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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16 20:49 수정 : 2015.08.17 15:20

지난 6월 독일 드레스덴 인근의 한 마을에서 외국인 이주자 수용에 반대하는 독일 극우세력(사진 위쪽)이 이주자 수용을 지지하는 시민들과의 접촉을 차단한 경찰 저지선 건너편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프라이탈/AP 연합뉴스

국제 초점 | 이주민 몰려드는 독일 두 풍경

유럽 주요국들이 몰려드는 난민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로 아프리카와 중동의 분쟁지역 난민들이 밀입국 브로커를 통해 지중해를 건너 유럽행을 감행한다. 합법적으로는 유럽에 가닿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EU 40만명 망명 신청
절반 독일행…작년 유입 넘어서
정부예산·수용시설 턱없이 부족
공동묘지터·강제수용소까지 물망

난민 지위 인정 때까진 노동권 없고
열악한 환경 탓 출신지별 패싸움도
극우세력 난민촌 공격 작년의 3배

시민사회 자원봉사·구호활동 활발
현지인 집 공동거주 중개 사이트도
인기 연예인, 난민시설 건설운동 나서
연방정부, 9월초 대책 논의하기로

유럽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유럽연합 28개국에 약 40만명이 난민 망명 신청을 했다. 지난해보다 갑절이나 급증한 수치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독일을 선택했다. 독일 연방 이주난민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난민 신청자만 약 18만명에 이른다. 지난해 독일로 온 이주민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에리트레아, 코소보, 알바니아 등지에서 내전과 기아, 빈곤을 피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이주난민의 급증은 최근 독일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문제다. 난민 수용 문제와 관련된 뉴스가 거의 날마다 헤드라인을 차지한다. 최근엔 난민 문제가 그리스 경제위기보다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독일인들이 더 많아졌다. 지난달 24일 독일 공영방송 <체트데에프>(ZDF)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2%가 “독일 내 이주난민 문제”를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았다.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난민들을 감당하지 못해 쩔쩔맨다. 애초 책정된 난민 관련 예산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연방 이주난민청은 최근 직원 1000명을 추가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난민 수용시설이 포화 상태를 넘어서, 지방 소도시들은 공동묘지 터나 심지어 옛 강제수용소 건물을 난민 주거지로 사용할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함부르크는 소방서 홀을 난민 수용 공간으로 쓰고 있다. 드레스덴은 도시 근교의 천막촌에 난민들을 수용했다.

임시난민수용소들에선 한여름의 참기 힘든 더위와 위생 여건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난민들끼리의 갈등도 피하기 어렵다. 비좁은 공간과 부족한 물자 공급 탓에 난민들 간에 주먹다짐이 벌어지기 일쑤다. 한 예로, 드레스덴에 설치된 난민 천막촌에서는 이달 초 시리아 난민과 아프가니스탄 난민들 사이에 대규모 패싸움이 벌어졌다. 서로를 향해 짱돌, 의자, 캠핑 탁자 등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는 험한 싸움으로 8명이 부상을 당했다.

독일도 절대다수의 나라들처럼 이주자들이 공식적인 ‘난민’ 지위를 인정받거나 합법적으로 정착하기 전까지는 노동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언어를 배우는 것 말고 딱히 할 일이 없다. 난민 지위가 인정될 때까지 수개월 동안 독일에 머물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고향에서 끔찍한 폭력과 전쟁을 겪은 이들의 심리는 불안정하고, 공격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난민 문제에 대한 독일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연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일손이 모자라는 곳에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자원봉사자들이 열성적으로 활동한다. 반면, 외국 난민한테 적대감을 보이는 일부 극우세력은 난민 수용 반대 시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난민 반대 인터넷사이트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난민들에 대한 극우세력의 폭력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올 들어 지금까지 난민수용소에 가해진 극우세력의 공격은 173건에 이른다. 지난해에 견줘 약 3배나 늘었다.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공식 여론조사기관인 유로바로미터가 벌인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주 문제에 대한 독일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3분의 2가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닌 나라 출신이 독일로 이주해 오는 것을 거부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하반기에 드레스덴 시내 거리를 꽉 메웠던 ‘페기다’(Pegida·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 시위는 최근 사그라들었지만, 난민 문제는 일부 독일인들의 외국인 혐오에 불을 붙일 도화선이 되고 있다. 지난 3월 옛 동독 지역인 작센안할트주의 작은 마을인 트뢰글리츠의 마르쿠스 니르트 읍장은 “난민들을 우호적으로 받아들이자”는 캠페인을 펼쳤다가 극우세력인 네오나치의 위협에 무릎을 꿇고 결국 사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외르크 라데크 독일 경찰노동조합 대변인은 시사주간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난민 거주지에 대해 완전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하긴 어렵다. 독일 국민들이 난민들에 대해 이해심을 갖고 수용하고, 난민들에게는 충분한 공간이 주어졌을 때에야 여러 위험들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경찰이 난민 문제로 다른 치안 역량이 부족해지자 군대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시민사회에선 자원봉사자들이 난민들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자신의 집에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가정도 있다. 난민구호 자원봉사단체들이 꾸린 인터넷 사이트도 활약 중이다. 각 지역마다 자원봉사단체에 매일 옷가지와 물품들이 기부된다. 너무 많은 물품들이 쌓여 관리하고 나눠줄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잠시 물품 기부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단체들까지 생겨날 정도다.

‘난민 환영’이라는 웹사이트는 난민들에게 독일 현지인의 집에서 공동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 사이트는 독일 전역에 61건의 난민 주거를 중개했다. 독일에선 자국민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주민들에게 주거를 제공할 경우 연방정부 차원에서 보조금을 지급한다. 최근 공영방송 <체트데에프>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63살의 버스 운전사 아힘이 ‘난민 환영’ 사이트를 통해 아들뻘의 파키스탄 출신 난민을 집에 들인 사연을 소개했다. 1973년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한 직후 막막한 상황에 처했던 아힘은 예전에 받았던 도움을 갚겠다는 생각에 난민을 공동 주거인으로 택했다고 한다.

난민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은 여성이 70%에 이르며, 20~30대 젊은이들이나 은퇴한 노년 세대가 많다. 자원봉사자들은 난민들이 관청을 찾아갈 때 통역과 안내인으로 돕거나, 독일어를 가르쳐준다. 이런 민간 차원의 구호활동에 인기 연예인들도 가세했다. 영화 스타이자 감독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틸 슈바이거는 옛 군기지에 난민 거주시설을 만들겠다고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를 위한 모금 운동을 호소했다.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1400여명이 난민을 돕는 게 과연 옳은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시작한 일이다. 당시 논쟁에서 상당수 댓글들은 노골적인 외국인 혐오를 드러냈다. 이 댓글들에 대해 슈바이거는 “세상에, 내 그럴 줄 알았다!! 너희들이 역겹다! 정말! 내 사이트에서 사라져라, 감정 없는 무뢰한들!” 같은 다소 거친 말로 대꾸한 뒤, 난민 거주시설 건설 운동을 시작했다.

난민 문제에 일부 지방정부들이 대처하는 또 다른 방식은 국적에 따른 이주민 선별이다. 최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독일로 피난 오는 발칸지역 난민의 99%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분쟁이나 자연재해 등 인도주의적 위기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남독일 지역은 발칸지역 출신 난민들을 신속히 되돌려보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독일로 오는 난민의 46%가 발칸 출신이므로 난민들의 수를 줄일 수 있는 임시방편이다. 보수 우파 정당인 기독교사회연합(CSU) 소속인 호르스트 제호퍼 바이에른주 주지사는 “독일을 발칸 난민들에게 매력 없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해법을 내놓았다. 녹색당이 주지사를 맡고 있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도 마찬가지다. 발칸 지역의 난민을 ‘친절하게 되돌려보내는’ 것이 우선 발등의 불을 끄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독일 연방정부는 난민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올해 말까지 독일에 망명을 신청하는 난민은 45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정부들은 난민 관련 예산이 부족해 아우성이다. 난민 문제를 제대로 풀어가려면 예산이 지난해보다 두 배는 더 필요하다. 주지사들은 연방정부가 담당해야 할 이주난민 수를 너무 낮게 책정했다고 비판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방정부와 각 주 정부들이 여름휴가가 끝나는 9월9일에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독일로의 이주자 유입을 환영하는 부문도 있다. 독일 경제계는 이주자들이 경제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활력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독일숙련공업연맹(ZDH)의 알렉산더 레고브스키 대표는 최근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대다수 이주민들은 뭐든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매우 강하다”며 “앞으로 독일에서 생활이 안정된 이주자들이 숙련공업 분야의 인력 부족을 메워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jhanbielefel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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