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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13 19:58 수정 : 2016.04.04 22:58

오스트리아까지 2분… 12일 헝가리 국경지대인 헤제슈헐롬에서 난민들이 “오스트리아까지 2분”이라고 쓰인 표지 옆을 걸어가고 있다. 시리아 등 중동 출신 난민들은 헝가리를 거쳐서 오스트리아나 독일 같은 나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헤제슈헐롬/EPA 연합뉴스

김인숙 작가의 유럽 난민 르포

베를린에서 서쪽으로 15㎞쯤 되는 곳에 나우엔이라는 소도시가 있다. 지난 8월25일 이 도시의 한 학교 강당에서 불이 났다. 불이 번졌던 양상으로 보아 경찰은 이 불을 방화로 추정했다. 학교 강당은 130여명의 난민들이 수용되어 있는 캠프였다. 그보다 며칠 전인 8월22일에는 옛 동독 지역인 드레스덴의 인근 도시 하이데나우에서 폭동에 가까운 시위가 일어나 경찰 31명이 다쳤다. 난민들이 그들 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시위였다.

이와 같은 난민 공격은 올해 상반기 동안에만 199건이 보고되었다. 이것은 지난 한해 동안 벌어진 공격의 세배에 가까운 숫자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도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약 60%의 독일 국민들이 그들의 나라로 몰려드는 엄청난 수의 난민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에 비하면 방화를 하고, 폭동을 일으키는 극우주의자,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아랍인 의료기구점서 물건 사고
흑인이 계산원인 마켓서 장보고
베트남식당서 쌀국수 먹고…
베를린은 코스모폴리탄 도시

5개국 친구 모인 저녁식사
누군가 말했다
“독일은 기회를 맞았다
역사에 진 빚을 갚고도 남을
인간애를 보여줄 기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개방적인 정보를 갖고, 또 긍정적인 견해를 갖느냐는 것이다. 독일은 2차 대전 후에 한번, 그리고 1990년대에 한번, 이미 난민 혹은 이민자들의 유입 사태를 겪었다. 1990년대에 터키인들과 이탈리아인들이 노동인력으로 광범위하게 유입되었을 때, 독일인들은 불안에 떨었다. 극우 세력은 ‘그들은 지금 우리의 작업대를 뺏을 뿐이지만, 나중에는 우리의 누이를 뺏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보통사람들의 불안에 불을 지폈다. 이 뻔뻔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정치 선전선동은 그러나 일정 부분 효력을 발휘했다. 당시 극우정당들은 전보다 더 많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렇더라도, 그때 유입된 터키인들은 이제 독일 사회의 주요 집단 구성원들이 되었다. 베를린의 어디에서나 케밥 가게를 보고, 그들의 마켓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처음 유입되던 무렵에 태어나 이제 20대가 된 독일인 학생은 그들에 대한 인상을 묻는 내게, “무척이나 열심히 일하고 무척이나 쾌활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주는 인상, 그것은 바로 이웃의 느낌이다.

독일은 지금 1990년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부강한 나라가 되어 있다. 그때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풍요롭고 사회적으로 발전되어 있는 지금, 독일은 보다 긍정적인 전망을 내세운다. 중동에서 유입되는 대부분의 난민들이 고학력자들이며 젊은 남자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들로 인해 독일의 노동력 부족 문제나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노령화 사회의 문제가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이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사실이지만, 또한 슬픈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죽음을 건너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어떻든 그럴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소리다. 그런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교육받지 못하고, 늙고 힘없는 보통의 난민들은 여전히 그들 나라의 경계 지역에서 기아에 시달리고, 학대당하고, 폭력과 강간의 위협에 놓여 있다. 한 사람의 난민을 받아들일 때, 그의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한 사람의 난민이라도 더 받아들여 그의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또다른 희망이 되게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9월10일 독일 중부 도시 괴팅겐의 한 중학교에서는 교장의 주도하에 앞으로의 토론회에 대한 설명회가 있었다. 독일 학제에 따르면 중학교지만 한국식으로 따지면 6학년인 학생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곧 그들과 한 학급의 친구가 될 난민 출신의 아이들에 관해 모든 것을 공유하고 의논하는 토론회를 갖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제를 정하는 것도, 진행을 하는 것도 다 아이들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이었다.

난민을 환영하는 독일 시민사회의 열렬한 열기는 그것이 바닥으로부터 지지되지 않는 한 힘을 얻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문제이고, 비용의 문제이고, 시스템의 문제이지만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해결하게 하는 것은 국민들의 지지와 이해다. 이제 작은 공동체들이 움직이고 있다. 뜨거운 인간애와 현실적인 문제들을 우려하는 신중론이 한 책상 위에 올려진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교회에서, 은퇴한 사람들의 클럽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독일의 남부 도시인 슈투트가르트의 난민 캠프에는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입된 난민들과 함께 탈북자가 있다. ‘막스플랑크 종교 및 민족 다양성 연구원’의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는 정진헌 박사에 따르면, 독일 전체 지역에 현재 난민 지위 인정 절차를 밟고 있는 탈북자 수는 약 60명에 이른다. 그중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중국을 거치고, 브로커를 거치고, 또 유럽의 여러 나라를 거쳐 마침내 그가 독일에 도착한 것은 고작 수개월 전의 일이다. 그가 독일에 이르기까지 길 위에서 버텨야 했던 세월이 10여년이 더 되었다. 그러나 독일이 마침내 그의 종착지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자신이 탈북자라는 것을 입증하기가 어렵고, 당연히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누가 난민이고 누가 난민이 아닌가, 라는 이 이상한 질문은 현장에서는 매우 심각하고도 고통스러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9월9일치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사에서는 ‘난민’과 ‘이민’의 차이가 갖는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전쟁과 죽음을 피해 사선을 넘어온 사람과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떠나온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겠느냐는 것이다. 난민 인정을 받는 과정은 지난하다. 전쟁을 피해 도망쳐온 사람들에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절망으로 가득 찬 기억일 뿐이다. 같이 떠나왔으나 도중에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가족에 관한 기억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흔히 그 어떤 신분증명서도 없고, 물론 그들이 겪은 절망을 증거해줄 자료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입증’이다.

운이 좋은 경우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몇달 정도이다. 그러나 운이 나쁜 경우에는 10년이 더 걸린다. 그들이 자신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입증하기 위해 기를 쓰는 동안, 그들은 다시 한번 그 사회에서 서서히 배제된다. 오해가 쌓이고,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관계의 기회도 사라진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지금보다 훨씬 빨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생기는 이유다. 그들을 빨리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더 넓은 기회의 폭을 줄 때, 독일인들이 그들을 위해 했던 것처럼, 아니 더 많이, 그들이 독일인들을 위해 선물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선물은 어쩌면 진정한 이웃으로 같이 살아가는 것, 그것뿐일지도 모른다.

9월8일, 나는 오전에 아랍인이 경영하는 의료기구 전문점에서 발목보호대를 사고, 베트남 식당에 가서 쌀국수를 먹고, 아시아인과 흑인이 계산원으로 일을 하는 마켓에서 장을 본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인 친구가 초대한 저녁식사에 가서 그녀의 이탈리아인 남편과 그녀의 레바논인 친구와 독일인 친구를 만난다. 이것이 베를린에서의 나의 어느 하루다. 얼마나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를 보여주는, 이토록 코스모폴리탄한 도시가 얼마나 개방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국제적인 도시의 국제적인 저녁식사 자리에서 난민들에 관한 화제가 빠질 수 없다. 우리 중의 한 사람이 말을 한다. “독일 사람들은 최고의 기회를 갖게 된 겁니다. 역사의 빚을 갚을 뿐만 아니라 그 빚을 넘어서는 것까지 보여줄 수 있는. 그건 인간애입니다.”

지난 한해 동안 시리아에서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25만이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난민이 되었다. 시리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죽어간다. 그리고 이제 6학년인 아이들이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할 수만 있다면 아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진실이다. 그저 선한 얼굴로 난민 아이들을 멀리에서 온 친구들이라고 소개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공개하는 태도일 것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진실이라도, 아무리 비싼 대가를 치루는 것이더라도. 그들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태도는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서까지도 솔직히 공개해야 할 것이다. 난민들을 향한 그 뜨거운 마음이 어디서부터 우러나오고 어디로까지 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물론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베를린에서, 독일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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