도 준비할 참이다. 나무 심기에서 시작된 마테타니 여성들의 도전은 끝없이 현재 진행형이다.
마테타니/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삶의 짐 덜자” 왕가이 마타이 77년 시작”
그린벨트 운동 약사
‘땔 나무와 마실 물, 그리고 먹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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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목은 우리의 미래 마테타니 마을 주민들이 어린 묘목들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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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당시 나이로비대학 교수(생물학)였던 왕가리 마타이가 진단한 케냐 여성들이 직면한 3대 난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타이는 자신이 회원으로 있던 케냐여성위원회(NCWK)의 후원 아래 그린벨트운동을 창설하고 전국적인 나무 심기 운동에 나섰다.
초기 지지부진하던 사업은 1981년 유엔여성개발기금(UNIFEM)이 종잣돈을 지원하면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1997년 1단계 식목사업이 끝날 때까지 그린벨트운동은 케냐 전역에 2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1997년 시작된 2단계 사업은 학교·공원 등 공유지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그린벨트운동이 심은 나무는 3천만그루에 이르며, 10만여 회원이 6천여개의 묘목단지를 가꾸고 있다.
그린벨트운동의 ‘아프리카화’ 작업도 일찌감치 시작됐다. 1987년 결성된 ‘범 아프리카 그린벨트 네트워크(PAGN)’엔 이디오피아 등 16개국 36개 조직이 참여해 그린벨트운동의 경험을 배우고 있다.
정권의 무분별한 공유지 민영화 계획에 맞선 싸움은 그린벨트운동이 민주화 운동과 만나는 디딤돌이 됐다. 나이로비 중심가 우후루 공원(1989년)과 ‘나이로비의 허파’로 불리는 카루라 숲(1998년) 보호 투쟁 등을 통해 “민주적 정부 없이는 환경 보호도 있을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2002년 선거에서 환경운동 진영은 왕가리 마타이(현 환경·자연자원부 차관)를 포함해 9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마테타니/글 정인환 기자 사진 이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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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운동 목표는 주민 자립” _ 칸군도 지역 책임자 마가렛 무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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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운동 목표는 주민 자립” 마가렛 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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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운동은 2단계(1999~현재) 사업의 핵심 과제로 소규모 창업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마테타니를 포함해 20개 마을로 이뤄진 칸군도 지역 책임자 마가렛 무모(43)를 만나 지역 차원의 창업 지원사업에 대해 물었다.
-창업지원은 나무 심기 사업과는 성격이 다른 것 같은데.
=그린벨트운동은 농촌 여성들이 겪고 있는 삶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출발했다. 창업지원 사업도 같은 취지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창업 지원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이를테면 2001년 미 뉴욕에서 환경운동가들이 우리 지역의 차우메 마을을 방문하고 돌아가면서 4만실링(약 550달러)을 기부했다. 이를 종잣돈으로 해 차우메 마을 10개 소모임에 연 이율 10%로 3천실링씩 분배해 소규모 공동 창업을 하도록 권유했다. 지난해 큰 가뭄이 있었음에도, 7월 현재 은행 잔고가 7만실링으로 늘었다.
-주로 어떤 사업들을 하고 있나?
=헌옷과 과일·양초 등 생필품 판매가 가장 많다. 창업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우선 사업 계획서를 내도록 한 뒤, 타당성을 검토해 대출을 해준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궁극적으로 소액 가계 대출을 전담하는 지역 공동체 은행을 설립하는 게 목표다.
마테타니/글 정인환 기자, 사진 이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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