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1.10 19:58
수정 : 2015.11.1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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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 800m에서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마리야 사비노바(왼쪽)와 예카테리나 포이스 토고바(오른쪽)가 러시아 국기를 몸에 감고 기뻐하고 있다. 두 선수는 9일 발표된 세계반도핑기구의 보고서에서 도핑 혐의로 종신 출전 금지가 권고됐다. 런던/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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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도핑 스캔들 은폐 ‘파문’
세계 스포츠계가 국제축구연맹(FIFA)의 부패 스캔들에 이어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로 휘청이고 있다. 러시아가 국가 차원의 도핑 혐의로 차기 올림픽의 육상경기 출전이 금지될 위기에 놓였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9일 러시아 스포츠계가 도핑과 그 은폐를 국가 차원의 지원 속에서 광범위하게 저질렀다며 내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의 육상 종목 출전 금지를 권고했다. 이 기구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독립조사위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최대 국제경기단체인 국제육상경기연맹(IAAF)도 도핑 연루 혐의가 드러나, 국제 스포츠계 전반의 스캔들로 번지고 있다.
세계반도핑기구 조사위 권고
선수 5명엔 영구 출전 금지도
정보기관, 검사원 위협…‘은폐’
국제육상경기연맹도 연루 혐의
인터폴, 관련국 전반 수사 시작
러 “반도핑기구 자금 출연 중단할 것”
■ 도핑 실태 러시아는 2013년 국제 스포츠계에서 드러난 도핑 사건 중 11.5%인 225건에 연루됐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2위는 188건의 터키다. 러시아 도핑의 20%는 육상이 포함된 트랙 및 필드 종목에서 벌어졌다. 특히 국가 차원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소련 시대의 비밀정보기관인 국가안보위원회(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FSB) 요원들이 도핑테스트 기구의 직원들을 위협해 러시아 선수들의 약물 양성 반응을 은폐토록 했다. 지난해 소치 겨울올림픽 때는 연방보안국 요원들이 도핑 검사원으로 위장하기도 했다. 당시에 약 1400건의 도핑 검사 샘플들이 무단으로 폐기됐다.
선수들은 불시 도핑검사를 피하려고 신원을 가장했다. 도핑 위반 기록을 지우거나, 결과를 조작하려고 뇌물도 오갔다. 러시아 선수들은 금지약물을 제공받고 검사 결과를 은폐하려고 국내 도핑 관리들에게 자신의 수입 5%를 건넸다.
국제육상연맹은 그 은폐에 관여됐다. 프랑스 당국은 지난 주 세네갈 출신의 라미느 디악 전 국제육상경기연맹 위원장이 적어도 6명의 러시아 선수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경기 참가를 허가한 혐의로 수사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의 반도핑기구인 ‘루사다’는 선수들에게 검사가 있을 것임을 미리 통보해, 선수와 그 관계자들이 뇌물과 협박 등을 통해 검사를 회피하거나 결과를 조작할 수 있게 해줬다.
■ 사건 파장 세계반도핑기구는 차기 올림픽뿐만 아니라 국제육상연맹의 대회에 러시아의 출전 금지를 권고했다. 또 도핑에 연루된 러시아의 코치 5명, 선수 5명의 영구 출전 금지도 권고했다. 런던올림픽의 여자 800m 우승자 마리아 사비노바, 시카고 마라톤대회 등의 우승자 릴리아 쇼브코바가 포함됐다.
이 기구는 인터폴에 수사도 요청했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딕 파운드 세계반도핑기구 회장은 인터폴에 관련 서류와 증거들을 넘겨줬다고 밝혔다. 인터폴도 이날 러시아뿐만 아니라 관련국 전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세계반도핑기구 집행위는 다음주 미국 콜로라도에서 회의를 열어 이 위원회의 권고에 대한 대처를 논의한다. 로드 코 국제육상경기연맹 회장은 러시아 쪽의 반응을 검토하고서, 출전 금지 등의 “제재를 포함한 광범위한 선택지를 고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육상경기연맹에 이번 주말까지 혐의에 대해 소명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이 보고서에 “깊은 충격”을 표하고, 러시아의 출전 금지를 결정할 국제육상경기연맹의 판단을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국제대회 출전 여부는 러시아 쪽의 대응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 회장은 러시아 쪽이 엄격하고 구체적인 약물 통제를 실시하는 등 자신들의 반도핑 처방을 수용한다면, 차기 올림픽 출전이 가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 쪽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비탈리 무트코 러시아 체육부 장관은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전체 시스템이 폐쇄돼야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폐쇄할 것이다”라며 “우리는 러시아의 반도핑 기구들에 자금 출연을 중단할 것이고, 이는 우리 돈만 절약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드러났나 이번 보고서는 이전부터 언론에서 제기됐던 혐의를 확인한 것이다. 2014년 12월 독일 공영방송 <아에르데>(ARD)가 방송한 탐사보도가 이번 조사의 시작이다. 당시 방송은 러시아 스포츠계 관계자들을 인용해 러시아 정부가 선수들에게 약물을 조달해주고, 도핑 양성 반응을 은폐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폭로했다.
조사위는 이를 10개월에 걸쳐 조사한 뒤 보고서를 내놓았다. 지난 8월에도 <아에르데>와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2001년 이후 수천건의 선수 혈액검사를 토대로 우수한 성적의 선수들이 약물 복용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위원 중 한명인 리처드 맥래런 캐나다 변호사는 “부패가 스포츠의 본질까지 해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논평했다. 그는 국제축구연맹의 최근 뇌물 스캔들을 거론하며 “뇌물과 향응은 실제의 스포츠 경기를 바꾸지 못하나 도핑은 공정한 경쟁을 날려버리는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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