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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1 13:09 수정 : 2005.10.11 22:30

26일 무슬림 집단거주지역인 케냐 몸바사 우탕게의 웨마센타에서 어린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운동장에 앉아 공부하고 있다. 웨마센터에서는 2~18세 노숙 어린이들 106명이 학교 공부와 직업교육을 함께 하며 새 삶을 준비하고 있다. 몸바사/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한겨레> 이정용(사진부)·정인환(정치부) 기자는 세계 각국의 시민운동가 등 1052명과 함께 ‘피스보트’(토파즈호)를 타고 105일간 세계일주를 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이번 51차 피스보트 주제)를 모색한다.

지난 3일 시작된 일본 평화단체 피스보트의 51번째 항해는 요코하마에서 출항해 앞으로 105일 동안 아시아-아프리카-유럽-라틴아메리카-남태평양 항로를 따라 세계를 일주한다.

피스보트쪽은 이번 항해에서 케냐의 그린벨트 운동과 아프리카 식량안보 문제, 쿠바의 유기농 혁명 등에 초점을 맞춘 ‘지구대학’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또 오는 10월5일 도착 예정인 이집트 포트 사이드에서 모로코 카사블랑카 사이의 뱃길 열흘 동안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주제로 선상 국제심포지엄도 연다. <한겨레>는 승선자들과 함께 5대양 6대주를 돌며 세계 각지에서 평화운동을 펼치는 현지 시민운동가들의 활동상을 현지보고 형식으로 지면에 담아낼 예정이다. [편집자]

피스보트의 두번째 기항지였던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세이셸공화국에선 두어 시간밖에 머물지 못했다. 케냐 농촌을 바꿔가고 있는 그린벨트운동(GBM)을 둘러보기 위해 곧바로 나이로비로 향하기로 예정돼 있었던 탓이다. 출발에 앞서 잠시 짬을 내 세이셸 최대 섬이라는 마헤 시내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느낌이 참으로 묘했다. 갑자기 소인국에라도 온 듯한 기분이었다.

항구에서 10여분을 걸어 가자 ‘도심’이 눈에 들어왔다. 재무부·내무부·대법원 등 굵직굵직한 중앙기관이 즐비한 마헤의 거리는 한적한 소읍을 연상시켰다. 함께 걷던 한 노신사는 대법원 건물을 가리키며 “꼭 시골 여인숙 같다”고 말하는 ‘불경’을 저지르기도 했다. 옥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가로수로 심어진 열대의 나무에선 형언하기 어려운 빛깔의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케냐를 다녀왔으니 드넓은 초원을 자유롭게 뛰노는 야생동물 얘기를 꺼내는 게 순서일 것이다. 하지만 나이로비와 몸바사에서 4박5일을 보내면서 지켜본 짐승이라곤 소와 닭, 그리고 몇마리 염소 뿐이었다. 그러니 사람 얘기로 대신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겠다.

마헤에서 비행기로 2시간20여분만에 도착한 나이로비는 뜨거웠다. 공항에서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서자 교통체증이 시작됐다. 마침 퇴근하는 인파가 몰리면서 거리는 온통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사이를 비집고 아이들이 차량으로 몰려 들었다. 손에는 신문·잡지와 땅콩 따위가 들려 있었다. 일행을 태운 차량이 멈춰설 때마다 비슷한 얼굴을 한 아이들이 쉼 없이 차창으로 물건을 들이 밀었다. 유니세프의 지난해 통계를 보면, 거리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아이들이 나이로비에만 6만 여 명에 이른다.

숙소로 사용할 그린벨트운동의 랑가타 교육센터로 가기 위해 도심을 벗어나면서 가난의 흔적은 조금씩 뚜렷해졌다. 해가 지는 쪽으로 광활한 벌판을 온통 차지하고 들어선 거대한 빈민촌이 눈에 들어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스웨토와 함께 아프리카 대륙 최대의 슬럼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히는 키베라 슬럼이었다. 나이로비의 300만 인구 가운데 100만명 가량이 이곳에 산다니 그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나이로비의 빈곤은 이튿날 시 외곽으로 빠져 나가는 길에서 좀더 분명해졌다.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가난의 흔적은 숨겨지지 않았다. 버려진 드럼통을 이용해 온갖 철제물품을 만드는 시장이 들어선 키콤바를 지나자, 또 다시 작지 않은 규모의 빈민촌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다레 슬럼이다. 그린벨트운동 활동가들은 “나이로비에만 이 정도 규모의 슬럼이 서너 군데는 더 있다”고 말했다. 차량이 시 외곽으로 빠져 나가자 벌판 이곳 저곳에 양철로 벽을 쌓고 아무렇게나 지붕을 올린 크고 작은 ‘성냥갑 주택’의 무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26일 무슬림 집단거주지역인 케냐 몸바사 우탕게의 웨마센타에서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교실에 남아 공부하고 있다. 웨마센터에서는 2~18세 노숙 어린이들 106명이 학교 공부와 직업교육을 함께 하며 새 삶을 준비하고 있다. 몸바사/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그린벨트운동 취재를 마치고 피스보트에 합류하기 위해 몸바사 향하는 비행기 안에선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출발한 지 20여분이 지났을까, 갑작스런 기내방송에 눈을 돌리니 창문 너머 구름을 뚫고 거대한 산봉우리가 솟아 올라 있었다.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였다. 케냐와 남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탄자니야 땅에 있는 킬리만자로는 그 웅장함을 하늘까지 뽐내고 있었다.

케냐 제2의 도시로 꼽히는 몸바사는 나이로비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인구의 90% 이상이 기독교도인 내륙과 달리 서부 해안지역은 이슬람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아 보였다. 시내에서 마주친 이슬람 신자들은 기독교도와 무슬림의 비중을 ‘50 대 50’이라고 말했지만, 기독교도들은 여전히 ‘80 대 20쯤’이라고 주장했다. 무슬림 집단 거주지역인 몸바사 교외 밤부리 우탕게 지역에 자리를 잡은 웨마센터를 찾아가는 길에 마주친 풍경은 흡사 아랍의 한 마을에라도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지난 1993년 세워진 웨마센터는 거리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소녀들을 위한 보금자리다. 빈궁한 가정에서 태어났거나,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 마약이나 술에 찌든 부모 때문에 거리로 내몰렸던 아이들 106명이 그곳에 살고 있다. 패트리시아 오부루 웨마센터 소장은 “2살에서 18살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거리 생활을 마감하고 학교 및 직업교육을 받으며 새 삶에 적응해 가고 있다”며 “처음 센터에 들어온 아이들이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있기까지는 상당 기간 동안 상담과 함께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17살 난 사라(가명)는 몸바사 빈민촌에서 태어났다. 온 가족이 방 1칸에 의지해 지내야 했고, 비가 올 때면 ‘지붕이 없는 것처럼’ 빗줄기가 떨어졌다. 어느날 함께 구걸을 하라면서 언니가 한 맹인 남성을 소개해 줬다. 그 때부터 사라는 낮이면 그의 눈이 돼 거리에서 함께 구걸을 했고, 밤이면 그의 거처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잤다. 11살 나던 해였다.

추위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본드를 불었고,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술을 마셨다. 살아 남기 위해 더러는 또래 남자아이들과, 더러는 성인 남성들과 어울려 밤을 보냈다. 웨마센터 아이들 상당수가 거쳐온 삶의 일단이다. 상임활동가인 헨리 비네아는 “거리에 내몰린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마약이나 술에 절어 지내는 경우가 많아 쉽게 성폭행에 노출된다”며 “11~12살이면 이미 일정 기간 ‘결혼생활’을 경험한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 길거리에선 케냐인들이 길거리에 나와 아무일 없이 앉아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유니세프가 지난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나이로비에서 노숙하는 어린이 수는 6만여 명에 이른다. 나이로비/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몸바사 거리를 떠돌고 있는 ‘노숙 어린이’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시 당국은 지난해 말 현재 4천여명의 아이들이 거리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이는 추정치에 불과하다는 게 웨마센터 쪽의 설명이다. 비슷한 시기 유니세프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케냐 전역에서 약 25만명의 아이들이 거리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지구촌 각지에서 거리를 집으로 삼아 살아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없는 상태다. 조사기관에 따라 적게는 3천여만명에서 많게는 1억7천여만명으로 추산할 뿐이다. 이들 대부분이 보듬어야 할 대상이라기 보다는 ‘청소’해야 할 골칫거리 정도로 취급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몸바사를 출발한 피스보트는 소말리아를 왼편에 끼고 적도를 되짚어 나흘째 북상을 계속하고 있다. 30일 밤에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를 통과해 홍해로 접어들 예정이다. ‘열사의 땅’이 다가오기 때문일까? 벌써부터 햇살의 밀도가 조금씩 묵직하게 느껴진다. 끊임없이 출렁이며 숙면을 방해하던 인도양하고도 이제는 작별이다.

피스보트/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마테타니 마을 뒷얘기

22일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세이셀의 한 주민이 셀윈 클락시장에서 반찬거리로 산 물고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세이셀/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케냐 나이로비 인근 마테타니 마을의 밤은 별과 함께 찾아왔다. 피스보트 사무국이 선상에서 운영하는 ‘지구대학’ 학생들과 함께 그린벨트운동의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찾아간 그곳의 하늘은 ‘별자리 지도’에 다름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은하수를 바라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9월24일 밤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마련한 저녁식사를 마친 뒤, 5가지 언어를 동원한 ‘노변방담’이 시작됐다. 화로불로 건기의 싸늘한 밤공기를 달래며 호롱불빛에 의지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전통문화 차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꺼내 들었다. 이방인들이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를 사용하는 동안 주민들은 스와힐리어와 부족언어인 캄바어로 대거리를 했다. 그 사이에서 그린벨트운동 활동가 데이비드 무텐나(이하 데이비드)가 통역을 하느라 분주했다.

“너희들은 손님을 맞을 때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

처음부터 ‘도저한’ 질문이 나왔다. 일본어권에선 할 말을 잃은 듯해 한국어권이 나섰다. “당신들과 마찬가지다. 우리도 손님이 방문하면 그들에게 먼저 식사를 대접한 뒤, 이웃과 음식을 나누고, 주인은 맨 나중에 먹는다.” 통역이 쓸 만한지 질문자들이 만족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잇따라 질문이 쏟아졌다. “너희들이 가장 내세울 만한 전통음식은 뭐냐?” 일본어권에서 쉽게 ‘생선회’라는 대답을 내놓자 주민들의 반응이 심상찮다. 곧바로 한국어권으로 공격의 예봉이 날아 들었다.

“너희들도 날음식을 먹느냐?”

분위기 파악이 덜된 탓인지 생각없이 ‘육회’를 거론하고 말았다. 주민들이 표정이 바뀌면서 수근거림이 시작했다. ‘날 생선과 날 고기를 먹다니….’ 고작 생각해낸 변명이 “익힌 생선과 고기도 즐겨 먹는다”는 말이었으니, 동쪽에서 온 ‘야만인’ 취급을 당해도 어쩔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날 밤 늦게까지 얘기꽃을 피우다 보니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케냐 노년층 여성 가운데 자신의 나이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막달리나 둥가는 나이를 묻자 웃기만 할 뿐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데이비드는 “큰 가뭄이 들거나 사람들이 모두 기억하는 대규모 사건이 벌어진 해에 태어난 이들은 자신의 나이를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나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둥가의 나이를 ‘60대 중반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사 두쿠 마티아는 사정이 달랐다. 그에게 나이를 묻자 “83살”이라는 대답이 바로 나왔다. 6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둥가보다 무려 20살 가량이 나이가 많은 마티아가 나이를 확실하게 아는 게 뜻 밖이었다. “태어나던 해 대기근이라도 있었느냐”는 질문에 데이비드가 캄바어로 몇가지를 묻더니, 이내 “그럴 줄 알았다”며 묘한 미소를 짓는다.

“아버지가 교육을 받았느냐 여부에 따라 딸이 나이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정해진다. 둥가 할머니는 학교에 다니지 못해 글을 모른다. 아버지도 무학이었을 것이다. 딸의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을 테니, 나이를 모르는 게 당연하다.” 데이비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마티아 할머니는 읽고 쓸 줄을 아는 분이다. 저 연배에 글을 아신다면 둘 중 하나다. 아버지가 영국 제국주의의 부역자였거나, 아니면 선교사 출신이거나.” 그는 “마티아 할머니는 선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라는 불행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마테나니/글 정인환 기자, 사진 이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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