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0.04 19:15
수정 : 2015.10.0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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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지 파울루 레망. 사진 유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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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최대 맥주회사인 에이비(AB) 인베브가 세계 2위 회사인 사브밀러에 인수합병을 제안해, 세계 맥주 시장에 공룡 회사의 탄생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에이비 인베브와 사브밀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각각 20.8%와 9.7%다. 두 회사가 합병한다면 세계 맥주 시장의 3분의 1가량을 한 회사가 차지하게 된다. 이 초대형 거래의 배경에는 브라질 최고 부호인 조르지 파울루 레망(75)이라는 인물이 있다.
최대 맥주회사 AB인베브 지배주주
세계시장 21% 장악…오비맥주도 소유
최근 2위 기업 사브밀러 인수도 제안
철저한 비용·인력 감축으로 유명
레망은 방쿠 가란치아라는 투자은행을 공동으로 설립한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시쿠피라, 마르세우 텔리스와 함께 1989년 브라질 맥주회사 브라마를 5000만달러에 인수했다. 브라마 인수는 레망의 야심찬 맥주회사 확장의 출발점이었다. 당시 레망은 브라마 인수 이유에 대해 “나는 라틴아메리카를 살펴봤다. 베네수엘라 제1의 부자가 누구지? 맥주 양조업자. 콜롬비아에서는? 맥주 양조업자. 아르헨티나는? 맥주 양조업자였다”고 말했다. 브라마는 1999년 브라질 국내 경쟁회사인 안타르치카와 합병해서 암베브가 됐으며, 2004년 암베브는 벨기에 대형 맥주회사 인터브루와 합병해 인베브로 재탄생했다. 2008년에는 인베브는 미국 회사 앤하이저부시와 합병해 세계 최대 맥주회사인 에이비 인베브가 됐다. 현재 에이비 인베브가 보유한 브랜드로는 버드와이저와 호가든(후하르던), 코로나, 벡스, 레페(레프), 스텔라 아르투아 등이 있으며, 한국의 오비맥주도 소유하고 있다.
그동안 1989년의 ‘예언’대로 레망은 브라질 제1의 부자가 됐다. 에이비 인베브 주식의 12.5%를 보유한 지배주주인 레망은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26위 부자이기도 하며 보유 자산은 221억달러로 평가된다. 레망의 인수합병은 맥주에 그치지 않고 있다. 방쿠 가란치아 시절부터 삼총사로 불렸던 시쿠피라와 텔리스 등과 함께 2004년 설립한 사모펀드 3G캐피털을 통해 2010년 버거킹을 인수했으며, 버거킹은 지난해 캐나다의 도넛 체인점인 팀 호턴스와 합병했다. 2013년에는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와 공동으로 미국 식품회사 하인즈를 인수하고, 올해 3월에는 하인즈와 또다른 거대 미국 식품회사 크래프트의 합병을 성사시켰다.
레망은 젊은 시절 유명 테니스 선수였으며 스포츠 애호가였다. 그는 브라질 테니스 챔피언에 다섯번 올랐으며, 브라질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영국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 출전한 경력도 있다. 서핑도 즐겼던 그는 삼총사 중 한 명인 시쿠피라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서핑하던 도중 만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스포츠가 자신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곤 했다. 한 강연에서 “나는 테니스 선수 시절 라이벌에게 패배하면서 다음번을 대비하는 법을 배웠다. 노력 없이 결과가 없다는 사실도 배웠다”고 말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서핑하던 시절을 잊지 못하겠다고 한 그는 “살다 보면 위험을 감당해야 할 때가 있고 감당할 유일한 방법은 연습을 하는 것”이라며 “나는 파도와 테니스 그리고 비즈니스를 통해 연습을 해왔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스위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레망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했으며 크레디스위스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경영 방식은 미국 월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기본급은 높게 책정하지 않는 대신 주식과 보너스로 성과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영향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그가 시쿠피라, 텔리스와 함께 1971년 설립했다가 1998년 크레디스위스에 6억7500만달러에 매각한 투자은행 방쿠 가란치아에 대해 <포브스>는 “브라질의 골드만삭스”라고 묘사했다. 그는 방쿠 가란치아에 필요한 인력을 자신이 ‘피에스디’(PSD)라고 이름 지은 ‘가난하고(poor) 똑똑하며(smart) 부자가 되려는 야망(desire to get rich)이 강한 이들’ 중에서 뽑았다.
레망식 경영의 또 다른 특징은 철저한 비용 감축에 있다. 그는 월마트 창업자 샘 월턴을 만난 적이 있는데 월턴의 비용 절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레망이 인수를 주도한 회사들에서는 예산을 짤 때 전년도 예산과 상관없이 매년 모든 비용을 다시 검토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짜는 제로베이스 방식이 도입되고는 했다. 레망의 동료인 시쿠피라는 “비용은 손톱과 같아서 계속 잘라줘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레망이 인수를 주도한 회사에서는 인원 감축도 벌어진다. 3G캐피털이 버드와이저로 유명한 앤하이저부시와 합병했을 때, 앤하이저부시에서 일자리 1400개가 없어졌다. 합병된 회사에는 브라질 출신 경영진이 들어왔고 이들은 과감히 비용을 줄여나갔다고 <포천>은 전했다. <비어 비즈니스 데일리>의 편집장인 해리 슈메이커는 이 브라질 출신 경영진이 “마치 이익을 내는 기계들 같았다”고 말했다고 <포천>은 전했다. 레망을 포함한 삼총사는 기업을 인수한 뒤 인원을 감축하고 복사용지 사용까지 통제하며 비용을 줄이고 조세 제도의 구멍을 이용해서 세금을 합법적으로 적게 내는 방법을 반복해서 사용하며, 이런 방식은 종업원과 고객의 분노를 부를지 모르지만 투자자들을 기쁘게 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버거킹은 2010년 3G캐피털에 인수된 뒤 최근 수익이 세배로 늘었다.
에이비 인베브가 사브밀러 인수에 성공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사브밀러가 에이비 인베브의 인수 제안에 처음에는 퇴짜를 놓을 확률이 비교적 높고, 응한다 하더라도 세계 각국의 독점 규제를 피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망의 확장 시도는 사브밀러 인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될 듯하다. 3G캐피털에 대한 책인 <큰 꿈을 꿔라>(Dream Big)라는 책을 쓴 크리스치아니 코헤아는 “삼총사가 첫번째 인수한 회사인 브라마는 강박적 비용 통제와 실적주의에 기반을 둔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시험하는 완벽한 실험실이었다”며 “그들은 이 모델을 다른 맥주회사를 인수하면서 반복해나갔다”고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그들의 모델은 끊임없는 성장이다. 그들이 얼마나 더 성장하느냐가 의문일 뿐이다”라고 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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