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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3 21:59 수정 : 2005.10.14 02:16

노벨문학상 수상한 영국 극작가 핀터

“일상에 숨겨진 위기 통해 억압 성찰”
이라크전 비난등 인권·평화운동 앞장

올해 노벨 문학상은 영국 극작가 해럴드 핀터(75)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13일 핀터가 “자신의 희곡을 통해 사소한 일상사 아래 숨겨진 위기를 들춰내고 억압의 닫힌 방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1930년 10월10일 영국 런던에서 유대계 양복쟁이의 아들로 태어난 핀터는 성장 과정에서 마주친 반유대주의 정서의 영향을 받아 극작가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2차대전 당시 겪은 공습의 경험이 평생 자신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고 그는 밝혔다. 핀터는 처음에는 배우로서 맥베스와 로미오 등을 연기했으며, 1957년에 첫 희곡 <방>을 발표하면서 극작가의 길로 나섰다. <방>은 지금까지도 그의 희곡 가운데 가장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의 하나다. 이듬해에 발표한 <생일파티>는 텔레비전에서도 방영되는 등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어서 1960년작 <관리인>이 크게 히트하면서 그는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핀터는 자신의 희곡이 사뮈엘 베케트,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미국 갱영화의 영향을 받았노라고 밝힌 바 있다. 핀터는 20세기 후반 영국 극작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대사가 적고 헐렁한 스타일을 가리켜 “핀터스럽다(Pinteresque)”는 말을 쓰는 데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핀터의 극중인물들은 생존을 위해 구축한 깔끔한 일상의 이면에서 내밀한 두려움과 갈망, 죄의식과 까다로운 성적 충동 등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핀터의 희곡들은 초기에는 부조리극의 변종으로 받아들여졌으나 나중에는 ‘공갈의 희극’으로 일컬어졌다. 초기의 심리적 사실주의를 거쳐 좀 더 서정적인 쪽으로 나아갔다는 평가도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핀터는 연극의 기본 요소를 회복했다. 닫힌 공간과 예측 불가능한 대사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에게 약점을 잡힌 끝에 허위가 붕괴되는 양상을 포착한다”고 밝혔다. 한림원은 또 “사람들 사이의 권력투쟁과 술래잡기 식의 탐문”이 핀터 희곡의 전형적인 면모라고 밝혔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과거가 파헤쳐지면서 감춰두었던 그들의 벌거벗은 면모가 드러나는 것이 핀터 희곡의 일반적인 양상이다.

극작가로서 핀터의 전성기는 등단 이후 1965년 무렵까지로 평가된다. 1973년 이후 그는 인권과 세계 평화를 위한 투쟁에 앞장서 왔다. 그는 2003년 11월에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런던 방문에 항의하는 시위에 나가 “오늘날 미국처럼 미움 받는 나라는 없었다”며 “미국은 엄청난 불량국가”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같은 해에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시집을 펴내기도 한 그는 지난해에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기소를 촉구하는 운동에도 참여했다.

핀터의 그밖의 작품으로는 <귀향>(1965), <풍경>(1968), <침묵>(1969), <지난 세월>(1970) 등이 있으며,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비롯한 영화의 시나리오와 라디오 극본도 썼다. 핀터의 희곡은 우리나라에도 여러 권 번역되어 있으며, 연극계에서도 지난달 하순 3회째 핀터 페스티벌을 여는 등 그의 작품을 자주 무대에 올리고 있다.

핀터의 수상은 뜻밖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그를 가리켜 “깜짝 수상자”라고 표현했다. 애초에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는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와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묵, 미국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와 더불어 한국의 고은 시인 등이 거론되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해럴드 핀터의 작품 연보

▲단편소설

'심문'(The Examination) (1955)

▲희곡

'방'(The Room) (1957).
'생일파티'(The Birthday Party) (1957)
'벙어리 웨이터'(The Dumb Waiter) (1957)
'가벼운 통증'(A Slight Ache) (1958)
'핫하우스'(The Hothouse) (1958)
'시사풍자극'(Revue Sketches) (1959)
'일터에서의 고충'(Trouble in the Works) (1959)
'흑과 백'(The Black and White) (1959)
'버스 정류장'(Request Stop) (1959)
'마지막 한 부'(Last to Go) (1959)
'특별한 제안'(Special Offer) (1959)
'넌 그게 문제야'(That's Your Trouble) (1959)
'그것뿐이에요'(That's All) (1959)
'인터뷰'(Interview) (1959)
'세 사람을 위한 대화'(Dialogue for Three) (1959)
'밤나들이'(A Night Out) (1959)
'관리인'(The Caretaker) (1959)
'야간 학교'(Night School) (1960)
'난쟁이들'(The Dwarfs) (1960)
'컬렉션'(Collection) (1961)
'정부'(The Lover) (1962)
'티파티'(Tea Party) (1963)
'귀향'(The Homecoming) (1964)
'지하 아파트'(The Basement) (1966)
'풍경'(Landscape) (1967)
'침묵'(Silence) (1968)
'옛 시절'(The Old Times) (1970)
'독백'(Monologue) (1972)
'사장된 땅'(No Man's Land) (1974)
'배신' (The Betrayal) (1978)
'가족의 목소리들'(Family Voices) (1980)
'빅토리아 역'(Victoria Station) (1982)
'정확하게'(Precisely) (1983)
'최후의 한 잔'(One for the Road) (1984)
'산골 사투리'(Mountain Language) (1988)
'새로운 세계 질서'(The New World Order) (1991)
'파티타임'(Party Time) (1991)
'달빛'(Moonlight) (1993)
'재는 재로'(Ashes to Ashes) (1996)
'축하파티'(Celebration) (2000)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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