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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항공기 추락…숨진 하키선수들 지난 7일 비행기 추락으로 숨진 러시아 하키팀 로코모티프 야로슬라블팀 선수들의 초상화가 8일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 하키 경기장에서 열린 추모식에 늘어서 있다. 이들은 민스크에서 열릴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이륙하다 사고를 당했다. 이들이 속한 대륙하키리그(KHL)는 각 클럽에서 선수를 차출해 로코모티프팀을 재건하겠다고 이날 발표했다. 민스크/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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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시나이 반도를 비행하다가 추락한 러시아 여객기 사고는 이슬람국가(IS)의 폭탄 장착에 의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영국 정부 등은 시나이 반도 상공의 비행을 중지하는 등 일제히 테러 경보령이 다시 울리고 있다.
“공항의 누군가가 폭탄 장착에 도움”
미국 정보 당국은 러시아의 코갈림아비아 9268편은 이슬람국가(IS)나 그 동조 세력이 기내에 장착한 폭탄에 의해 추락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보고를 했다고 <시엔엔>이 4일 보도했다. 미국의 한 관리는 “그 여객기의 화물이나 다른 곳에서 폭발 장치가 장착됐다는 명확한 느낌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 정보 당국이 아직 공식적인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필립 하몬드 영국 외무장관도 영국 정부는 그 여객기가 폭발장치에 의해 추락했다는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미국 정보 당국의 관리는 지난 31일의 여객기 추락 전과 그 이후 수집된 정보 보고를 종합해서 폭발물에 의한 추락 가능성 평가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 관리는 “시나이 반도에서 우리들의 관심을 끌었던 추가적인 활동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미국 관리는 여객기가 이륙한 샤름엘셰이크 공항에서 누군가가 여객기에 폭탄을 반입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추가적인 정보가 있다고 전했다. 이 관리는 “그 공항은 보안이 느슨하고, 이는 알려진 일이다”며 “공항의 누군가로부터의 도움을 시사하는 정보가 있다”고 말했다.
이슬람국가의 관여에 관한 정보는 부분적으로 이슬람국가의 내부 메시지를 관찰한 것에 기반한 것이라고 다른 관리는 전했다.
전날 사고 항공기의 항공사 메트로제트 쪽은 이 추락이 외부적 영향 때문이라고 주장해, 기내 폭발물에 의한 사고임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사고가 나자마자, 이슬람국가 이집트 지부 쪽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집트 등 당국들은 이슬람국가 쪽이 소지한 대공무기로는 여객기를 격추시킬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집트 당국 등은 사고 여객기는 9000m 이상의 고도로 비행하고 있어, 이슬람국가 등 테러 단체들이 소지한 스팅어 미사일 등 대공무기로는 격추시킬 수 없는 고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공무기가 아니라 기내 폭발물에 의한 추락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었다.
영국 등은 시나이 반도 운항 중단
영국과 아일랜드 등은 여객기의 시나이 반도 상공 운항을 중지했다.
영국 총리실은 이날 샤름엘셰이크 공항을 출발하려는 자국 여객기들의 운항을 중지했다고 밝혔다. 총리실은 영국 항공 전문가들이 이 공항의 보안 대책을 평가하기 앞선 예방조처라고 설명했다. 총리실 대변인은 “조사가 아직 진행중이어서, 우리는 왜 러시아 여객기가 추락했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많은 정보들이 검토되면서 우리는 그 여객기가 폭발 장치에 의해 추락했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항공청도 이날 자국 여객기들의 샤름엘셰이크 공항에서 이륙과 착륙 모두를 추가적인 공지가 있을 때까지 모두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사메 슈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은 영국의 조처를 “아주 성급하다”며 조사가 끝난 것이 아니다고 불만을 표했다. 그는 “우리는 물론 영국 시민을 보호하려는 책임과 의도를 평가한다”면서도 “그러나 조사가 끝나고 추락에 대한 명확한 원인이 나오기도 전에 그 여객기에서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것을 발표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말했다.
이슬람국가의 무대, 시나이 반도
사고가 발행한 시나이 반도는 이슬람국가와 연계한 이슬람주의 무장집단과 이집트 정부군 사이에 전투가 몇년 째 계속되고 있는 곳이다. 테러와 전투로 수백명이 사망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이슬람국가 이집트 지부 혹은 시나이 지부는 ‘안사르 바이트 알-마그디스’라는 이집트 내의 토착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다. 미국 국무부는 2014년 4월 이 집단을 해외 테러단체로 규정했다. 이슬람국가 이집트 지부는 이슬람국가 지부 중 가장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는 지부이고, 폭탄 제조 능력을 갖췄다고 미국 정보 당국은 평가하고 있다. 이번 사고가 그들의 소행으로 판명되면, 그들이 폭탄 제조 및 설치 능력을 더욱 신장됐음을 보이는 것이다.
테러 단체 중 가장 뛰어난 폭탄 제조 능력을 보이는 집단은 현재 예멘에서 주로 활동 중인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AQAP)로 평가된다. 이들은 비금속 폭탄을 여객기 내로 반입하는 공작을 수차례 벌인 것으로 미국 정보 당국은 평가한다. 이에 비해, 이슬람국가는 그처럼 정교한 폭탄 제조 및 이동, 설치 능력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미국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시엔엔>의 테러 분석가 폴 크뤽샌크는 “이번 사건은 9.11 이후 가장 중요한 테러 공격일 것이며, 이는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슬람국가가 이번 사고에 정말로 책임 있다면, 이는 전 세계 지하드 운동에서 그들의 인기를 폭발적으로 신장시킬 것이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도 테러와의 전쟁 수렁?
이슬람국가의 여객기 추락 사고 개입 가능성을 부인하던 러시아는 곤혹스런 입장에 빠지게 됐다. 이번 사건이 이슬람국가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소행이 확실하다면, 그 배경은 이슬람국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이다. 이슬람국가 쪽은 공언한대로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러시아에 대한 보복을 현실화했고, 러시아에 대한 테러 공격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의 한 원인이던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으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로 인한 깊은 내상을 갖고 있다. 이런 내상을 가진 러시아는 소련 붕괴 뒤 이슬람주의 세력이 주도한 체첸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두 차례의 대대적인 전쟁을 치르는 한편 국내에서 일어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의 대형 테러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러시아는 1991~1894년 1차 체첸 전쟁, 1999~2000년 2차 체첸 전쟁으로 10만~15만명이 죽는 희생을 무릎쓰고 체첸의 독립을 저지했다. 이 와중에서 러시아의 체첸 전쟁을 보복하려는 대형 테러들이 잇따랐다.
1999년 9월 모스크바 등 3개 도시의 4곳 아파트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 307명이 숨지고, 1700명이 부상했다. 또 2002년 10월 체첸 게릴라들의 모스크바 극장 인질 사건에서는 강경진압으로 관중과 테러분자 170명이 숨졌다.
2004년 9월에도 체첸 게릴라들이 벌인 북오세티아 베슬란의 학교 인질 사건도 강경진압해서 어린이 186명을 포함해 385명의 인질들이 숨졌다. 2010년 3월 모스크바 지하철 자살폭탄테러로 40명이 숨졌다. 가장 최근인 2011년 1월에는 모스크바의 도모데도포 공항 폭탄테로 37명이 숨졌다.
러시아는 아프간 전쟁 이후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 최일의 안보 위협이라고 판단해, 이들의 투쟁과 테러에 강경대처로 일관해왔다. 러시아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도 러시아에 대한 증오는 미국에게 보다 우선시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의 러시아에 대한 테러공격을 다시 불붙일 우려가 크다. 러시아 역시 그 보복으로 시리아 내전에서 이슬람국가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을 더욱 강경히 다룰 것이 확실하다. 러시아가 다시 소련 붕괴 이후 2010년 내외까지 지속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과의 전쟁 수렁에 빠질 수 있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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